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붉은 파랑새

극단 “뭉쳐” 연극 〈붉은 파랑새〉 관람 후기
글 입력 2023.08.0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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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은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상상력을, 혹은 교훈을 건네준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이러한 동화책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게 됨을 알려주는 상투적인 표현 중 하나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어른들에 의해 쓰인 해피엔딩의 동화는 약간의 진실을 가리고 이야기의 미래를 두루뭉술하게 서술함으로써 희망과 행복의 가치를 유지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들, 어쩌면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음에도 현실을 마주한 우리들은 동화에서 가려졌던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의 시야는 과거에 비해 넓어졌으며 삶의 이야기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인식한다. 그러고선 동화 속 이야기에 질문을 던지곤 한다. ‘만약 그들이 어른이 되었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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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뭉쳐의 〈붉은 파랑새〉는 이와 같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질문의 대상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로, 주인공 남매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작품은 파랑새로 대유되는 행복을 찾아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과정에 있음을, 그리고 우리 곁에 항상 존재함을 암시한다. 〈붉은 파랑새〉는 기존의 이야기에서 20년이 흐른 뒤를 배경으로 한다.

 

틸틸에게 다시 나타난 파랑새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처음엔 파랑새인 줄 알기조차 어려웠다. 푸른색 대신 붉은색이 감도는, 늙은 파랑새는 여전히 자신이 파랑새임을 주장한다. 파랑새는 환상 세계로 갈 수 있는 요술 모자와 함께 “내가 파랑새란 걸 믿어줘”라는 말을 건네고, 틸틸은 이를 받아들인다.

 

잔뜩 기대를 품고 다시 찾아간 환상 세계는 틸틸을 예전처럼 반겨주지 않았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숲은 더욱 황폐해졌고 토끼는 외로이 지낸다. 밤의 궁전은 더욱 커져만 가며 틸틸에게 가난이라는 두려움을 보여주었다. 행복의 궁전에는 새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으며 미래의 나라는 발을 들이지도 못했다.

 

밤의 궁전이 틸틸에게 보여줬던, 엄밀히 말해 틸틸이 직접 보았던 두려움의 대상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어렸을 적 보았던 유령과 질병, 전쟁처럼 거대하고 막연한 대상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미시적인, 가난이라는 현실이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밤의 궁전이 세력을 넓히듯 틸틸의 마음속을 조금씩 뒤덮어왔다.

 

두려움과 공포로 마음이 흔들리던 틸틸에게 행복의 궁전은 새장을 제시한다. 틸틸은 그곳에서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파랑새’를 발견하고 그것에 매료된다. 너무도 아름다운 새장 속 파랑새의 모습에 곁에 있던 붉은 파랑새의 존재를 차치하고 마치 허공에 손짓하듯 연신 새장 속 파랑새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빛의 요정의 충고와 함께 붉은 파랑새와의 약속이 어긋나 틸틸은 미래의 나라를 가보지 못한 채 환상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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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떠나기 전, 붉은 파랑새의 말 “내가 파랑새란 걸 믿어줘”에서 파랑새의 존재는 믿음의 문제임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행복은 특정 대상에 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발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혹은 현실을 마주한 틸틸은 행복을 쟁취해야 할 어떤 대상으로 분류한다. 본래 자유로운 파랑새를 새장 안에 가둬 영원히 소유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현재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현실 세계의 원리와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경험한 어른의 눈엔 어릴 적 파랑새는 늙고 볼품없는 붉은 파랑새가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기대하고 욕망하는, 호화롭고 찬란한 대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그럼에도 붉은 파랑새는 늘 곁에 존재했다.

 

언젠가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했던 이야기 중 여행은 쾌락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는 여행에 대한 단순한 비판이 아니다. 1년 중 단 며칠, 혹은 몇 주의 여행을 위해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돈을 벌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일을 매일 행하는 사람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금욕적인 태도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대사회라는 현실을 살아가므로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욕구와 만족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무더운 여름날의 저녁 가족들과 함께 시원한 과일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거나 길가에 펴있는 이름 없는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며 잠깐의 기분전환을 경험할 수 있는, 각자가 가진 작은 행복들에 대해 지나치지 않고 떠올리며 머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봄에 대한 청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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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크기가 아닌 지속이다. 한순간의 짧은 쾌락으로서가 아닌, 조그맣지만 늘 곁에 있음을 인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외부의 대상이 아닌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므로 개인마다 그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틸틸에게 붉은 파랑새가 있다면 누군가에겐 노란 파랑새가 있을지도 모른다. 새장에서 벗어나 주위를 잘 살펴보면 어느샌가 나만의 파랑새가 곁에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충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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