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벚꽃 엔딩

글 입력 2024.01.2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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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벚꽃을 거기서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보니 친한 동생 D에게 들은 말도 "가을에만 학교 다닌 사람"이다. 2년을 사이버 강의로 보내다가 휴학 타이밍도 엇박이라 2학기에만 학교 다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학창 시절의 봄을 잊어버릴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뒤편에 있던 공원은 나름대로 소소한 벚꽃 명소였다. 매해 벚꽃길 앞에서 찍던 학급 사진에서 나는 서른 명 남짓의 머리통 사이에서 홀로 어수선했고, 반 친구들에게 굳이 말을 걸고 싶지도 않았던 무표정의 학생이었다.

 

애초에 친하다고 할 만한 사람들은 선후배거나 다른 반에 있어서 만날 일도 많이 없기도 했었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봄은 어색했다. 우스운 계절이었고.


언젠가 들었던 Q의 말처럼, "졸업하면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을 테니까" 너무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어땠으려나 생각한다. 납득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고.

 

맞다. 이제 내게 험담하는 동창도 없고, 숨죽여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던 나 역시도 없다. 나도, 너도 없는 세상에서 벚꽃은 지금까지 그대로 있다. 나는 벚꽃을 되감기보다 아침마다 등굣길에 들었던 재즈 연주곡 몇을 지금의 일상에 가져오기를 택했다.

 

등굣길에 들었던 통통 튀는 시원한 리듬들. 대부분의 사진과 노래는 거기 놓고 왔어도 잊기 힘든 연주곡들. 하나만 꼽자면 트리오 토이킷의 "Gadd A Tee?"가 그랬다.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음표의 낙수, 청귤차의 얼음과 따가운 햇살.


내게 봄이란 오래도록 바짝 말린 마음과 흰색 레이스 식탁보, 집 근처에 피어있는 목련이 전부였다. 견고하고 다정한 존재들을 보며 등교곡을 들어야만 견딜 수 있는 계절이었으니까.

 

분명 봄이 적막이어야 내가 숨통을 틔울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벚꽃길에 가둬둔 이미지가 흩날려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흰색 이름들을 사랑하겠지만, 다른 즐거움 역시도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의 시작과 끝이 목련이 아니게 되는 새로운 시간이 곧 온다. 또 다른 꽃의 이름이.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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