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숨겨진 무대, 숨겨진 아름다움, 숨겨진 주인공 - 히든 스테이지

글 입력 2023.11.3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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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무대


 

예술 분야에 애정을 가진 중고등학생들에게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장학사업 '드림그림'. 이번에는 서양화가 배준성이 장학생들과 함께하며 <히든 스테이지>를 꾸몄다. 전시의 중심이 되는 작품은 배준성 작가가 장학생들의 그림을 영감 삼아 재구성한 콜라보레이션 두 점이다. 


이 두 작품을 포함해, 전시 공간에서 쭉 만날 수 있는 ‘On the Stage’ 연작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춤으로써 일상적인 공간을 무대 위로, 평범한 장면을 특별한 순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렇게 별 볼 일 없는 행인이 열정적인 아티스트가 되고, 친구들과의 대화가 인상적인 대사가 되고, 웃음 하나 손짓 하나가 아름다운 예술이 된다. 관심과 애정과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작품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드림그림x배준성 콜라보레이션]on the stage-hidden stage_some picnic, 2023, Oil on canvas, 181.8 x 227.3cm.jpg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일까.

 

작가의 작업 방식과 표현 기법을 익혀 완성한 장학생들의 그림도 흥미롭게 감상했지만, 배준성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와 장학생들의 그림에서 결정적인 차이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에서 보였다.


장학생들의 그림에서 어둠은, 대부분 어둠으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배준성 작가의 그림에서는 어둠 밑에 어떤 장면이 숨죽인 채 웅크려 있는지 잘 보인다. 언제라도 조명이 저를 향하면 허리를 펼 준비를 하는, 지금은 고작 배경일 뿐인 이파리가 선명하다. 그래서 스포트라이트가 닿지 않는 검은 그림자도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눈을 찌푸리고 꼼꼼히 살피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포트라이트를 활용하는 작품을 보며 스포트라이트 바깥이 궁금해졌다. 일상에도 조명이 비치면, 그러니까 관심을 기울이면 그곳이 어디라도 무대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작품의 취지일 텐데, 다르게 말하자면 지금은 작가의 작품 속에서조차 조명이 닿지 않아 어둡게만 보이는 곳도, 지금 당장 빛이 닿지 않을 뿐 언제라도 밝게 빛나고 박수갈채를 받는 무대로 변신할 수 있다는 뜻.


별 게 다 예술이다, 라고 비웃기에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많은 품이 든다. 너무 괴롭고 너무 즐겁고 너무 잔인하고 너무 아름다운데, 이 정도면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일만하지 않나.

 

 

 

숨겨진 아름다움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배준성 작가의 시그니처인 렌티큘러 작품들이다.

 

렌티큘러 작품은 두 개 이상의 그림을 합성해 각도에 따라 다른 그림이 보이도록 하는 모션 효과를 지닌다. 동영상이 익숙한 시대에도 렌티큘러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소비자가 무엇을 볼지 직접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상 작품은 작가가 설정한 순서대로 정해진 시간과 흐름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지만 렌티큘러 작품은 소비자가 직접 이리저리 움직이며 작품을 능동적으로 소비한다. 첫 번째 장면과 두 번째 장면을 번갈아 보고 맘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그걸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다.


이마저도 전시의 주제인 히든 스테이지와 걸맞다. 배준성 작가가 ‘On the Stage’ 연작을 통해 일상도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말하며 이리저리 조명을 설치해 주었지만, 결국 내 관심을 끄는 일상 속 작품을 찾는 것은 내가 직접 해야 한다.

 

내가 나만의 조명을 들고 부지런히 움직여서 내게 의미 있는 순간을 찾고 거기에 시간을 들이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히든스테이지 웹포스터.jpg

 


전시의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는 단순히 유행한 지 꽤 된 기하학적인 디자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전시를 보고 나면 남색 부분이 어둠, 흰 타원이 조명 아래라는 것이 보인다.

 

조명 아래 얼핏 보이는 모양들은 전부가 드러나지 않지만 누구라도 이들을 사각형 두 개와 원 하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저 부분이 텅텅 비어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전체 모양이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그 숨겨진 부분을 인지할 능력이 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관심을 가질 능력을 이미 가졌다. 이제 상상으로 채우기는 그만두고 두 눈으로 확인하자.

 



숨겨진 주인공


 

배준성 작가X드림그림 장학생 단체 사진.jpg

 

 

지금은 조명이 닿지 않아 어둡게 보이는 곳도 밝게 빛나고 박수갈채를 받는 무대가 된다. 이는 그 공간뿐만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적용되는 말이다.

 

지금은 어둠 속 아마추어일 뿐인 사람들도 언젠가는, 아니 언제라도 스포트라이트 아래 주인공이 된다.

 

실은 지금도 주인공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는.

 

 

 

김지수_아트인사이트컬쳐리스트.jpg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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