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첫 영화제를 즐기다 [문화 전반]

2023 부산 국제 영화제
글 입력 2023.10.1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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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태껏 영화제에 가본 적이 없었다. 가끔 인터넷에서 유명한 배우가 영화제에서 어떤 드레스를 입었다더라, 하는 기사를 읽은 것이 영화제에 관련된 거의 유일한 기억이었다. ‘영화제’라는 이름은 어쩐지 전문적인 영화 애호가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영역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좋아하는 영화가 많아졌고, 영화를 시작하기 전 의례처럼 뜨는 영화제 마크에도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생겼다. 영화제는 어떤 곳일지, 어떻게 영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각자의 축제를 이룰지 그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이틀 동안 잠시 부산 국제 영화제에 가보기로 했다. 길게 시간을 내지는 못하지만, 영화제에 가고 분위기를 체험하기에는 이틀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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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에 가기 2주 전 즈음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각 영화의 티켓을 파는 티켓팅이 열렸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제법 인지도가 있고, 상영되는 영화의 종류도 많기 때문에 표는 많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전국의 수많은 영화 애호가를 (심지어 영화제에 오는 외국인들도 간과했다) 내가 얕본 것이었다. 티켓 창에 뜬 수많은 좌석이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졌고, 친구와 나는 서둘러 계획에 없던 영화들을 예매했다.

 

어떤 영화든 자리가 많이 남지 않은 것을 보며 나는 부산 국제 영화제의 인기를 실감했고, 또 관람객들의 열정을 얕잡아 본 것에 대해 반성했다.

 

그렇게 이틀 동안의 짧은 나만의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관람한 영화는 대만 영화인 <내 사랑 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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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시골에서 닭을 키우며 사는 여자가 데이트 어플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에게 푹 빠지는 이야기였다. 샐리는 큰 꿈 없이 남동생과 조카와 지내는데, 그녀의 평화롭고 단조로운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샐리는 그 프랑스 남자와 사랑을 시작하고, 급기야는 프랑스에 가기로 마음먹기까지 한다.

 

영화의 시퀀스는 안정적이고 사랑스럽게 흘러갔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발랄한 음악이 잘 어우러졌다.

 

보는 동안 개그 포인트가 몇 번 있었는데, 영화관 안의 관객들과 함께 마음껏 웃으며 영화 관람을 즐겼다.

 

첫 번째 영화를 감상하며 느낀 것은, 영화제는 정말 ‘영화’를 위한 행사라는 것이었다. 영화가 끝나도 조명은 켜지지 않았고, 관객들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한 이름들이 적힌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야 조명이 켜졌고 관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낯설고 벅찬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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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영화는 폴란드 외 4개국이 참여하여 만든 <푸른 장벽>이었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영화제가 아닌 이상 내가 시도하지 않을 것 같은 영화였고 그렇기에 영화제의 의의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난민에 대한 영화다. 최대한 연극적인 연출을 덜어낸 듯한 연출은 다큐멘터리와 같게 느껴지고, 흑백으로 구성된 화면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의 무게를 더 무겁게 전달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난민과 국경으로 넘어오는 난민을 막는 수비대, 난민을 도와주는 봉사 단체, 그리고 시민의 시선을 각각 따라가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는 난민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적기에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정말 생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감독은 난민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마저 순식간에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훌륭하게 이끌었다.

 

영화는 진정성 있었고,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으며, 나는 영화에 푹 빠져들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끝에 사는 한국인 관객인 나조차도, 그들의 상황과 감정에 공감하고 안타까움을 느끼며, 또 수많은 고민의 지점을 확인하기도 했다.

 

앞서 소개한 두 영화를 제외하고도 하나 더 감상했는데 잠에 들어버린 나머지 영화의 대부분을 감상하지 못했다. 영화제란 매달 돌아오는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럼에도 함께 영화제를 관람한 친구와 이런 예측 불가한 상황조차 영화제다운 사건이라며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었다.

 

정말이지 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를 본다는 것 이상의 재미를 선물해 줬다. 우선 평소라면 보지 않을 영화를 평소라면 가지 않을 영화관에서 보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중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남들의 평가에 기대어 나의 감상을 미리 상상하지도 않았다. ‘기대’와 ‘기대하지 않음’의 선택지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 눈앞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영화제는 영화 전문가들만 가는 곳도 아니었고, 내 예상처럼 어렵기만 한 행사도 아니었다. 좋은 영화를 보며 함께 웃고, 함께 박수를 보내며, 내일은 어떤 영화를 만나게 될지 두근거림을 품어보는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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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산 국제 영화제는 단 이틀 동안 즐겼다. 다음에도 영화제를 즐기게 된다면 조금 더 긴 기간 동안 많은 영화를 만나고 싶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선물 상자를 열어보는 것처럼 새로운 영화를 만나보는 기분 좋은 경험을 더욱 많이 경험하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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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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