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 '그녀의 취미생활' - 복수도, 취미생활도 끈기가 필요하다

글 입력 2023.08.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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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7대 죄악이라고 불릴 만큼 좋은 감정은 아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다. 나 역시 잊고 살다가도 가끔, 내 지인과 바람이 나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 두 사람에 대한 분노가 차오를 때도 있다(TMI). 당연한 감정이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도 다양한 편이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 내가 관람한 이 영화도 한 사람의 분노가 절정에 달해 팡 터지는, 분노를 해소하는 통쾌한 복수극 영화였다. 영화의 이름은 바로 <그녀의 취미생활>.

 

한밤중, 누군가 커다란 짐을 힘겹게 들고 집으로 향한다. 도착한 낡은 집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바로 주인공 정인의 할머니였다. 정인의 할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정인이를 보고 놀라지만, 그래도 하나 뿐인 자신의 손녀를 꼭 끌어안아준다. 그러면서 정인에게 이렇게 얘기해준다. "누가 못 참을 정도로 괴롭히면, 아무도 안 볼 때 확 꼬집어버리라."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할머니는 숨을 거두게 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정인이 밤중에 찾아온 이 곳은 나고자란 고향이었으며, 이 곳은 생각보다 좋은 동네가 아님을 계속 끊임없이 보여준다.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이혼을 한 정인에게 마을 어른들은 그래도 여자는 남자가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빨리 다시 합치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한다.


신도시에서 내려온 잘나보이는 젊은 여자가 이사를 오니 자기들과 맞지 않는다 생각하여 뒷담화를 하고, 전자 발찌를 차고 다니는 배달원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등 비상식이 상식인 동네. 정인에게 분명 이 동네는 미치도록 벗어나고 싶은 동네였겠지만, 연줄 없는 정인에게 유일하게 갈 만한 곳은 이곳 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점차 바뀌게 되는데 바로 앞서 얘기한 신도시에서 내려온 잘나보이는 젊은 여자, 혜정의 등장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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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인과 다른 사람이었다. 작고 가녀린 체구, 낯을 가리고 떳떳하게 말 하는 것이 힘든 정인과 반대로 혜정은 말랐지만 듬직하고, 할 말은 다 하는 여장부같은 스타일이었다. 정인은 그런 혜정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혜정도 이를 눈치챘는지 정인에게 사근하게 다가가고 둘은 곧 친구가 된다. 시간이 흘러 정인은 숨겨왔던 비밀을 혜정에게 말하면서 더욱 더 끈끈한 연대가 형성되고, 정인이 혼자서만 생각해두었던 비밀스러운 일들을 하나하나씩 실행에 옮기게 된다.


나는 이 영화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순한 버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복수극의 영화는 대개 '매개'가 필요하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복남(배우 서영희)의 딸이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해서, <존 윅>은 아내가 자신에게 마지막 선물로 준 강아지가 죽는 걸 눈 앞에서 보게 되면서, <악마를 보았다>는 수현(배우 이병헌)이 아내가 경철(배우 최민식)에게 강간 및 살해를 당해서 시작된다. <그녀의 취미생활>은 정인의 할머니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어 다소 다르지만(할머니가 그들 때문에 돌아가신 것은 아니기에), 할머니의 죽음이 그녀에게 '복수'라는 감정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빈말이든 진심이든 우리는 '죽여버려'라는 말을 내뱉곤 한다. 물론 대부분 이 말 안에는 "그런 일을 행해서는 안되겠지만, 어찌되었든 그 상대에게 다소 불행한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죽기 전 말한 "확 꼬집어버리라"라는 말은, 분명 직접적인 말은 아니었지만 분명 정인에게 "죽여도 돼"라는 말로 들리지 않았을까. 할머니가 정말로 그런 뜻을 담았을 수도 있고, 그저 정인이 듣고싶은 대로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혜정이 이사온 것은 분명 신을 믿지 않아도 신이 내려준 기회였을 것이다.


나름 재미있게 본 영화였지만 생각보다 아쉬운 장면이 있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118분으로, 몇 장면들이 삭제되고 의문점들에 대한 설명이 되었다면 영화를 조금 더 만족스럽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1. 혜정의 도둑질 - 극중 혜정은 마을 사람들이 일 하는 시간에 마을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빈집에서 금품을 갈취한다. 이 장면을 추가한 이유는 나중에 정인이 큰 돈을 얻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리란 복선일 줄 알았는데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버렸다.


혜정이 도둑질을 하러 들어간 곳에서 발견한 총을 나중에 정인에게 들려주게 되는데, 이 장면 외에 금품을 챙기는 장면은 다소 의문이었다. 어쩌면 혜정이 단순하게 정인을 구원해줄 선량 그 자체의 인간이기보단 악한 면모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2. 2억 원의 출처 - 정인은 배관을 고치려던 중 마루바닥에 할머니가 숨긴 다량의 돈을 발견한다. 바닥 장판에 들러붙은 돈들을 말리는 장면은 꽤나 유쾌했는데, 나중에 혜정이 그 돈이 총 얼마냐 하는 말에 2억이 넘는 돈이라 답한다. 2억이란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몸도 안 좋은 할머니가 대체 언제부터 돈을 모아 2억을 마련했단 것인가? 차라리 5천만원 정도였으면 아마 충분히 납득이 됐을 지도 모른다.


이 돈이 중요한 이유는 정인이 큰 돈을 가지게 됨으로써 마을 사람들이 정인에게 들러붙고, 전남편이 찾아와 돈을 갈취해가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의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는 역할로도 보여지는데, 그러기 위해서 돈의 액수를 불린 것 같지만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운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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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별개로 다른 리뷰에서 보면 밭일을 하는 정인이 너무 하얗고 도시에서 온 혜정의 피부가 너무 까무잡잡하단 사람이 많았는데, 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본다.


밭일을 하는 사람의 피부가 너무 하얀건 어느정도 이상하단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신도시에서 온 사람의 피부가 하얘야 한다는 건 오히려 너무 흰 피부를 선망하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평생을 서울에서만 산 나도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니 말이다. 돈이 많다면 한 번쯤 꿈꿔보았던 태닝이란 것을 해봤을 수도 있었을 거다.

 

*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전남편을 직접 손으로 끝내고, 정인은 해방감을 느끼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그 이전부터 혜정은 정인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 "괜찮다"고 계속해서 얘기해준다. 자칫 보면 자신들의 살해를 정당화하는 걸로도 보일 수 있지만, 영화 속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둘에게는 그러지 않더라면 자신들이 죽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어떤 커다란 주제의식을 갖는다기보단, 정인이 이 고된 삶에서 벗어나게 된 것만으로도 그 몫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복수극에 제목이 <그녀의 취미생활>인 이유는, 사실 복수를 위해 정인이 남몰래 준비해오던 것들을 뜻하는 게 아니었을까. (밭에 매번 가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든가. 수박에 물을 주어 농사를 망치게 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될 일이 아니었을 것이며, 주사기를 이용해 술과 농약을 바꿔치기 하는 일도 처음부터 잘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간혹 복수라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최고의 복수는 용서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 용서를 함으로써 복수감에 해방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직접 내 손으로 그 목숨을 끝내야 해방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정인은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최고의 복수가 용서라고 이야기 하는 건, 그저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를 복수했을 때 그 복수가 나한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용서하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복수가 되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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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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