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3 Blue House Concert [공연]

본질을 잃은 클래식 콘서트
글 입력 2023.09.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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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야외 무료 공연이 늘어나고 있다.

 

최고의 음향과 철저하게 통제된 환경의 콘서트홀에서 정통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 야외 공연은 다소 모험이 될 수 있다. 아무래도 열린 공간이라서 예기치 못한 주변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기가 어렵고, 대체로 여타 공연과는 달리 전체관람가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뒤섞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산만하다. 특히 무료로 진행되는 공연에는 클래식에 대한 노출도가 적은 사람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악장 간 박수 등 소위 '클래식 감상 규칙'을 잘 알지 못하는 관객이 의도치 않게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야외 클래식 공연만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가 분명 있다. 콘서트홀에서 꼼짝없이 긴장된 자세로 감상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좀 더 캐주얼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음악을 즐기는 것도 색다른 매력이 있다. 

 

사실 모차르트 시대 때만 해도 지금처럼 전용 콘서트홀에서 조용하게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문화가 아니었다고 한다. 악장 간 박수는 물론이고 귀족들의 파티에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배경음악 정도로만 여겨졌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면 클래식 감상 문화에 대한 마음이 더 넓어진다. 너그러운 마음만 안고 간다면 주변의 자연스러운 소음이나 약간의 헤프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런 기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클래식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이런 공연은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 저녁에 청와대 헬기장에서 열린 블루하우스 콘서트도 비슷한 취지를 가지고 국가에서 기획한 무료 야외 클래식 공연이다. 이날 진행자 멘트를 빌리자면, 매해 유럽에서 열리는 유명한 야외 클래식 페스티벌처럼 블루하우스 콘서트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행사로 키워보겠다는 야심으로 기획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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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10일 양일간 열렸는데 나는 관현악 음악 위주인 9일 공연을 관람했다. 프로그램은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 발레 <호두까기 인형> 중 <그랑파드되>, <볼레로> 등 유명하면서도 비교적 짧은 클래식 곡들로 이루어졌다. 아무래도 폭넓은 대중을 상대로 열린 공연이다 보니 프로그램 구성도 대중의 귀에 익숙한 곡들을 편성한 듯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협연하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도  단일 악장 곡이라 클래식 감상 문화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도 부담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밖에도 각 분야에서 스타인 고영열 소리꾼, 마마무의 문별과 솔라, 박종성 하모니시스트와의 국악, 케이팝, 하모니카 콜라보레이션 무대도 있었다.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가 행사이니만큼 보다 야심차게 기획한 느낌이 들었다. 야외 공연이 선사할 수 있는 개방성과 창의적인 기획을 기대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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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연 출연자들의 연주 퀄리티는 만족스러웠다. 워낙 기량이 출중한 솔리스트들과의 콜라보 무대였기에 기대한 만큼 각자의 무대에서 그들의 실력과 매력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품격 있는 클래식 공연'을 표방했다고 하기에 이날 공연은 아쉬움과 부족함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공연 총 연출가가 클래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았다. 아무리 다양한 장르와 예술을 콜라보한 공연이었다고 하지만 엄연히 '클래식'을 주제로 한 공연이었다. 여러 면에서 이날의 공연은 클래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예술의 보조 역할로 전락시킨 것 같은 인상이었다.

 

우선 음향이 굉장히 아쉬웠다. 오케스트라의 세심한 셈여림을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특히 선우예권 피아니스트와 함께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 서정적인 미가 극에 달하는 18번 변주에서조차 피아노의 울림이 부족해서 충분한 감동을 전달하지 못했다. 마지막 곡인 <볼레로>는 솔로 악기로 조용히 시작해서 점차 다양한 악기들이 볼륨을 쌓아가며 마지막에 타악기까지 합세한 총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합으로 마무리되는 형식으로, 미미했던 음악이 서서히 빌드업되어 창대하게 끝나는 드라마틱함이 매력인 곡인데 곡의 스케일을 담아내기엔 음향이 턱없이 부족했다.

 

현장 스태프 역시 클래식 공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였다.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중계되는 화면에는 피아니스트의 손이 클로즈업 될 때 건반이 전혀 보이지 않는 구도라서 클래식 영상 연출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 카메라를 잡은 것 같았다. 음악이 조용히 연주되는 부분에서 기록용 카메라 셔터음이 끝없이 터져서 감상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나는 중계 카메라 근처에 앉았는데, 초반엔 촬영 감독들이 관중석에 다 들릴만큼 큰 소리로 소통해서 관객 몇 명이 뒤를 쳐다보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무엇보다도 제일 아쉬웠던 것은 시각 퍼포먼스와의 콜라보였다. 이날 공연에는 레이저쇼, 미디어아트, 드론쇼 등 화려한 시각 퍼포먼스가 함께했다. 그런데 이런 시각 퍼포먼스가 케이팝, 국악, 솔로악기 협연을 제외하고 오직 클래식 음악 무대에서만 이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소 의아하다. 클래식 음악은 그저 음악만으로는 대중의 집중과 관심을 사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 걸까? 예상하자면 아마도 스타 출연자 없이 오케스트라 단원들만 연주하는 클래식 공연은 관객들이 지루해 할 거라고 우려한 게 아닐까 싶다.

 

클래식 음악이 대중에게 쉬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이해한다. 나름의 고심 끝에 클래식 음악 감상을 좀 더 쉽고 재밌게 만들기 위해 시각 퍼포먼스를 생각해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각 퍼포먼스가 음악과 진정 콜라보하는 느낌이 들지 않고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는 점에서 과연 이 기획이 애초에 클래식 음악 감상에 초점을 맞추려는 의도가 있었나 의구심이 든다. 콜라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하는 법인데, 오히려 시각 퍼포먼스가 음악 몰입을 방해하는 듯했다.

 

예컨대 <호두까기 인형>에서 <그랑파드되>는 서정적인 멜로디로 조용히 시작해서 점점 감정이 격해지며 마지막에 이르러 절정으로 치닫는 곡이다. 음악만 들어도 그정도의 감정선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이와 콜라보한 미디어아트는 기하학적인 격자 무늬들이 복잡하게 얽히는 식으로 연출되었다. 개인적으로 전혀 음악과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곡의 감정선을 극대화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를 충분히 제작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과연 시각 연출을 담당한 아티스트들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제작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레이저쇼도 마찬가지였다.

 

피날레를 장식한 <볼레로> 무대에서의 드론쇼는 어떤가. 하트 모양, 별모양, 눈송이 모양, '블루하우스 콘서트' 글자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연출했지만 정작 <볼레로>라는 음악과는 선율적으로나 리듬적으로나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퍼포먼스였다. 관객들은 드론이 하늘에 그리는 환상적인 이미지에 정신이 빼앗겨서 환호하기 바빴고, 음악은 배경음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차라리 각 악기가 돌아가면서 같은 선율을 연주하는 곡의 특성을 살려 해당 악기 모양을 음악에 맞춰 드론쇼로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라이브 음악과 드론쇼를 맞추기가 어렵다면 추상적으로라도 곡의 전개와 맞는 이미지를 연출하는 등 조금만 더 고민했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분명 많았을 것이다.

 

<볼레로> 연주가 끝나고 홍석원 마에스트로가 스네어 드럼을 연상하는 모션을 취했는데, 이는 <볼레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간 스네어 드럼 주자에게 박수를 유도하기 위한 제스쳐로 보였다. 그러나 정작 중계 화면은 스네어 드럼 주자를 한 번도 비춰주지 않았다. <볼레로>가 어떤 곡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홍마에의 의도를 금방 이해했을 터. 어디까지나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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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서 보다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편견을 허물고 가벼운 마음으로 더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국가에서 기획한 무료 야외 클래식 공연이 무척 반갑고, 다른 음악 장르나 예술과의 콜라보를 시도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이날 블루하우스 콘서트를 통해 진정한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맛본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음악보다는 드론쇼가 더 기억에 남는 공연이 아니었을까? 음향도 부실한 전자음으로 송출하면서 그저 배경음악 정도로만 쓰일 거였다면 애초에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필요하긴 했던 걸까? 클래식 음악에 조금이라도 진심이었다면 좀 더 음악 해설을 전문적으로 잘할 수 있는 진행자 섭외(요즘 유튜브에도 클래식을 정말 재미있게 해설해 주는 유튜버들이 많다)나 클래식 연주에 걸맞은 음향에 더 신경을 썼어야 한다.

 

공연 자체에 대한 아쉬움과는 별개로 행사 진행은 만족스러웠다. 청와대는 주변 소음이나 예기치 못한 외부 환경과 물리적으로 동떨어진 위치 덕분에 이런 야외 공연을 하기에도 적합해 보였다. 아무래도 국가 기관에서 진행하는 공연이다 보니 스태프나 경호원들이 곳곳에 많이 배치되어 있어서 청와대 입장부터 자리 배정까지 모두 안정적으로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먼저 온 순서대로 자리를 자유롭게 앉는 게 아니라 아예 자리가 배정된 티켓으로 배부해주는 시스템도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본질에 충실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공연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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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예술의 대중화’와 ‘대중의 예술화’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한다고 한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중의 예술화'는 목표이고 '예술의 대중화'가 수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는 '대중의 예술화'를 위해 예술을 대중화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믿는다. 물론 답을 찾는 것은 예술가에게도, 예술업 종사자들에게도, 예술을 소비하는 대중에게도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그 과정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대중의 예술화'를 위한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저 수단이어야 할 '예술의 대중화'가 목적이 되면 본질을 잃게 된다. 이번 블루하우스 콘서트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나는 블루하우스 콘서트가 대중에게 클래식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진짜 클래식이 주인공인 콘서트가 되기를, 여느 유명한 유럽의 클래식 페스티벌처럼 음악 자체만으로도 편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행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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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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