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심이 많다. 항상 마음에 드는 것들은 ‘잘’하고 싶다. 마음이 앞서서 늘 즐기는 것, ‘나’는 뒷전이 된다. ‘잘’이 앞서면 마음은 앞으로 달려가 몸은 균형을 잃고 목적이 전도된다. 결국 넘어진다.
나는 어릴 때 피아노가 정말 좋았다. 피아노만이 있는 작은 방에서 까맣고 윤기 나는 피아노와 나만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사랑했다. 미끈한 건반을 두드릴 때면 나는 유리알처럼 맑고 또랑또랑한 소리. 나는 피아노야말로 정말 야무진 악기라고 생각했다. 풍성한 소리를 내며 혼자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는 악기.
피아노를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이 앞서도 몸이 따라가질 못했다. 노력으로 재능을 갈고닦아 윤을 내는 친구를 좋아했다. 나와 키 번호 1, 2번을 다툴 만큼 왜소했지만 피아노 앞에 서면 거대한 존재감을 보이는 나의 친구. 도에서 다음 도까지는 쉽게 닿던 그 애의 곧고 긴 손가락. 미끈한 건반을 매만질 때면 나는 풍성하고 어여쁜 소리. 그 모든 걸 좋아했다. 그래서 그 애를 미워하거나 질투할 수도 없었다. 피아노는 인제 그만 치고 공부할 때가 맞지, 하면서 나는 피아노와 멀어졌다.
음악과도 자연히 멀어졌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들어 가닿지 못한 저편이 떠올라 음악을 즐기는 건 어려운 일이 되었다. 멋지게 감상하고 글로 써내고 싶다는 마음뿐, 막상 음악 그 자체를 충실히 감상하고자 하는 마음은 늘 등 뒤에 두었던 것 같다. 몸집이 부푼 욕심에 지쳐 잠 못 이루던 밤, 나는 넘어지고 깨진 나를 발견했다. 그냥 마음 편히 즐기면 안 돼? 나는 대답했다. 그러게.
예술가 김지희가 제시한 방법대로 나는 바흐의 오보에 협주곡 F장조 BWV 1053r을 감상해 봤다.
나에게 이 곡은 이렇게 들렸다.
계절은 초가을, 하늘은 짙푸르다. 오후 네 시경. 갈색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서 있는 광장, 카페와 식당이 있다. 식당은 천막을 치고 간이 테이블을 놓았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바쁘게 서빙한다. 야외 테이블에는 여유를 즐기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버스킹 공연을 하는데, 그는 오보에를 불고 있다. 그에 맞춰 몸을 흔들거리며 식사를 음미하는 사람도 있고, 붉은 옷자락을 퍼트리며 춤추는 사람이 있다.
고소한 빵 냄새, 달큼한 구운 양파 냄새, 새콤한 토마토, 부드러운 커피 향이 풍긴다. 살짝 소금기가 섞였지만 여름처럼 습하진 않고 적당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주변은 약간 소란하지만 귀가 따가울 정도는 아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공기를 흘리며 소리 내는 언어를 사용할 것 같다.
이 곡을 골랐던 건, 작가의 다정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선한 꿈’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작가가 7년 전 러시아 단체 여행에서 만나 친해진 치과의사 선생님은 안부를 묻자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선한 꿈은 꼭 이뤄져요.”라고. 이 말이 참 다정했다. 깊은 다정. 이런 다정과 선함에 사람은 힘을 얻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는 것 같다. 요즘 꿈 때문에 불안했던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려고 한다.
달콤한 사탕 꾸러미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음악이 필요할 때면, 시시때때로 곁에 두고 열어서 작가의 이야기와 음악을 깊이 감상하고 싶다.
오늘 밤엔 어떤 음악을 들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