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청음이 아닌 경험으로써의 음악, Time is a blind guide 내한

Time is a blind guide 내한 공연
글 입력 2024.02.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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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 A Blind Guide 티저 포스터.jpg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뛰어난 예술 작품을 본 후 극도의 흥분으로 인해 호흡곤란 및 현기증 등의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을 말한다. 소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처음 기록으로 남겨 그의 이름을 딴 이 증상은 특히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며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존재 자체로도 아름다움이 충만한 예술 작품들을 볼 때면 늘 가슴이 뛰지만, 스탕달 신드롬이라 일컬을 만큼의 충격을 느껴 본 적은 없다. 감동 앞에 사고가 무뎌지고 언어적 표현도 정지하며 그저 거대하게 다가오는 작품을 온 마음을 다해 감싸 안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작품 앞에서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작품을 보거나 듣는 것을 넘어서서 ‘경험’하게 된다.


평가도 분석도 모두 내려놓고 그저 느끼는 경험으로써의 예술. 비록 스탕달 신드롬의 강렬함은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음악에 있어서는 듣기보다 경험하는 공연을 만났다. Time Is A Blind Guide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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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is a blind guide(이하 TIABG)는 나에게 낯선 이름이었지만, 그들의 음반이 발매된 ECM Records는 꽤나 익숙했다. 재즈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하는 ECM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반은 Kieth Jarrett의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다. 키스 자렛의 섬세한 연주와 더불어 아름다운 앨범 자켓은 그 자체만으로도 전시된 작품처럼 느껴졌다. 이 외에도 몇몇 ECM 앨범들을 접하며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아름답게 공간을 채우는 음악과 그에 못지않게 감각적인 앨범 커버의 사진들이었다. 실제로 ECM의 앨범 커버만 모은 아트북이 있을 만큼 그들의 앨범 커버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예술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ECM 커버 아티스트로 활동한 사진작가 안웅철의 사진들이 함께 상영되었다. 광활하고 서정적인 사진들은 TIABG의 음악과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연주가 시작된 후 첫 곡을 들을 때까지는 곡을 머리로 분석하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접한 TIABG의 음악은 영화음악이 연상되었다. 공간감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초반부 그리고 리듬감과 재즈의 느낌이 강해지는 후반부로 나뉘어 들렸다. 특히 초반부의 음악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느끼겠지만, 당장 영화에 삽입되어도 자연스러울 만큼 클래식과 영화음악 그리고 앰비언트 뮤직이 섞인 느낌이었다. 그 때문에 음악을 듣고 있자니 저절로 분위기에 어울리는 한 장면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감독이 되어 연주에 맞춰 카메라로 인물을 클로즈업하기도, 조명을 끄고 켜기도 했다. 머릿속 상영회는 재미있었지만 무언가 온전히 음악에 빠져서 즐기는 느낌과는 조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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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번째 곡부터는 점점 생각을 지우고 TIABG가 이끄는 음악의 흐름에 나를 맡기기 시작했다. 머릿속 생각을 멈추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피아노, 드럼, 바이올린, 첼로, 베이스로 이루어진 그들은 악기와 교감하며 대화를 나누는 듯 보였다. 첼로와 베이스는 현을 뜯고 악기의 바디를 타악기처럼 두드렸고, 피아노는 일어서서 피아노 줄을 두들기는 듯 보였다. 또 그룹의 리더 토마스 스트로넨은 드럼과 함께 정말 다양한 악기를 연주했다. 줄에 매달린 종을 돌리기도 하고, 싱잉볼 형태의 그릇을 두들기거나 큰 북을 치기도 했다.


두 번째로 눈에 띈 건 음악을 즐기며 서로를 바라보는 연주자들의 모습이었다. 연주 내내 서로를 바라보고 시선을 맞추며 웃는 그들을 보니, TISBG의 음악이 정말 ‘재즈’에 기반을 두었다는 게 느껴졌다. 즉흥적인 연주를 하며 서로 간의 합을 맞추어 음악을 이끌어가는 재즈 그 자체였다. 특히 흘러가는 음악 속에서 은은한 미소로 서로의 연주에 화답하는 표정은 나까지 그 일원이 되어 함께 공연을 만들어 나가는 기분이 들게 했다.


이 모든 것을 즐기다 보니 음악에 온전히 들어가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음 하나하나를 분석하며 그다음은 어떻게 흘러갈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즉석에서 음악을 만드는 재즈처럼 말이다. 들리는 모든 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음’이 아닌 ‘음악’으로 존재했다. 유난히 인상깊었던 것은, 음악이 그저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닌, 나의 주변을 감싸는 공기에 스며든 분위기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음악을 피부로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은 볼륨이 큰 음악을 들을 때 피부로 직접 전달되는 진동음에 이런 기분이 들곤 했다. TIABG의 음악은 볼륨이 크지도, 피부로 직접 음이 전달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의 연주와 표정 그리고 행위가 만나 음악을 경험하는 체험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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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는 음악의 단점(?)은 공연이 끝난 뒤 알아챌 수 있었다. 그저 느끼며 듣다 보니 곡 하나하나의 특성이나 정보가 또렷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음과 함께 흘러갔던 탓이었다. 그러나 내가 평소에 음악을 듣던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멋진 공연을 통해 새로운 취향을 열어준 TIABG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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