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 오로지 ‘현재’에 머물게 하는 경험 [도서/문학]

도서 <여행의 이유>를 읽고
글 입력 2023.08.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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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알게 된 건 오래전 일이다. 소설가로 알고 있던 김영하 작가의 첫 산문집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e-book으로 접했던 책 속 문장들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종이책으로 다시 만났다.

 

이제까지는 여행을 가는 데에 어떠한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지긋지긋한 실타래 같은 하루하루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사람들과 새로운 곳에 간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느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엔 동의하지만, 여행에 대한 사유가 부족했다고 느꼈고 그만큼 책을 통해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다.

 

올해 3월, 대만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이 책과 함께했다. 창밖에 비치는 하늘을 보며 하는 독서는 정말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책이 ‘여행의 이유’여서 더욱 그랬다.

 

앞으로도 여행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건가봐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 147p
 

 

올해 3월에 대만 여행을 갔을 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도움을 받은 건 모두 타인으로부터였다. 한국 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던 티슈를 모두 내어주셨던 너무도 고마운 분들. 그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이 아니었다면 수습하는 데에 훨씬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사소한 호의일지 몰라도, 이런 게 진정한 ‘환대’가 아닐까. 넘어져 옷을 다 버려야 했던 순간에도, 그 순간 받았던 마음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 - 206p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8할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 지기들과 다음 달에 가는 홍콩 여행 계획을 세우는 과정부터가 즐겁다.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하고 카페에 앉아 어느 곳을 갈지, 현지에서 몇 시쯤 일어나야 일정에 차질이 없을지, 날씨는 어떨지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흘러있다. 함께 나눈 이야기만큼 설렘과 기대는 더욱 커진다. 세상 일은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들 하는데, 여행은 나에게 좋은 마음을 먹게 한다.

 

내가 꼽는 여행의 묘미는 무작정 들른 곳이 너무 마음에 쏙 들었을 때인 것 같다. 때는 2019년 크리스마스 무렵. 친구들과 일본 교토 지역을 여행 중이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던 때, 가까운 곳에 위치한 규카츠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본 곳이었지만 꽤나 기다리던 사람이 많아 맛집이라고 느껴졌고, 우리는 웨이팅을 시작했다. 그렇게 들어간 그 집 규카츠 맛은 정말 끝내줬다. 양에 비해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무엇보다 카츠가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다.

 

여행에서 이런 뜻밖의 행운을 맞이할 때, 일상 속 족쇄처럼 잔존하는 우울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종종 든다. 내 안에 침전하고 있던 불순물들을 깨끗하게 걸러주는 일종의 필터가 되어주는 느낌이랄까.

 

여행은 나를 온전히 자유롭게 하고 부정적인 걱정과 근심들을 흘려보내게끔 도와준다. 아무리 여정이 힘들고 지쳤다 하더라도, 다녀오고 나면 결국엔 좋은 기억만 남는 게 여행의 진정한 맛이지 않나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여행에서 얻은 힘을 토대로 또 일상을 살아가게 될 테니까.

 

 

 

비여행, 탈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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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행에 관련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있어도 내가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것과는 천지차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곳의 날씨도, 문화도, 분위기도 단편적인 영상으로는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요즘 방영하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을 보면, 아무리 멋진 영상이어도 감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는 분들도 많을 테다)

 

저자는 여행 관련 콘텐츠들을 이렇게 바라봤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 117p
 

 

기억을 되감아보니 정말 저자가 말한 이 문장이 이해가 갔다. 같은 장소를 갔어도 내가 기억하는 그곳의 모습과 타인이 기억하는 모습이 다르듯, 여행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tv에 방영되는 수많은 여행지들 중 다녀온 지역이 있다면 괜히 더 반가운 느낌이 든다. 내가 갔었던 장소가 방영되면 더더욱 그렇다.

 

저렇게 아름다웠나 싶기도 하고, 근처에 또 다른 볼거리가 있었구나 싶기도 하며 그 기억을 나도 모르게 확장시킨다.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명료해진다’는 말이 더욱 공감 가는 부분이었다.

 

 

 

인생은 어쩌면 여행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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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180p
 

 

가끔 어디론가 이동할 때 ‘이것도 여행이지’라고 생각하면 더욱 흥미진진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한강은 언제나 봐도 반갑고 예쁘다. 이어폰을 꽂고 기분에 맞는 노래를 들으면서 약속 상대의 옷차림이 어떨지 궁금해하고, 처음 가보는 지역이라면 우리 동네 어디와 비슷한지 떠올려보기도 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잠깐이나마 잊게 된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또한 체감한다. 그 기분이 외로울 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저 자유로운 느낌이다.

 

이런 경험을 되짚어 보면, 내 모든 움직임이 다 내 인생의 궤적이 될 것만 같다.

    

그렇기에 나는 또 여행을 떠나고, 낭만을 느끼고, 그걸 잊지 않으려 기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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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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