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판타지와 현실 사이, ‘소공녀’ [영화]

비현실과 현실 사이 내가 지향하는 삶은 무엇일까
글 입력 2023.10.13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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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그리 즐기지 않던 내가 영화를 많이 보기 시작한 시점은 현실에서의 도피를 원하던 때였다. 그즈음 개봉한 소공녀는 어릴 적 읽은 동명의 소설과는 많이 다른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언젠가 봐야지 봐야지 하며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그러다 직장 동료에게 스쳐 지나가듯이 소공녀에 위스키에 죽고 못 사는 주인공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추워지며 목을 데우는 위스키가 생각나던 얼마 전, 드디어 영화 소공녀를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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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위스키,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 세 가지만 있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벌레가 자연스레 돌아다니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 남자친구와의 스킨십을 포기해야 하는 집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미소는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사도우미로 일을 하며 버는 일당 45,000원 중 위스키와 담배 가격이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이니 미소의 세계가 어떤 것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알 만하다. 그러나 새해가 찾아오고 담배값과 월세가 오르자 미소는 집을 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생활을 하며 집이 안정감에 크게 기여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집만 있으면 직장은 불안정해도 괜찮다, 집만 있으면 연봉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괜히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의식주를 꼽는 것이 아니다. 집값이 많이 오른 요즘은 집을 소유하기 너무 어려운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내 몸 누일 작은 공간 하나마저 포기하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보통의 사람들은 집 혹은 가정에서 안정감을 찾지만 미소는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갑,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어도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미소는 짐을 싸 들고 대학교 시절 밴드 멤버들을 하나씩 찾아간다. 야근하며 떨어진 체력을 점심시간에 수액으로 채우는 문영, 시부모님을 모시고 집안일을 오롯이 짊어지는 현정, 이혼하고 20년간 월급의 반을 바쳐야 하는 아파트만 남은 대용, 부모님께 며느리를 만들어 주고 싶다며 미소를 감금한 록,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사는 정미.


마지막으로 찾아간 정미는 가사도우미가 있는 크고 좋은 집에 산다. 정미는 미소가 고등학교 때 빌려준 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남는 방 중 하나를 내어준다. 하룻밤만 자고 나온 다른 집들과 다르게 정미네 집에서 오래 머무르게 되자, 미소는 “근데 그런 집에 있으니까 내 집도 아닌데 부자 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안 좋기도 해. (중략) 기분이 안 좋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 같은 거야.”라고 이야기한다.


미소의 친구들, 그리고 미소의 대사를 보며 어릴 적 배운 house와 home의 차이가 생각났다. house는 집을 이루는 건축물 자체를 이르는 반면, home은 건물을 넘어 애정과 안정을 가지는 공간으로 보다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한다. 미소의 친구들은 겉으로 보면 번듯한 집이 있고, 직장이 있고, 화목한 가정에 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누구도 집이 안식처라고 보이진 않았다. 미소 또한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무르며 그곳이 안식처라고 느끼진 못했다.


영화의 끝 무렵, 미소의 집으로 추정되는 강가 근처의 텐트가 등장한다. 더위와 추위를 고스란히 느끼는 울퉁불퉁한 강가의 텐트 하나가 미소에게는 가장 큰 안식처가 되어주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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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굉장히 비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집과 가정이 있음에도 안정적이지 못한 삶과 집과 가정은 없지만 뚜렷한 취향으로 이루어진 삶을 비교해 보자. 영화 캐릭터인 만큼 극단적으로 표현된 면은 있지만 집을 소유하지 못한다는 전제하에 그는 분명히 청년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청년 세대의 개성과 취향을 위한 소비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나는 개성과 취향을 조금 더 특별한 것, 조금 더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 조금 더 삶의 원동력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안다. 집을 포기하지만 않았을 뿐, 악착같이 집과 가정을 위해 저축하지 않는 삶이 누군가에겐 미소의 삶과 다를 바 없이 비추어진다는 것도 안다.


미소가 조금 비굴하거나 염치없었을 수는 있지만 그가 찾아간 어떤 사람보다도 삶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 정한 우선순위다. 우선순위를 알면서도 줄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과 그럴 수 있는 사람의 행복도는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누구는 미래를 보지 못한다고 이야기할 테고, 누구는 현재에 충실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테다. 영화에서는 특정 인물을 비난하지 않는다.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의 몫이다. 밖으로 나가 현재를 살아갈 관객의 선택 또한 존중하고, 그에 따른 삶이 괴롭지만은 않길 바란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나는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면 그 우선순위를 잘 지키고 있을까? 내가 지향하는 삶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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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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