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친절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사람]

글 입력 2024.01.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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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경계하게 된다.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하고 크고 작은 인종차별에 익숙해질 정도가 되면 누구든 그럴 것이다. 유럽에 산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누가 날 쳐다보기만 해도 아니꼬운 감정이 앞선다. 괜스레 가방 지퍼를 더 꽉 잡고 휴대폰을 쥔 손에 악력을 높이며 나를 향한 저 시선의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한다. 소매치기를 당한 뒤로는 인종에 대한 차별도 생겼다. 11월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휴대폰의 위치가 이주 전 모로코에서 확인되었을 때, 나는 이제 모든 흑인이 껄렁해 보이고 최대한 피해 가려 노력하는 인종차별자가 되어버렸다. (이걸 인종차별이라 명명할 수 있을지는 애매하지만)

 

그런 내가 모로코에 왔다. 몇 달 전부터 예정된 계획이라 불안해도 갈 수밖에 없었다. 내 소중한 휴대폰을 뺏어간 소매치기범의 나라라니, 분명 불순한 눈빛의 사람들이 그득할 거라 생각하며 캐리어의 잠금장치를 단단히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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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모로코 사람은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다. 택시 티켓을 끊어주는 공항 직원이었는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물으며 모로코 인사말을 알려주었다. 두 번째로 만난 모로코 사람은 친절하게 나를 배정받은 택시까지 안내해주었다. 너무 친절해서 나와 동행들은 혹시 팁을 달라고 하는건 아닌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모로코에서 여행하는 4박 5일 내내 팁은 한 군데를 제외하곤 없었다. 택시 기사님도 유쾌하신 분이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어떤 언어인지 물어보고는 한국은 어떤 곳인지 궁금해하셨다.

 

하룻밤 묵는 호텔에서는 리셉션 직원이 우리 일행 세 명의 휴대폰 유심칩 등록을 직접 해주셨고, 늦은 저녁 지도 앱이 작동하지 않아 헤매던 와중 지나가던 행인 분이 본인 휴대폰으로 지도 앱을 켜면서 길을 알려주셨다. 버스를 기다리다가는 옆에 서계시던 할아버지가 전통 시장에서 바가지 당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셨고 같이 버스를 타고 가던 친화력 좋던 아저씨와는 사진도 같이 찍었다. 여기까지가 모로코에 도착하고 약 24시간 동안 내가 받은 친절이었다.

 

절정은 이틀 차 밤부터 예정되어 있던 사막투어였다. 차로 10시간 정도 이동해 사막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이었고, 사장님은 우리가 구매하지도 않은 빈방을 내어주며 씻고 쉴 수 있게 해주었다. 낙타를 타고 투어하는 중에도 계속 사진을 찍어주고 매끈한 사구에서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갈 때에도 더 재밌게 밀어주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은 손을 잡고 끌어주는 등 내가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밤이 되자 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들로 황홀해졌다. 우리는 모닥불을 둘러앉아 전통 악기들로 연주하는 음악을 들었다. 모로코 전통 음악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신나고 반복적인 리듬에 절로 들썩이게 되는 음악이었다. 그때 가이드 한 분이 나와서 춤을 췄다. 흥에 겨워 혼자 추다가 우리도 함께 추자고 하셨다. 그 뒤로 약 30분 정도 계속 음악에 맞춰 다 같이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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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동행한 일행은 “술이 없으니 춤을 강권한다”라며 농담으로 말할 정도로 낯선 문화였다. 극내향인인 나에겐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도 있는 문화였다. 낯선 사람이 손을 덥석 잡고 모두가 보고 있는 모닥불로 나가 웃긴 춤을 춰야 한다니.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모두가 한 번씩 나가 춤을 출 수 있었던 건 모로코 사람들의 친절하고 유쾌한 마음에 빠져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로코의 춤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우리를 고객이 아닌 서로의 이름 혹은 형제(Bro)라고 부르던 모로코 사람들이 생각난다. 이들은 사람을 사랑해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을 베풀고 하루를 함께한 사람과는 모두 친구가 되어 함께 즐거운 춤을 춘다.

 

이때쯤 ‘친절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굳이 여행자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내가 만난 모로코 사람들은 그 귀찮음과 불편함과 싸워가며 귀한 친절을 베풀었다. 여행하면 할수록 낯선 사람을 향한 날은 점점 예리해져 갔지만, 모로코의 친절과 선함이 모닥불 마냥 그것을 녹여 결국엔 별하늘 아래 모두를 춤추게 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속 친절이라는 공통 언어로 소통하는 순간들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다. 너무 오랜만의 환대여서 그랬을까, 어색한 손을 잡고 춤추던 순간은 이제 인류애로 연결된 순간으로 기억될 듯하다. 이렇게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따뜻이 환대하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 것이다, 춤과 노래에 모로코의 친절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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