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겨울 잠수부

글 입력 2023.11.2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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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4_잠수부2.jpg

 

 

분명한 파열음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살갗에 침을 불어넣는 모습이 한껏 팽창된 공기를 타고 내게 닿았습니다. 겨울 잠수부는 눈을 질끈 감고 밤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잠수부는 시린 공기를 홀로 유영할 권리를 주장합니다. 물고기 뻐끔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이 바다는 곧 죽습니다. 당신들의 마찰은 그의 평범한 삶을 부수고, 저 아래로 가라앉는 시간을 빈정거리는 소리니까요. 밤공기가 차가움에도 물고기는 여전히 움직이기에, 검정 오닉스를 닮은 눈이 가엽습니다. 물고기는 입을 뻐끔거립니다. 이 공기를 견딜 수 없다고.

 

"물고기 눈, 죽은 산호초 색."

"뻐끔."

"응, 밝고 엷은 아이보리." 

"뻐끔." 

"이름이 뭐야, 친구?" 

"뻐끔."

"애석하게도 어류 도감 같은 건 몰라. 생명이라고 할게."

"뻐끔."

"생명, 극지로 가자. 이왕이면 살아있는 눈을 보고 싶어." 

"뻐끔."

"바닷물의 표면 위로, 오로라의 또 다른 이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당신들은 생명의 유영 속도보다 더 빨리 식었습니다. 꿈틀거리다 굳어버린 화산 쇄설물이 우스워 마찰음을 내었답니다. 빤히 쳐다봐서 미안합니다. 사실 나는 금세 깨질 설탕 시럽이 무섭습니다. 끈적거리고, 자꾸만 혀가 깊게 베이니까요.

 

유난스레 상아질을 부수는 소리가 쓸데없이 명랑합니다. 모든 것이 과장된 달짝지근함이 나는 싫습니다. 아, 물고기 세상에는 설탕 시럽이 없지요. 아직은 산호초 군락이 아름답습니다. 적당한 산소를 머금은 꽃은 여전히 제 자리에 피어있지 않던가요.


다행히도 생명은 죽지 않았습니다. 잠수부는 입을 조금만 더 크게 뻐끔거리고 충만한 산소를 머금으라며 손짓합니다. 내 엉성한 움직임에 도망이라도 가지 않으면 다행이겠지만. 목구멍이 둔하고 아리도록 계속해서 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라고요. 그리고 잠수부는 우연히 가라앉은 나뭇가지를 발견합니다.


"뻐끔."

"응, 생명. 이건 죽은 나뭇가지야. 나는 육지 동물 사슴."

"뻐끔."

"사슴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등을 봐. 지느러미야. 여길 봐."

"뻐끔."

"내 건 유연하고 미끄럽지 않지만, 네 숨이 붙어있는 동안은 같이 헤엄칠게."


당신들은 몰랐겠지만, 십이월의 마지막 순간은 매년 다르답니다. 나는 밤하늘의 별이 몸을 옮기는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이름 모를 해저의 모든 구석까지 스며든 바다의 부피가 무엇인지 전부 알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러니 나의 투명한 새벽 공기가 매캐해지지 않도록 그 굉음을 거둬 주세요. 밤에는 별것 아닌 움직임도 유난스레 들린답니다. 자유를 주세요. 지금도 살아있는 생명이 자유로이 밤바다를 헤엄칠 수 있도록.

 

맞다. 내 이름이요. 나는 십이월을 기다리는 잠수부, 이어 붙인 밤을 지켜보는 세상의 모든 밤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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