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름 포비아'에 관한 유효한 담론들 -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글 입력 2023.08.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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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를 관통해오며 인간은 숱한 진화를 견인해왔다. 오늘날의 그것은 과학 기술과 물질문명의 태동으로 인한 ‘신체의 확장’이다. 평균 수명은 완만하게 증가폭을 보이는 추세고, 동시다발적 소통은 자유자재로 가능해졌고, 국경을 초월해 심지어는 우주에 이착륙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몸에 부착된 생명 유지 장치, 손에 들린 스마트폰과 노트북, 매일 드나드는 이동 수단들은 신체의 한계를 무화 시켰지만, ’윤리적 공백’으로 우리의 사고력은 예각화되고, 감수성은 둔화되고 있다.

 

 

사진_공식포스터1.jpg


 

즉, 물리적으로는 신체를 초월했으나 실질적으로는 그러한 시스템에 주도권을 양도하게 된 것. 금번에 개최된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은 ‘안전한, 신체의 확장’을 대주제로 이처럼 ‘신체의 확장’에 관한 기대감이 확산되어가는 가운데, 그와 전도되는 방향으로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얼개를 짰다.


그중 내가 접했던 두 섹션은 ‘다름 포비아’가 난무하는 시대의 성질을 꿰뚫고 그러한 적대가 아닌 연대로, 퇴화가 아닌 진화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생산적인 담론을 모색하는 작품들로 꾸려졌다.


 

 

장소의 감각, 물질의 그물3 <선별과 해석과 소란의 공생>


 

현장에서 처음 마주한 작품은 ‘대안영상’의 취지를 직관적으로 담고 있었다. 2021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내부에서의 일상 소음을 채집한 아카이빙 음반이었고, 5분가량 동안 암전된 극장에서 청취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어서는 연출가인 ‘카이누마 히로시’의 작품 해설 영상이 스크린에 띄워졌는데, 그는 과학 기술과 사회 병리에 대해 다년간 연구해 온 학자로서 그리고 후쿠시마 현 토박이로서의 술회를 곁들여 논지를 풀어갔다.

 

 

[크기변환][포맷변환]선별과 해석과 소란의 공생.jpg

 

 

사실 주제 자체는 평이했다. 정보화 사회의 맹점을 짚어낸 것. 그는 이를 공론장에 내밀 키워드를 ‘선별’하고 그에 대한 양분된 ‘해석’을 산출하고, 이에 분노하거나 환호하며 ‘소란’을 키우는 구조의 기형성이라 재명명했다.


그러나 내용과 형식을 선정한 내막을 접하고 나면 이 작품이 그보다 몇 발은 더 나아가는 섬세한 구성을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소리’라는 수단을 선정한 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부연했다. 표현 수단은 다양하지만 '문자’는 상징성을 필연적으로 담보할 수밖에 없고, ‘영상’은 전체를 포괄할 수 없기에 어떤 형태로든 그 의도가 변질될 소지가 있다는 것. 그리하여 즉각적으로 느끼고 각자 상상력을 부풀릴 수 있는, 날 것의 생활 소음을 택한 셈이다.


그리고 이는 민감한 소재인 ‘후쿠시마 원전’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선정한 의도와도 긴밀히 조응했다. 오늘날 국내외 각지에서는 정치적 역학 관계에 의해 원전 안정화, 오염수 방류에 관해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고장 ‘후쿠시마’와 자주 방문하는 원전은 무성한 소문과는 달리 평범한 일상들이 영위되고 있는 장소 중 하나임을 담고 싶었다는 것이다.


작품은 ‘후쿠시마 제1원전’을 조명하고 있지만 이는 비단 일본과 인접 국가 간의 국지적인 과제로만 축소되지 않고, 나아가 범국가적 차원의 문제들을 폭넓게 조망하도록 한다. 그 5분에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COVID-19팬데믹과 백신과 관련한 소재가 담길 수도 있는 것이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알고리즘으로 정보 편식이 가중화된 현재, 내 인식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출처에 대해 자문해 보게 된 작품이었다.


 

 

글로컬 부문1: 기억하는 우리


 

전자의 경우는 정보화 사회의 획일화 현상을 바탕으로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다름 포비아’에 관한 논지를 풀어갔다면, 글로컬 섹션에서는 ‘이데올로기’, ‘젠더’, ‘장애’, ‘세대’ 등을 각 주제로 하여 그에 대한 ‘다름 포비아’가 어떤 폭력을 야기하는지 혹은 그로부터 어떻게 탈출해 화합을 이룰 수 있을지 역설하는 작품들로 배치되었다.


산업화와 전쟁이 자연과 인류에 미친 악영향을 이미지즘적으로 설파하는 ‘해마’, ‘당신이 남긴 모든 것’부터 신체적 혹은 인식적인 한계에 관한 초월과 억압의 문제를 다룬 ’우리의 남자, 여자‘, ‘나의 피부’, 떠나간 가족과 그의 삶을 애도하는 ‘영사기사의 일기’, ‘제사’까지 저마다 연출가의 뚝심과 모험심이 돋보이는 수작들이었다.

 

 

[크기변환][포맷변환]나의 피부.jpg

 

 

모든 작품이 다 유의미했지만, 그중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던 건 세 편이다. 먼저 언급할 ’나의 피부‘는 장애에 관한 한계와 편견에서 탈피해 역동적인 플라밍고로 자유를 만끽하는 무용수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다. 그들은 춤을 추는 법도 모르고, 각자의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지만 드레스를 갖춰 입고 한데 모여 춤을 출 때만큼은 모든 형식, 심지어는 제 몸마저 초월한 예술가가 된다.


한편, 신체라는 감옥에서 끝내 탈출하지 못한 이의 비극을 조명한 작품 ‘우리의 남자, 여자’도 있다. 이슬람의 종교적 사상이 뿌리박힌 한 가정의 트랜스젠더 딸이 사망한다. 관습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몸을 씻겨야 하지만, 신의 섭리를 거역한 몸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이를 거부하면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결국 아버지는 그녀의 가슴 보형물을 제거하고, 어머니는 기도로 비정한 부모를 둔 그녀를 위해 신에게 자비를 구한다. 숨을 거둔 후에도 존엄을 보장해주지 않는 관습적 폭력과 현실적 장벽에 실존주의적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크기변환][포맷변환]제사.jpg

 

 

이렇듯 보수적인 문화로 이해에 이르지 못한 가족의 참상을 조명한 작품이 있는 반면, 사랑과 애정으로 세대, 문화의 간극을 봉합하는 작품도 있다. 바로 조나단 승준 리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 기초한 ‘제사’. 글로컬 부문이라기엔 예외적인 제목과 설정이 어쩌면 이 작품을 더 특별하게 각인시킨 것도 있다. 지난 covid 19팬데믹 당시 작고하신 할아버지의 제사를 계기로 제작된 본 작품은 조부모와 부모 세대 간의 트라우마를 복기하고, 그러한 상흔이 가족 성원 간의 친밀감에 미치는 영향을 담는 데 주력한다.


상투적인 메시지일 수는 있지만, 여타 매체에서 지속적으로 활용되어 온 ‘가족애’라는 피상적인 명명 대신 스킨십, 노래, 과거 회상 등 구체적인 행위를 동원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구체적으로 재현해 낸다. 원대한 포부도 화려한 기교도 없지만, 세대 갈등이 하나의 사회 문제가 된 현시점에 참으로 시의적인 외침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이 신체의 형질을 토대로 극복 가능성에 대해 다룬 것이라면, 본 작품은 서로를 향한 진득한 포옹이 각자의 분리된 신체마저 초월한 이해에 가닿게 함을 그린다.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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