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리움과 우울의 이름으로 [음악]

자줏빛으로 물든, 자우림의 음악
글 입력 2024.02.1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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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취를 느끼거나 위로를 받고 때론 시간 여행을 한다.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감정과 시간처럼 일정한 형체를 갖지 않는 무형의 것을 쥐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중 유독 음악이 그랬고, 특히 감정을 많이 배웠다. 일종의 사전이었다. 음악을 통해 어렴풋한 감정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설렘, 그리움, 행복, 슬픔 등. 반복되고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조금은 다채롭게 살아갈 길이 되었다.


매해 수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하고 무수한 음반이 쏟아지듯 발매된다. 그 사이에서도 유독 잊지 못하는 경험이 있다. 버리지 못한 미련처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 그리움과 우울을 알게 한 그 음악. 자줏빛으로 물든 그 노래, 자우림의 음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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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미성년의 시간을 살아갈 때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처음 들었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동명의 드라마에도 삽입되어 청춘의 한 장면을 완성하기도 했다. 드라마를 시청하기 이전, 본래 받아들이기를,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청춘보다는 ‘사랑’이었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노랫말에는 ‘너’와 ‘나’가 등장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청춘이었던 그들은 영원할 수 없다. 손에 잡힐 듯 선연한 과거의 시간도 추억일 뿐이다. 덤덤하게 내뱉는 말들 속 꾹꾹 눌러 담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브릿지가 등장하며 분위기가 고조된다. 눌러왔던 감정이 발산된다.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그리움이 되어 전해진다. 기타 사운드에 애틋함이 실린다. 관계를 확실하게 정의할 수 있는 정보가 없어도 ‘나’라는 화자가 품은 감정은 ‘사랑’이 분명하다.


그래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사랑이 되었다. 미성년의 시간에서는 아픈 첫사랑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은 자에게 성년의 사랑은 막연한 첫사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나이가 된 지금은 어쩌면 아픈 첫사랑이 아니라 지나간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첫사랑과 청춘 모두 한없이 반짝이다가도 언젠가 지나가고 만다. 한때는 영원할 것만 같았던 시간도 모두 흘러가고 변화한다. 보통은 덤덤하지만 때로 아쉬워지고, 그 아쉬움은 삽시간에 애틋함을 담은 그리움이 되어 울음이 울컥 치밀게 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경험한 사랑과 그리움의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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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있지’를 수험생 시절에 많이 들었다고 했다. 노래를 모를 당시에는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곡이라고 추측했다. 노래를 재생했고 우울을 마주했다. 그 어느 수험생의 감상이 궁금해졌다. 또, 언젠가 ‘있지’가 자우림을 대표하는 사운드가 담긴 곡이라는 설명을 접했다. 자줏빛으로 가득한 노래라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있지’가 궁금했다.

 

 

있지,

어제는 하늘이

너무 파래서 그냥 울었어

 

 

인상적인 사운드가 강렬하게 시작을 알린다. 하늘이 파래서 그냥 울거나 내리는 비를 그냥 맞아버리는 행위가 지나치게 익숙하다. 무얼 기다리다가 나를 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울로 점철된 행위인 것을 모를 수가 없다. 몰아치는 기타 사운드가 그 마음을 쏟아낸다. ‘있지,’로 시작해 끝맺지 못한 말들이 화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털어내고 싶어도 차마 털어지지 못하는 우울함이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게 만든다.

 

 

있지,

오늘은 나도 몰래

나를 내버리다가

나를 내버리다가

 

 

곡이 변주되는 부분에서는 모든 감정을 터트린다. 처절함을 넘어서 고통을 감내하는 자의 외침을 닮기도 했다. 드럼이 등장하는 타이밍, 악기 소리만으로 채워지는 간주와 폭발하는 보컬이 어우러지며 완벽한 한 곡을 만든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도리어 우울을 떨칠 힘을 준다. 슬플 때 참지 말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낫다는 위로를 듣고는 한다. ‘있지’는 그러한 위로의 형태를 띤다. 힘껏 소리치는 우울함이 숨 쉴 틈을 만든다.

 

 

있지,

어제는 바람이

너무 좋아서 그냥 걸었어

있지,

그때 잊어버리고

말하지 못 한 얘기가

 

 

곡의 앞뒤에 배치되어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루는 가사는 어쩌면 우울을 떨친 자의 말이 아닐까. 그 수험생의 말도, 자우림의 색깔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있지’는 한껏 우울해할 수 있는 곡이자 동시에 모든 것을 털어낼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우울을 말하는 음악에서 희망을 엿본다. 그 점이 자우림을 닮았다. ‘자줏빛’, ‘짙은 남빛을 띤 붉은빛’. 자줏빛의 오묘한 색깔처럼 어떠한 역설을 담고 있다. 우울의 탈출구를 우울 속에서 찾는다. 그 선율과 노랫말만큼이나 강렬한 경험이었다. ‘있지’를 통해 본 우울함의 새로운 모습이다.


*


여전히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은 많고 때로 낯선 것에 지배당할 때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 그리워지거나 언제고 우울해지는 것은 괜찮다. 정체를 알 수 있기에 이름 붙일 수 있다. 그리움과 우울함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더는 두렵지 않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에 담아 그리움을 지울 수 있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을 때 외울 두 음절의 단어를 알고 있다. 자줏빛 노래로 배운 감정, 자우림이 선사한 그 경험을 오래도록 잊지 않을 듯하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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