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친구 '노란 집'을 소개합니다

글 입력 2024.01.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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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었던 공간


 

침대, 책상, 옷걸이, 냉장고. 처음 자취하게 된 집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들이었다. 휑한 공간에 겨우 들여놓은 짐 몇 봉지들.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로 이불을 끌어안고 잠에 들었던 밤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공허함은 오히려 귀를 먹먹하게 하는 어지러운 소음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2년 동안 이 숨 막히는 공기를 가득 껴안고 지내야 한다니. 우리, 친해져 보자!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친구처럼 느껴지는 미스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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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부터 자취를 시작하게 된 나는 낯선 약수의 겨울부터 접했다. 처음 발을 딛어본 자취방에는 전 세입자가 이사하고 난 후라 알 수 없는 적막함이 가득했다. 그 말 없는 속성을 겨울이라는 계절이 닮은 것 같았다. 분명 몇 달이 지나 여름은 다시 찾아오겠지만, 뼈를 시리게 하는 공허함이 싫어 조금은 섣부른 여름을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겨울을 끓여보고 싶었다. 끓어오르는 열망을 들여놓아야겠다, 생각했다.

 

아마 그 보글거림의 시작은 처음 자취 의사를 밝혔던 내 모습부터였을 거다. “나 자취해 보고 싶어!” 호기롭게 내던진 말에 부모님은 적잖이 놀라신 듯 보였다. 하지만 곧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남은 2년 동안은 학교와 가까운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쳐보라는 부모님의 뜻이었다.

 

 


내가 남긴 것들


 

그렇게 시작하게 된 홀로서기였지만,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감이 느껴졌다. 아니, 이건 거의 새로운 것을 조각해 갈고 닦아야 하는 창조에 가깝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무너지지 않게 쌓아 올려야 하는 탑이었다. 가장 먼저, 또 쉽게 할 수 있는 전입신고부터 차근차근히 해보기로 했다.

 

무사히 신고를 마친 후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구매했다. 고심 끝에 샀던 작은 미니 소파, 공간을 나누어줄 커튼과 파티션, 나무 선반 등 가구들이 늘기 시작하니 집의 공간이 차츰 메워지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소중한 친구들의 축하와 응원을 담은 선물은 식기와 러그, 각종 엽서, 서울 중심을 돌아다니며 모은 인형, 꽃, 영화 굿즈들도 하나둘씩 내 새로운 공간에 자리했다.

 

집이 채워지기 시작하니 허전했던 마음도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이 에너지를 조금 더 건강하게 사용하고 싶었던 나는, 운동을 시작해 보겠다고 새로운 다짐을 했다. 처음엔 운동이 기상 후 잠을 깨기 위한 수단이었으나, 점차 목적이 되어 방문 횟수도 늘렸다. 뛴다는 행위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던 약수 시장의 모습은 내가 지금 몸을 담그고 있는 동네를 낯설게 상기시켰다. 그러면서도 낯선 곳에서 “뛰고 있다”라는 충만함이 더해져 그곳 시장의 활기를 닮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자 더 바쁘게 지내고 싶었다. 2022년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교 생활을 빡빡하고도 알차게 채웠던 한 해였다. 고민 끝에 신청한 학술제 준비 위원단에서 영상부원으로 1년 동안 활동하며 전시회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밴드 소모임에 들어 드러머로 활약하기도, 또 먼 거리를 오가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열린 에너지에 힘입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내게 다가왔고,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마지막 1년은 수다스럽게 모였다 흩어진 작년 한 해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조용한 한 해를 보냈다. 차분하게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느꼈던 경험과 생각으로 아트인사이트라는 소중한 기회에 발을 담갔다. 또 온 힘을 다해 사회의 일부가 되었던 인턴 생활을 5개월간 하게 됐다.

 

건축가 유현준 님은 공간이 “나의 규칙을 부여하는 온전한 나만의 세상”이라고 하셨다. 공간에 어떤 가구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생활 동선을 그릴지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나의 분신과도 같은 세상이 새로 태어난다. 그것과 친구처럼 마음을 나누고 애착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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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향하던 날이 있었다. 건물의 창문 사이로 비치는 불빛을 봤다. 모든 층이 하얀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3층이었던 우리 집만 홀로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창문의 빛을 보자니 내가 부여한 나만의 규칙, 그리고 내 공간에 대한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 숨을 입으로 모락모락 피워내며 뛰어 들어가자 노란 집은 그 누구보다 나를 따듯하게 반겨줬다. 그것을 느꼈을 때가 이사를 앞둔 1주일이었다. 그제야 집안 곳곳에 가득 찬 나의 자취, 그리고 가까워진 집과 나를 느끼게 됐다.

 

 

 

가득 남은 내 공간, 내 친구, 노란 집


 

2년 전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내가 들어가며 새로 만들어간 모든 자취로 이제는 ‘가득 남은 내 공간’이 됐다. 직접 고른 가구들, 계절을 거듭할수록 하나둘씩 쌓여가는 옷들,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와 굿즈들, 하다못해 어디선가 받아온 이름 모를 인형. 직접 만들어 먹은 크고 작은 음식들로 만들어진 에너지, 그것으로 힘껏 뻗어본 무수한 사회의 경험들까지. 이렇게 흔적들은 차곡차곡 모여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양으로 공간을 채워주었다. 그게 꼭 친해지는 과정 같았다.

 

그곳에서 정말 많이 울고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마다 나의 노란 집은 늘 나와 함께였다. 어느 날은 녹초가 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노란 조명을 켰다. 집은 누워서 보는 시야에 가득 담길, 겨우 5평 남짓의 품을 가졌지만, 나 하나 가득 안길 수 있어 포근했다. 이에 노란 조명이 더해지니 치유의 힘이 가득 차올랐다. 그 품에 몸을 기대어 잠을 청할 때면, 새파랗게 차가워진 몸이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점차 녹는 것을 느끼곤 했다. 아무도 위로해 주지 못했던 내 마음 구석까지 빈틈없이 꼬옥 안아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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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란 집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가 됐다. 하지만 이제 계약이 만기 되어 모든 짐을 비우고 다시 2년 전 처음 만났던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도 첫 자취 생활을 하며 남겼던 나의 자취와 점차 가까워진 내 공간, 그곳에서 느꼈던 노란 따스함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나와 2년 동안 함께해줘서 고마웠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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