[Opinion] 직선으로 응원해줘

글 입력 2024.02.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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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나서면 언제고 어둠이 내려앉아있는 1월의 평일이었다. 회사를 나와 동료 인턴 언니와 헤어지고 N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처럼 열차는 출발하여 서울을 떠나기 시작했다.

 

뜨끈한 좌석에 몸을 깊이 묻고 고개를 숙였다. 어제와 같은 신발, 같은 바지, 같은 외투. 오늘 아침 의자에 쌓여있던 옷가지를 그대로 입고 왔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즈음에 나는 무척 지쳐있었다. 지치다 못해 나를 가꾸거나 사람들과 만나는 일조차 포기할 정도로 내적인 에너지가 고갈되고 말았다. 자신을 구성하는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자면 그런 일에 힘을 쏟는 부서에는 예산, 그러니까 적절한 에너지를 할당하지도 못했달까. 일에 대한 지나친 긴장감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혹사되어버린 것이다.

 

습관처럼 이어폰을 귀에 걸치고 온갖 노래로 채워보았지만 두려움으로 비어버린 마음이 허전했다. 대체 오늘 나는 무슨 일을 한 것인지,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어제 한 일이 잘못되지는 않았을지, 내일은 또 어떤 잘못을 저지르진 않을지. 해답도 없는 질문으로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나 이 상황을 탈피하고자 누구에게 연락을 걸 수도 없었다. 내 하소연을 들어달라 요구할 마음도 없었을뿐더러, 기꺼이 그러해 줄 타인의 너그러움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더라도 나의 부족함을 자책하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고막 속에서 즐겁고 슬프고 아련한 노래들이 제 공연을 마치고 떠나고 있었다. 홀로 버려진 듯한 쓸쓸함에 화면 속 인물들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단 3, 4분이면 공연의 막을 내리고 백스테이지로 유유히 사라질 그들을 붙잡고, 제발 내 곁에 있어 달라고 고하고 싶었다. 나는 내일의 당위성에 숨이 막히고 두려운데, 어떻게 하더라도 이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당신들만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처럼 그렇게 매몰차게 떠나지 말아 달라고. 제발 내 곁에 조금만 더 머물러달라고.

 

그러나 노래는 끝이 나고 다음 곡이 흘러나왔다.


*

 

분홍색 바지와 앳된 미소를 걸친 금발의 아이가 휴대폰 화면 속 계단에 걸터앉아있었다. 초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가수인 코니 탤벗(Connie Talbot)이었다. 노래의 제목은 ‘Happy Song’. 제목 그대로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노래'였다. 주제와 가사가 뻔히 보이는 직관적인 제목이었다. 이 노래를 어렸을 때야 좋아했지만, 어느 순간 지루한 가사 탓에 다른 노래의 뒷전이 되고 말았다.

 

방긋 미소 짓는 코니의 목소리로 노래가 시작하여 씩씩한 표정의 남자아이가 온갖 소품을 두드리며 신선한 효과음을 더해주었다. 그 노래를 반복 재생 설정한 뒤, 코니의 목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가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코니는 동일한 가사 몇 줄을 반복하며 노래를 이끌었다. 가사는 직관적으로 주제를 담고 있었다. 다 같이 모여 더 큰 의미를 형성하지도 않는, 솔직하고 1차원적인 가사였다. 마치 어린애가 쓴 응원편지 같았다.

 

‘내가 이 노래를 부를게, 네가 힘들 때 너를 격려하고 싶어서.’

‘그저 너를 응원할 거야, 힘들 때 얼마나 괴로운지 나도 알고 있거든!’

 

평소라면 이런 가사에 코웃음치다가 짓궂은 물음을 던지고 싶은 심술이 일었을 터인데, 어째서인지 솔직하게 나를 위로하는 가사가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코니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도 모르지만 의연히 노래를 이어갔다.

 

'어떨 때는 실수해도 괜찮아. 어쩔 수 없다면 그저 내버려두자. 그냥 시답잖은 농담인 것처럼.’

 

가사에서는 뛰어난 문장력이나 과도한 꾸밈, 기교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직하리만큼 올곧게 솔직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힘든 것이냐고 묻거나 내 상황이 괴로울 만한 것인지 떠보는 사람들처럼 에둘러 나를 위로하지도 않았다. 마치 나를 응원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듯, 나를 향해 그저 노래할 뿐이었다. 마치 공을 받으려고 서 있는 사람이 잘 받을 수 있도록 아무런 요령이나 스킬도 없이 직선으로 담백하게 응원의 공을 던지는 투수의 모양새처럼, 곧바로 나의 진심을 겨누었다. 그리고 코니의 마지막 결정타.

 

‘Better times ahead...’

 

이윽고 나도 모르는 새에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그것을 닦지도 못하고 흘려보냈다. 이내 소리치고 애원하며 묻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나의 앞날에도 지금보다 더 나은 때가 있을지, 그러니까 내가 그런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현재의 내 모습에서 아무런 희망의 빛도 기대할 수 없었던 나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속도 없이 묻고 싶어졌다.

 

*

 

그러나 코니의 마지막 가사는 슬그머니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노래를 거듭해 들을수록 머릿속에서 코니의 마지막 가사가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내게 이유 모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생각한 것이 맞을까?’, ‘나의 가능성이 이걸로 끝이라고?’, ‘아직 더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단지 지쳐버렸다는 이유로 나의 모든 가능성을 무시했던 마음 속에서부터 완전히 새로운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내, 이렇게 묻게 되었다. ‘분명 내게도 더 나은 때가 다가오지 않을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일 하나만으로 텅 비었던 내 마음은 충분해졌다. 나 자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상기하게 되었고, 막연한 용기가 벅차올랐다. 무언가 하고픈 설렘이 전율을 일으켰다. 단지 코니의 노래에서부터.

 

그 애의 노래는 내게 아무런 미래도 약속할 수 없겠지만, 내 상황에 대한 이해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모두에게 같은 메시지를 전하겠지만, 오히려 그것은 운명처럼 내 마음에 날아와 박혔다. 나를 재거나 평가하는 사람과의 대화와 달리 올곧이 나를 응원하기만 하는, 직선으로 날아오는 응원의 메시지덕분이었다.

 

나는 그제야 이 노래의 진가를 깨달았다. 내가 너무나 지쳐 스스로를 설명할 힘조차 없을 때, 위로를 받기 위해 타인에게 상황을 납득시킬 힘조차 없을 때, 스스로에 실망하여 모멸에 찼을 때 문득 이렇게 다가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투박한 그 형식 속에는 애정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래서 나조차 나의 심정을 알 수 없을 때, 노래는 직선으로 날아와 내게 솔직하게 묻는다. 에둘러 말하지도 않고 나의 본심을 꿰뚫는다. ‘정말로 혼자여도 괜찮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 않아?’ 하며 나를 캐물어 온다. 그러면 나는 머쓱하니 웃으며 사실 그렇다고 고백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자신을 알게 되었다. 아무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다며, 나의 부족을 상기하고 싶지 않다며 홀로 삭이려던 나는 사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아무런 질문이나 질책도 없이 포근히 안아줄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나 보다.

 

기교 없는 가사 속에는, 어린아이의 말처럼 단순하고 올곧은 가사 속에는 단단한 애정이 있다. 동시에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따스함이 있었다. 마음속에서 조용히 우직한 사랑이 피어났다.


*

 

다음날 여전히 세상은 그대로였다. 매일 나의 부담감은 여전했고 두려움은 상당했다. 노래는 내게 아무런 마법도 약속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평소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내 안의 무언가를 느꼈다. 코니의 응원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나는 ‘분명 더 나은 날들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 믿음 하나가 새로운 하루에로 나설 힘을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러하다. 코니의 ‘Happy Song’과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쌓여 한결같이 직선으로 응원해오는 노래와 영화, 시가 내 안에 있다.그것이 주는 올곧은 애정과 믿음이 있다. 그것을 믿고, 또다시 채워진 나 자신을 믿고 세상으로 나선다.

 

‘Better times’가 ‘ahead’하다는 그 얄궂은 목소리를 믿는 셈하며.

 

 

[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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