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시각예술]

정미조 작가 개인전 <이화, 1970, 정미조>를 다녀와서
글 입력 2023.10.1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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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정미조 기획 전시 <이화, 1970, 정미조>가 진행 막바지에 이르렀다. (2023.5.17~10.31) 전시가 막을 내리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방문했으면 하는 마음에 몇 자 적어본다.

 

정미조는 1970년대 우리나라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가수이다. 나를 비롯해 젊은 나이대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할머니께 여쭤보자 그 자리에서 바로 대표곡을 몇 곡 불러주셨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노래를 이렇게 기억하고 계실 정도로 대단히 인기 있었다고 한다. 정미조는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1972년도부터 1979년까지 짧지만, 강렬했던 가수 생활을 뒤로하고 돌연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대중가요와 순수 미술을 오가는 정미조의 삶은 현대 예술의 표본 그 자체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모교에 기증한 유학 시절 파리 풍경을 담은 작품들과 귀국 후에 작업한 서울 야경 등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가수 시절의 앨범과 무대의상까지 그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자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샹제리제의 밤, 1982>은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 파리의 겨울밤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다. 반짝반짝 일렁거리지만 한없이 가라앉는 울적함을 지녔다. <퐁피두 미술관에서 바라본 야경, 1982>은 40년이 지난 2022년 여름에 방문했을 당시 퐁피두에서 보았던 풍경과 놀랍도록 같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게 파리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지 싶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같은 파리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으니까. <질주, 2003>와 서울 야경 연작은 작가가 귀국 후 작업한 서울의 풍경들이다. 유사한 풍경을 각기 다른 색감으로 표현한 일련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서울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한 인터뷰에서 정미조는 가수로서 큰 인기를 얻었던 시절에도 늘 본인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노래는 잠깐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에게 있어 파리로의 유학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당연히 예정된 수순이었다. 70, 80년대에 동양인 여성이 홀로 먼 타국에서 보냈을 유학 시절은 짐작 가능한 것 이상으로 외로움 싸움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계속해서 그렸고, 프랑스에서 다시 한번 예술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정미조의 미술과 음악을 넘나드는 예술적 재능보다도, 자신이 원하는 걸 확실히 아는 마음과 이룬 것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용기와 결단력이 멋지고 부럽다. 두려움을 이기는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아카이브 실에서 나오는 정미조의 노래 <귀로>가 박물관 가득 울려 퍼진다. 처음엔 그저 오래된 스타일의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삶에 대해 알고 들으니 다르게 와닿았다. 긴 세월 여러 장르를 오가며 화려하지만 험난했던 세월을 지나, 모교 박물관에서 여태까지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것이 감동적이다. 아직 지나오지도 않은 삶을 미리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해당 노래의 가사와 함께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어린 꿈이 놀던 들판을 지나

아지랑이 피던 동산을 넘어

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

멀리 돌고 돌아 그 곳에

 

담벼락에 기대 울던 작은 아이

어느 시간 속에 숨어버렸는지

나 그 곳에 조용히 돌아가

그 어린 꿈을 만나려나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 귀로, 정미조

 

 

[최아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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