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집요하고 축축한 위로의 냄새, ‘너를 모르는 너에게’ [도서/문학]

나선미 시집, ‘너를 모르는 너에게’
글 입력 2023.09.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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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시집 ‘너를 모르는 너에게’를

인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너를모르는너에게.jpg

 

 

2018.08.27.

 

책 밑바닥에 붉은 반점처럼 찍힌 날짜. 아마도 이것을 구매한 날일 것이다. 5년 전 그때는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평소 잘 찾지 않았던 에세이와 시집을 사서 읽었더랬다. 책을 읽으면서 인덱스 스티커를 붙이는 습관은 그때도 여전했다. 지금 쓰는 것보다 두꺼운 그것은 접히고 갈려서 마모되었다. 200쪽의 시집에 붙어있는 5개의 과거가 궁금하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를 알고 싶다.


오랜만에 펼친 시집에서는 묵은 종이 냄새가 났다. 오래된 책방의 한가운데 서서 맡는 공기의 냄새. 시간의 냄새였다. 본인의 생에 가장 황홀했던 달을 띄워 보낸다는 작가의 말을 시작으로 책장이 넘어간다. 수많은 단편의 이야기 혹은 압축된 장편일지 모르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목이 하단에 있는 구성이다. 시를 읽고 마지막에 제목을 확인하며 이야기의 본질을 느낀다. 반전을 맞이하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기억하고 싶은 시에 표시해둔다. 화려한 색의 인덱스 스티커가 점차 늘어난다.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사랑스러운 시가 있었고 첫사랑을 마주한 듯 간질거리는 시도, 삽시간에 눈물이 차올라 목덜미를 적실 만큼 감동적인 시도 있었다.


5개의 과거는 좌절과 미래, 방황을 이야기했다. 당시에 막연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많이 방황했던 듯하다. 단 5개의 인덱스 스티커가 말해주는 과거였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떠할까? 총 19개의 인덱스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 현재의 나에게는 위로와 확신이 필요한 듯 보인다.

 

 

15

천장에서 달을 찾는 딱한 짓은 말아라.


네 방에는 달이 없어,

달을 닮은 너만 있지.

 

- <너는 너를 찾아야 해> 중 일부 발췌

나선미, 너를 모르는 너에게, 연지출판사, 2015, p.15.

 

 

단 15쪽 만에 울게 한 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밤을 버텨내는 내가 사실은 그토록 찾던 달을 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나조차도 믿지 못하는 것을 고작 여섯 행으로 쓰인 시가 보장하고 있다. 단호한 어투에 담긴 신뢰가 믿기지 않는다. 어쩌면 ‘너’는 특정 인물을 지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애써 밀어내도 나를 향한 신뢰와 위로는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다.


 

174

죽고 싶어지면 그럴 용기로 엄마나 아빠에게

너의 유년시절을 들려 달라 해


아무리 못난 사람들이어도

그 순간만큼은 눈에 별이 비칠 거야

그리고 그 별은 너이겠지

 

- <못난 별은 없어>

나선미, 너를 모르는 너에게, 연지출판사, 2015, p.174.

 

 

전문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과거와 현재가 합치하는 유일한 지점이었다. 죽을 용기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별이라고 칭한다. 못난 별은 없다고 한다. 한 번도 주어진 적도, 쥐어본 적도 없다고 생각한 반짝임이 언제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을 만큼 힘들 때 죽을 용기보다는 반짝일 용기를 가져야겠다. 너도, 나도 못나지 않은 별이니 말이다.


 

202-203

네가 실로 근사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

너는 너를 백번 읊어줘도

제가 얼마나 환상인지 모르는

멍청한 내 하늘.

 

- <너를 모르는 너에게> 중 일부 발췌

나선미, 너를 모르는 너에게, 연지출판사, 2015, pp.202-203.

 

 

마지막 한 장만 남은 시점에서 비로소 ‘너’라는 인물은 나임을 깨닫는다. 특정 인물일 수 없다. 여태껏 지나온 200편에 가까운 시에서 계속 읊어주었다. 난 별이었고 달이었으며 누군가의 하늘이자 사랑이었다.

 

처음과 마지막 연에서는 특히나 단호한 어투로 말한다. 멍청하다고 해도 그 마음이 소중하다. 백한 번째 되어서야 너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가 실로 근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204

너를 울리고 싶었다.

/

내가 적은 시를 읽고, 네가 실컷 젖어들길 바랐다.

 

- <끝으로> 중 일부 발췌

나선미, 너를 모르는 너에게, 연지출판사, 2015, p.204.

 

 

잃어버린 선물을 찾는 것도 이처럼 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결국 나를 울렸으며 나는 한껏 젖어 들었다. ‘너’를 특정 인물로 생각했던 것이 무색했다.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끝으로>에는 작가의 의도와 마음이 한가득 담겨있다.

 

그가 원했던 대로 200쪽에 달하는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웃고 공감하고 울었다. 그리고 느꼈다. 그가 건넨 말과 마음은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이라는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는 나다. 당신은 이 시집을 펼친 내가 별이 되고 달이 되고 하늘이 될 때까지 계속 읊어주었다.

 

계속 써 내려가 주었다. 삶에서 포기를 지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좌절이 존재해도 놓지 않는 마음을 가르쳐주었다. 나를 몰랐던 나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었다.

 

책을 덮고 나니 손에 책 냄새가 한껏 배어있었다. 손녀를 달래는 할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하고 그리운 냄새. 다시 맡으니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것이었다. 나선미 시인이 안겨준 위로의 냄새다. 단호하고 집요하지만 결단코 피할 수 없다. 눈물샘이 제멋대로 작동하는 모양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아프게 참아내지 않는다.

 

울어도 된다. 눈물이 허락된 위로의 장소다. 손바닥보다는 조금 큰 까만 세상, 시집 ‘너를 모르는 너에게’가 당신의 눈물샘에도 가 닿길 바란다.

 

 

[박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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