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빼앗긴 록 페스티벌에도 '록'은 오는가 [공연]

글 입력 2023.10.1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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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기타를 골반까지 내려 멘 채 한껏 멋진 표정을 짓는 아이돌이 있다. 장소는 팬사인회장. 세례처럼 쏟아지는 셔터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잠시 밴드 멤버로 빙의한 아이돌의 사진은 ‘아기록스타’, ‘홍대의 기적’ 따위의 별명과 함께 인터넷에 업로드된다. 록의 시대는 저물고 홍대 곳곳의 지하 공연장에서나 가늘게 명맥을 유지하는 현재, ‘록스타’란 그저 악기를 든 멋진 청년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어 버린 듯하다. 혹은 ‘힙스터’나 ‘MZ’처럼 특정 시대의 트렌드 세터를 지칭하기도 한다. 단어가 주는 복고풍 이미지에는 소위 말하는 ‘힙한 느낌’이 들어 있다. 그러니 록을 몰라도 록스타가 될 수 있고 록 없는 스타는 여전히 밝게 빛난다.

 

10월 7일과 8일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올해로 23년째 이어진 국내 최장수 록 페스티벌이다. 이름에 걸맞게 국내 다양한 인디밴드를 포함해 태국, 대만, 일본,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범세계적인 아티스트 라인업을 선보였다. ‘국제’는 통과인데, 문제는 ‘록’이었다. 양일 라인업 중 록을 대표 장르로 내세우는 아티스트의 수가 많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3인조 밴드 ‘New Hope Club’의 경우 록적인 밴드 구성의 팝 음악을 주로 선보인다. 8일 무대의 헤드라이너(여러 가수가 등장하는 공연의 대표 출연자, 주로 마지막 무대에 선다)인 호주 아티스트 ‘The Kid LAROI’의 경우 무려 힙합 가수다. 국내 출연자 역시 록을 고수하는 쪽도 있지만 포크나 신스팝, R&B 등의 다양한 장르가 혼재했다. 록 페스티벌이라 선뜻 부르기엔 어쩐지 다양한 장르가 비빔밥처럼 마구 섞인 이틀간의 축제였다. 비빔밥은 각 재료의 맛이 잘 어우러지기라도 하건만, 로큰롤로 잔뜩 흥분된 기분에 잔잔한 발라드나 우악스러운 랩이 찬물을 끼얹는 경험은 유쾌하다고 할 수 없었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1.jpg

 

 

록이 옅어진 록 페스티벌의 근원을 찾기 위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았다. 부산시의 지원을 받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2019년 이전까지 무료로 개최되었다. 초기에는 하드한 펑크 록과 데스 메탈 등 이름만으로 무시무시한 장르가 주를 이루었다. 넬과 크라잉넛, 체리필터처럼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 중인 국내 밴드 역시 이 페스티벌의 기반을 세운 이들이다. 전반적으로 과격한 사운드의 해외 메탈 밴드가 출연진의 골자를 이루던 시기였다. 막 부상하기 시작한 한국 인디밴드는 신선함을, 이미 경지에 오른 국내 록 밴드는 관록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에 들어 대형 메탈 밴드의 출연이 점차 줄며 실망을 금치 못하는 팬들이 늘기 시작했다. 마침내 유료 공연으로 전환된 2019년, 아이돌 그룹 god가 헤드라이너로 선정되며 록 페스티벌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었다. 전 세계적 현상인 록의 부진과 페스티벌의 흥행을 위해 인기 장르로 선택지를 넓히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래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고들 하지 않는가. 록 페스티벌은 결국 생존을 위해 ‘록 스피릿’과 타협했다.

 

록을 빼앗긴 록 페스티벌에도 ‘록’은 오는가. 아니, 어쩌면 장르적 의미의 진정하고 순수한 록이란 실존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여느 음악 장르가 그러하듯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분화되고 발명된 록의 갈래는 다양하다. 다수의 음악 팬들은 상업성 짙은 팝과 거친 정통성의 록 사이에서 양자택일이 아니면 죽음만을 생각하지만 팝 요소를 가진 록과 록 편성을 가진 팝의 존재는 이 주장을 배격한다. 시대적 조류로서의 록이 특정 아이콘으로 나타난다면 비틀스와 레드 제플린, 너바나와 오아시스를 지나 현재 록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록스타’의 새로운 정의를 고민해 봐도 좋을 지금, 록 페스티벌에서 정통성 있는 장르적 록의 수가 줄어드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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