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즘 무슨 음악 들으세요? [음악]

음악으로 성찰하는 사람
글 입력 2024.02.19 13: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또 새로운 아침이다.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미래가 열렸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나는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샤워를 한다. 무슨 음악을 들을까. 오늘의 아침과, 지금의 나와 어떤 템포와 리듬이 잘 어울릴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음악 역시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지 않나. 나는 주기적으로 듣고 있는 음악을 살펴본다. 세상에는 사람의 감정만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존재하고, 자신이 선택하는 음악은 자신의 상태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라 믿는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평소보다 예민한 상태라면 기분과 정반대인 음악을 들을 바에야 듣지 않는 편이 낫다. 다만 그럴 때도 음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음악이라도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날이 있다. 나는 신중히 골라야 한다. 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기분을 어루만져주는 음악으로.
 
 

스크린샷 2024-02-19 오후 2.02.59.jpg

 
 
 
음악의 무거움과 가벼움


2022년, 한해를 회고하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음악을 무게에 따라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나눌 수 있다면, 올해는 가벼운 음악들에 더 손이 갔던 것 같다. 가사를 신경 쓰지 않고 들었던 음악이 더 많았고, 국외 음악은 굳이 해석하려고 들지 않았으며, 멜로디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나 탁월함에 주로 매료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거운 음악을 더 애중하는 사람. 음악과 나의 적절한 균형 아래 가사에 두 눈을 비비고 함께 무너졌던 지난날들이 그립기도 하다. 올해는 배를 불리기보단 창고에 쌓아두었던 해가 되어버렸다. 잔뜩 쟁였지만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다가 지나버린 식사시간. 언젠가부터 음악을 많이 알기 위해 듣는 것 같다.
 
 

필요해서 찾아 듣는 음악


얼마 전, 유튜브에서 이런 댓글을 보았다.
 
  
the beauty of an unreleased song: it being unreleased makes it inconvenient to stream and this just gives the song so much more value as you'll only listen to it when you look for it, when you NEED it. (미발매곡의 아름다움: 미발매된 곡은 스트리밍하기 불편하고, 찾을 때나 ‘필요’할 때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가치가 있다.)
 

그 영상은 어느 아티스트의 미발매곡이었고, 나는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 적절한 언어로 인식하지 못한 감각을 깨우치게 해준 댓글 작성자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하며. ‘필요’해서 듣게 되는 음악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현시대에는 미발매곡이지만 들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로 경험해 볼 수 있지만, 스트리밍이 없던 시대에는 일상적이었을 것이다. 자주 듣게 되는 음악과 찾아 듣는 음악은 같지 않을 수 있다. 찾아 듣는 음악은 아껴 듣는 음악이자 내게 필요한 음악일 수 있다.
 
 
 
음악에 정말로 무게가 있던 시절


돌이켜 보면 방바닥에 앉아 누나 엠피쓰리를 빌려 듣던 때가 더 즐거웠다. 그때는 음악에 정말로 ‘무게’가 있었다. 엘피, 씨디, 카세트, 엠피쓰리, 엠피포… 지구의 부피가 무한대는 아니듯 우리가 지닐 수 있는 물건 역시 한정적이며, 음악의 물성은 자신의 음악을 선택할 의무를 부여했다. 그 선택으로 인해 음악은 조금 더 소중해졌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토렌트로 다운받았던 테일러 스위프트와 마룬 파이브 음원 파일들, 가사가 나와서 기뻤던 알송, 홀리듯 가입했던 팬카페들, 나의 투지폰 속에 음악 한번 넣어보려고 헐거워진 연결 잭, 전자사전과 피엠피, 공기계, 어둠의 음원추출... 나의 사적인 추억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야 접한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어플. 지금은 그때보다 객관적으로 좋은 음악들을 훨씬 많이 접하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밋밋하고 납작한 구석이 있다. 그 시절 감상법들이 지금까지 생생한 걸 보니 번거로움이 음악 감상에 있어 쓰리디 안경이라도 되는 걸까? 번거로운 과정 속에서 그새 정이 들어 애틋함이라도 생겨나 버리는 걸까?

지금은 너무 쉽게 들을 수 있다.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면 앨범들이 쏟아진다. 들어본 적 없는 앨범도 터치 한 번이면 나의 것으로 저장된다. 아무렇게나 틀고 다시 귀 밖으로 쏟아버릴 수도 있다. 아주 간편한 시대에서 각자만의 기준을 만드는 일은 행복한 번거로움을 위해 아주아주! 중요해 보인다. 터치 몇 번이면 쏟아지듯 발견되는 음악들을 경계하고 음악을 사랑하기에 의식적으로 절제하자. 스트리밍 앱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성찰하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71I5kJS+dsL._UF1000,1000_QL80_.jpg

 

 
'Kid A'에서 'Happy Moods'까지

 

라디오헤드(Radiohead)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군 복무 시절, 라디오헤드는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었다. 그 때의 나는 오래된 무덤 옆에 몸을 누이고 잿빛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군대는 이미 흐릿하고 연약한 영혼을 세상 한편에 충분히 가려 놓았다. 나의 우울은 죽은 듯이 살아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한 치의 우울도 허용해주지 않았다. 고개만 돌리면 언제나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과 티비 보다가 노래 듣다가 웃고 떠들다 보면 아침 안개가 걷히듯 정반대의 무드가 펼쳐졌다. (물론 매번 화목하진 않다) 그렇지만 무언가 멈추어 있는 느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마음을 라디오헤드는 이해해주었다. 퇴근 후 라디오헤드가 필요했고 침대 위에 죽은 듯 누워 처방전처럼 규칙적으로 복용했다.


2000년 10월 2일. 라디오 헤드의 4집 'Kid A'는 내가 태어나고 정확히 일주일 뒤에 세상에 나왔다. 앨범을 들을 때면 꼭 내 몸과 같은 크기의 무해하고 따뜻한 공간에 웅크려 누워있는 느낌을 받는다. 낯선 세상에 떨어진 나를 위해 마련한 새로운 보금자리인지도 모른다. 우연을 운명으로 착각해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애정은 깊어진다. 자주 들을 순 없지만 내가 정말 아끼고 기대는 음악이다. (하지만 최애 앨범은 'In Rainbows'다. 꼭 들어보시라…)

그리고 전역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보사노바와 네오 소울, 재즈나 잼 장르에만 자꾸 손이 간다. 요근래 음악은 자꾸 브금이 된다. 공기를 꾸며주는 청각적 인센스가 된다. 음악에만 온전히 몰두하던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음악을 발굴하고 만끽하는 예민함이 무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건 내가 전보다 가벼워졌다는 뜻이 되기도 하겠지. 무거운 음악이 버거워질 만큼 혼자 침잠하는 시간이 줄고 세상과 밀접해졌다. 잃은 것도 있겠지만 세상을 대하는 산뜻한 태도와 여유를 얻었다.

어제는 Ahmad Jamal의 'Happy Moods'를 들으며 출근했고, 오늘 아침에는 샤워하면서 봉제인간의 '12가지 말들'을 들었다. 나는 요즘 이런 기분이다. 몰랐는데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문충원.jpg

 

 

[문충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