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연말, 책 선물을 마련하며.

글 입력 2023.12.3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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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친구들 만나면 주려고 책을 주문했다. 친구 한 명 한 명에 맞춰 고른 책 선물은 꼭 해보고 싶던 일이기 때문에, 펀딩한 물품 하나를 취소하고 이쪽에 돈을 썼다.


한 권은 멀리 있는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느낌의 책이다. 친구는 곧 있으면 작년이 되는 올해 봄과 여름 사이에 마음을 다친 일이 있었다. 많이 힘들어하던 친구는 다행히 이제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았다. 이 친구에게 줄 요량으로 구매한 책은 친구가 안정을 찾기 전에 읽게 된 것으로, 소중하지만 멀리 있는 친구가 우리 곁에 오래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은 너와 나를 위한 책이네. 그리 생각했지만 그 당시 바로 이 책을 주면 친구의 마음에 또 다른 부담을 얹어주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이제는 내 진심이 담긴 책을 선물해도 친구에게 무겁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 얼마전에 한 권씩 나눠가질 수 있게 같은 책 두 권을 주문했다.


다른 한 권은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를 위한 책이다. 나는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는데, 친구의 얘기를 들어보면 친구에게 꼭 동생이 한 명 더 생긴 것만 같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동생과 자식의 중간 즈음? 다만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들은 같이 사는 인간에 비해 이 세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다는 점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친구 역시 소중한 고양이가 떠나고 나면 그 상실감을 어찌 해야 하는지 조금씩 고민하는 듯 하다. 그래서 고양이 집사가 고양이를 키우며 든 생각들을 모은 책을 집어들었다. 나는 절절히 공감해 줄 수 없는 문제지만, 비슷한 입장의 저자가 쓴 글이라면 친구에게 도움이 되어줄까 하는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책 선물은 처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다소 딥한 내용과 독특한 그림체의 해외 만화책을 준 적이 있다. 아마 지금이라면 힐링이 될 만한 책을 선물할 텐데, 그때는 그랬다. 패션디자인에 관심 있는 동생에게는 그와 관련된 독립출판물을 사 준 적이 있다. 원단 별 이름과 특징을 담은 책이었다.  전시회를 연 그림책 작가 친구에게는 일부러 서점에 오래 남아 있던 그림책과 서점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그림책을 골라 두 권 선물했다. 이미 직업 작가로서 다양한 그림을 보고 있겠지만, 그림작가에게 그림이란 볼수록 좋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다행히 책 선물을 받은 사람들 모두 기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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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책 선물의 역사는 깊다. 가방끈 길고 학구적이었던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선물로 책을 주셨었다. 근데 그게 좀 심해서 어린이날도 크리스마스도 생일 선물도 다 책이었다. 장난감을 아예 안 사주신 건 아닌데 장난감을 사려면 아빠의 ‘다섯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이걸 왜 사줘야 하는지 다섯 가지 각기 다른 이유를 답하여 아빠를 설득하라는 것이었다. 내딴엔 열심히 쥐어짰는데 중복이라며 거절당하는 이유도 있었다. 갖고 싶으니까, 사고 싶으니까 같은 이유는 약간 이유 취급 못 받았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다. 결국에는 웬만하면 사주시긴 했지만, 장난감을 갖고 싶을 때 혼자 멈칫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의 우리집에서 자라며 이유 없이 살 수 있는 물건이 바로 책이었다. 심지어 에버랜드에 놀러가서 기념품 가게에서 다른 건 안 사주더라도 거기서 어린이용 소설책은 사주셨다. 뭔가를 사고 싶은데 안 될 거 같을 때는 궁금한 소설책을 집어 들었고 나는 놀이공원 기념품으로 웬 소설책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렇게 읽은 책들 재밌었고 유익했지만… 어릴 때는 전형적인 장난감을 갖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법이다.


한때는 왜 거의 모든 선물이 책인가 의문을 가졌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책에 익숙하게 기반을 만들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문해력 저하가 화두로 자주 떠오르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독서와 친밀한 것, 문제가 있을 때 책에서 답 찾기를 주저하지 않게 자란 것은 나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된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부모님을 깊게 원망한 적도 있다. 그때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유년기에 불만족스러웠던 일들을 모두 기억에서 꺼내 부모님 탓을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한번은 왜 책 선물만 줬냐고 불평한 적도 있었다. 상대에게 맞는 책 선물 고르기에 얼마나 세밀하고 큰 애정이 들어가는지 미처 모르고… 지금은 그것을 아니 과거에 내보였던 불만과 더 어릴 적 무심하게 잘 읽지 않았던 몇 권의 책을 떠올리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다음에는 엄마 아빠를 위한 책 선물을 골라봐야겠다. 두 분 다 책을 많이 읽으시는 만큼 책 선물 고르기 난이도가 매우 높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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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다소 싱겁지만, 그래서 책 사기 어려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오늘도 독립서점 인스타그램 계정을 확인하고 인터넷에 신간도서를 검색하며, 호시탐탐 다음에 읽을 책에 눈독을 들이는, 그런 어른이 되었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연말 선물을 마련하며 뽑아 본 한 편의 사연이고, 연말 선물에서 돌아보는 한 편의 성장담이다.


안부를 묻는 편지와 크고 작은 선물이 오가는 연말연시에, 소중한 이를 떠올리며 고른 책 한 권 선물해 보는 일은 어떨까.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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