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그만 그늘도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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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집 앞에 경찰차가 와 있었다. 정확히는 집 앞이 아니라 골목이 워낙 좁은 탓에 골목을 길게 가로막고 서 있던 거였다. 골목을 조금 꺾어 들여다보니 집에서 내려가는 길에 경찰차 한 대가 더 있었다. 순찰용 차도 아니고 두 대나 와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일이 났다 싶어 더 기웃거리진 못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집에 있던 선영에게 밖에 경찰차가 두 대나 와 있다고 말했다. 뭔가 무서워서 들어왔다고 얘기했더니 선영이 담배를 피울 겸 나가보겠다고 해서 기다렸다.
고독사였다. 혼자 살던 노인이 있었는데 사망 후 뒤늦게 발견된 것 같다고. 며칠 후 밤에 잠깐 나갔더니 노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짐들이 한가득 골목에 나와 있었다. 어떤 물건에도 생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추석 맞이 이벤트, 사은행사에 대한 기사를 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군가에게 '맞이'라는 말은 명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구나 생각했다.
복지 사각지대는 언론고시 준비 때부터 수도 없이 듣고 써왔지만 암담한 말 중 하나다. 공공기관에서도 언론에서도 복지 사각지대에 붙는 명사는 '발굴'이다. 사각지대란 어떤 위치에 서면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야기한다. 운전을 할 때도 사각지대는 발생한다. 차의 각도가 조금만 바뀌면 방금까지 보이던 부분이 가려지고 새로운 부분이 보인다. 결국은 시야의 문제인데 왜 복지 사각지대는 어딘가 가려진 것을 파헤쳐낸다는 '발굴'이라는 표현을 쓰는가. 닿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독사 뉴스를 볼 때마다 취재로 갔던 토론회에서 모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사각지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선 눈이 여러 개여야 합니다. 복지 사각지대는 결국 제도가 도울 수 없는 고립된 개인을 찾아내는 일이거든요. 감시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공공기관이나 정부가 모든 개인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를 관리할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 있죠. 그렇지만 최소한 개인이 하나의 공동체에 속할 수 있도록 지원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게 공동체의 힘입니다.
<에이징 솔로>에서는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서 고독사가 느는 게 아니라 고립이 고독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혼자 '살아서'가 아니라 사회와 연결된 고리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는 의미다. 고령, 장애, 경제력, 우울증 등 고립의 이유는 다양하다.
엄마는 구청에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조사를 담당했었다. 의료비나 수도, 가스 요금 체납 여부, 실 주소지와 주민등록상 주소지의 일치 여부, 사회보험료 연체 여부 등을 보고 전화나 방문을 한 후에 구청에 위험가구를 알리는 일이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주민들이 직접 만든 공동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발굴에 나서고 있다.
엄마는 생각보다 고립이 흔한 일이라고 했다. 복지 신청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선 사각지대가 만들어지는 일도 쉽다. 복지 신청주의는 신청대상자가 지원 관련 정보를 알고 직접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령인구나 장애인의 경우 더욱 그 혜택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에서 운영하는 복지로만 해도 여러 가지 바우처가 있지만 그 지원을 아는 사람이 적다. 알게 된 경로를 물어보면 '지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사람이 다시 사회와 연결고리가 되는 사례는 이렇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공동체라는 단어에는 어떤 정치적인 색,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경우가 많아 사용하기 꺼리는 경우가 많지만 친구, 이웃, 가족, 동료, 자주 가는 카페 사장...어떤 형태든 나를 사회와 연결할 수 있다면 그게 어떤 이름이든 무관하다고 본다. 최근 여러 사건들로 인해 더 이상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 또다시 타인과 '연결'하라는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혼자서만은 살 수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도 변함이 없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선 심장병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목수 다니엘의 이야기를 그린다. 심장병 환자지만 정부에선 일이 가능한 인력으로 취급받아 질병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제도의 허점 속에서 맴도는 인물이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케이티, 다니엘 이외에도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비추며 영화는 국가가 다 돌보지 못하는 빈칸을 채우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건넨다.
여름이 지나가면서 그늘이 진 곳이 많이 추워졌다. 반팔을 입고 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한 기온에 피부가 구석구석 예민해진다.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회란 어떠한 모습인가.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에서 작가 이반지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정말 1인분을 다 할 수 있었으면 사회가 필요 없다."
[조수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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