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분 진료 공장 속 사람들의 이야기 -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글 입력 2023.10.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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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3개월 정기검진받는 날. 오전 9시 첫 진료라 대기 없이 진료실에 들어갔다. 진료실 의사에 앉으니 의사가 안부를 묻는다.

 

"잘 지내시죠?"

"네 덕분에 잘 지냅니다."

"자, 여기 수술했던 곳이고, CT도 이상 없네요. 6개월 뒤에 봅시다."

"피 검사도 이상 없나요?"

"네 이상 없어요."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꼭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진료실 입장 및 퇴장까지 딱 30초였다. 왕복 2시간 걸려서 온 병원에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1분도 안된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별 이상 없다는 소식을 전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피곤함에 뻗어버렸다.

 

처음 병명을 진단받았을 때 온 세상이 멈추는 기분이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원인을 묻는 내게 "이유는 나도 알 수 없고 현실은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를 수 있어요."라는 의사의 답이 돌아왔다. 하루에도 몇 십 명씩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 환자들을 만나는 의사에게 이런 장면들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일상이겠지. 의사의 무덤덤한 반응도 이해가 되었다. 달리 그가 해줄 위로의 말이 뭐가 있었을까.

 

회사에 병가 신청을 하고 정신없는 한 달을 보낸 후 어느덧 나는 들것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술실은 하얗고 깔끔했다. 마취가스를 들이마시자 의식이 사라졌고 희미하게 정신이 들었을 때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반쯤 의식이 돌아온 상태에서 간호사들의 휴가 계획 같은 가벼운 수다를 듣고 있었다. 내게는 처음 겪는 수술이지만 근무하는 간호사들에게는 노동과 일상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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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진료 공장의 세계>를 쓴 김선영 저자는 대학병원 종양내과 의사이다. 일하는 사람의 에세이를 좋아한다. 사실적이고 솔직하며, 구체적이라서 실제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형병원이 불평불만이 된 이유, 환자들이 똑똑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방법,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여러 환자들을 만나며 생각한 점 등을 책에 담았다. 최근에 대형병원 치료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대형병원 시스템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내용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미리 알아두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정보이다.

 

경험상 애초에 대학병원 의료진에게 감정노동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수없이 몰려오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수술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는 업무만으로도 이미 높은 강도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환자들이 친절과 위로까지 바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지금의 의료 환경에서 환자 중심 의료를 실천하라는 요구는, 아무래도 믹스 커피 공장에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푸치노 등 다양한 에스프레소 음료를 만들어내라는 것과 같다. 2017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하고 있는 '환자 경험 평가'의 문항들 (설명을 잘 들었는지, 위로와 공감을 받았는지 등)이 지극히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을 측정하고 있음에도 현장의 의료진들이 '친절해야 한다는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단은 진료해야 할 환자의 수를 현실적이고 감당이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는 것을 환자 중심 의료 실현의 기본적인 조건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3분 진료 공장의 세계>, 김선영 지음

 

 

저자는 대형병원에서 똑똑하게 진료받는 방법으로 궁금한 내용은 메모해서 가라고 한다. 나 또한 의사를 만나기 전 궁금한 내용을 꼭 메모해갔고, 진료실에 들어가면 떨려서 그마저도 질문을 깜박하고 나오기도 했다.

 

환우 커뮤니티, 유튜브 등 병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매체는 많다. 물론 공신력 있는 채널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가려서 습득하는 것은 환자의 몫이다. 환자 스스로 능동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하고 의사를 만나기 전에 정보를 충분히 찾아봐서 자신의 상태에 대한 구체적으로 효율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혼자서 정보에 접근하기 힘든 고령의 환자의 경우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하고, 병원 내 정보 센터에서도 이런 환자들을 돕는 여러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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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잘 끝났고 나는 금세 회복하여 일상으로 돌아왔다.

 

짧은 입원 기간이었지만 병원에서 만난 의료진 모두가 친절했다. 병실 담당 간호사, 수술 전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준 레지던트 의사에게 퇴원하는 날 칭찬카드도 남기고 왔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이 드나드는 전쟁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그들이 나눠준 친절은 결코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3분 진료 공장이라는 단어는 지극히 사실이다. 하지만 부족한 의료진 수와 전국에서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려드는 상황에서 많은 환자들을 효율적으로 치료하는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고 능동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환자의 노력도 필요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김선영 저자처럼 환자를 생각하고 더 인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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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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