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행복은 변색되도 행복이다 - 붉은 파랑새

세상 모든 틸틸들에게
글 입력 2023.08.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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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는 동화 <파랑새>는 어른아이 할것없이 오랜 기간 읽혀져온 사랑받는 고전이다. 동화의 원작은 메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로, 이번엔 어른이 된 틸틸과 미틸의 이야기로 다시 쓰여졌다. 당차게 모험의 세계로 떠났던 틸틸과 미틸의 20년 뒤는 어떨까? 어른이 된 틸틸의 모험을 2023년,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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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생생한 연기를 라이브로 관람할 수 있는 건 연극의 크나큰 묘미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의 연극 관람이라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고전극을 본 지는 정말 오래됐다. 학창시절, 고전 명작 중 하나인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감상한 적이 있는데 극 자체는 멋있었지만, 집중도를 끝까지 유지하기는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과 대사, 문화 등이 현실과 차이가 있기에 공감하기 쉽지 않았다.


산울림 고전극장은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는 동시에 고전극의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2013년부터 연극과 고전문학을 연계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해왔다. 원본 콘텐츠의 재생산을 통해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고전문학의 본질을 알리고, 그에 대한 관객들의 흥미와 관심을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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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파랑새>는 윤채영 작가가 현대적으로 재창작한 작품으로 연출은 안제홍, 공연은 극단 뭉쳐가 맡았다. 원작 <파랑새>의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현대 한국의 정서에 맞게 창작된 <붉은 파랑새>는 자체 OST를 갖고 있어 도입부부터 뮤지컬스러운 무브와 합창으로 경쾌한 시작을 알린다.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와 위트 넘치는 대사, 율동과 움직임 사이에 있는 코믹한 동작들이 미소를 자아냈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슬프지도 않고, 대놓고 웃기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만들어놓은 판타지에 발을 들이면 감정이 물밀 듯이 왔다갔다 움직였다. 틸틸과 파랑새의 나지막한 대사와 담백한 감정표현, 틸틸과 미틸이 회상하는 어린시절의 동심, 각 캐릭터의 잔망스러운 연기는 박장대소를 참지 못하게 했다. 잊고 살았던 동심과 현재 나의 행복의 색을 고민하게 만들던 극이었다. 


또 조명과 움직임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조화를 이루었다. 작은 공간을 알차게 활용한 것도 돋보였다. 무대부터 객석까지 빈틈없이 사용한 덕에 극에 대한 집중도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래서 <붉은 파랑새>는 저 멀리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실재처럼 느껴졌다. 극단 뭉쳐의 연기력이 흡입력에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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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의 주제는 “고전문학,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서”로 정해졌다. 관람한 <붉은 파랑새> 뿐 아니라 <용의 아이>, <이숲우화-짐승의 세계>, <팜 파탈; 가려져 버린>도 이러한 취지 아래에서 공연되었다.

 

 

 

틸틸, 정말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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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어린아이였던 틸틸과 미틸은 요술 할머니의 부탁으로 파랑새를 찾으러 떠난다. 시간이 흘러 요술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큰 다이아몬드가 박힌 할머니의 모자가 틸틸의 손에 쥐어진다. 어린 시절 함께 웃고 떠들던 동생 미틸은 서울로 떠난지 오래다. 혼자 고향에 남겨진 틸틸의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 대신 씁쓸한 웃음이 어려있다.


요술 할머니의 장례식에 도착해 식장 한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려던 틸틸은 어디선가 날아온 새를 발견한다. 털이 빠져 볼품없어 보이는 새는 파란 몸 구석구석에 빨간 깃털이 붙어있다. 파란색이 바래져 붉은 털로 변한 것이다. 그런 새가 말을 건다. 틸틸은 놀라 눈이 동그래진다. 정체모를 붉고 파란 털의 새는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와 틸틸의 이름을 부른다.


“틸틸, 정말 행복해?”


새의 정체는 어린시절 틸틸과 미틸이 찾아 해메던 파랑새. 그러나 틸틸은 파랑새의 정체를 믿을 수가 없다. 새도 이렇게 나이들 수 있다니. 파랑새라고 박박 우기는 붉은 파랑새가 틸틸에게는 못마땅할 뿐이다.


파랑새는 어린 시절 자신을 찾던 틸틸과 미틸을 보았더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한번 그 시절로 떠나보자고 권한다. 요술 할머니의 모자와 함께라면 어느 순간이든 갈 수 있다. 붉은 파랑새는 함께 떠나주겠노라고 말한다. 단, 하나의 약속을 지켜준다면.


"내가 파랑새라는 걸 믿어줘."


틸틸은 과연 다시 떠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을까? 그의 마음은 뒤숭숭해진다. 보잘 것 없는 나의 현실이, 냉혹한 현실에서 지쳐버린 청년 틸틸이 그때 그시절로 가는 일은 바보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바보 같은 일을 다시 한번 해보기로 맘 먹는다. 출발하기 전까지는 모른다. 파랑새를 찾으러 떠나는 일이 행복을 위한 길인지 바보 같은 일인지는.

 

 

 

당신의 행복은 무슨 색?



틸틸과 붉은 파랑새는 어린 시절 파랑새를 찾던 과거를 향해 떠난다. 그곳에는 아이의 모습을 한 미틸이 있고, 한곳에서 오래토록 숲의 흥망을 지켜본 떡갈나무가 있고, 미틸이 놓은 덫에 다친 고양이가 있다. 빛의 여왕은 오랜만에 돌아온 틸틸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그녀가 안내하는 세상에서 틸틸의 마음은 동심을 향했다가 즐거움이 되었다가 후회가 되었다가를 반복한다. 마침내 그는 파랑새라는 환상을 본다. 진짜 파랑새가 떠난 것은 알지 못한채로 밤을 지새우고, 빈 새장 속 파랑새를 바라보며 미묘한 미소를 짓는다.


그들에게 파랑새는 어떤 의미일까? 원작 <파랑새>에서 그 의미는 주로 행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나는 극을 감상하는 동안 파랑새의 의미가 계속 다르게 느껴졌다. 각도를 달리 할때마다 다른 빛을 뿜는 프리즘처럼 붉은 파랑새는 여러 가지 색으로 비추어졌다. 그것은 한때 찾아 헤매던 꿈, 지키고 싶던 동심, 어린날의 환상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환상, 꿈, 비전은 한끗차이 아닐까. 강렬히 소망하는 어떤 것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걸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태도가 만나면 소망의 이름이 결정된다. 그리고 때때로 그 이름은 타인의 시선에 의해 다르게 덧붙여지기도 한다.


강렬히 소망하는 어떤 것은 행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행복’이라는 단어로 말한다고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스스로의 행복이 있고, 어른이 되면서 행복을 지키는 힘을 길러나간다. 나의 행복은 온전한 나의 것, 타인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틸틸이 상상하던 행복의 모습과 붉은 파랑새가 상상하던 행복의 모습, 떡갈나무가 생각하던 행복의 모습, 미틸이 상상하던 행복의 모습은 각자 다 다를 것이다. 틸틸이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는 정해진 행복의 이미지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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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색이 변색되어도 행복



늙어서 날개가 붉게 물들어 버린 파랑새가 있다. 파랑새는 우리가 알던 귀엽고 앙증맞은 새가 아니었다. 덩치도 크고 말도 하고 털도 빛나지 않는다. 그러나 빛의 여왕도 토끼도 떡갈나무도 그를 파랑새라고 ‘믿기로 했다’고 말한다.

 

행복이 흔한 행복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행복이라고 믿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의 행복을 지키는 태도 아닐까. 누군가의 눈에 안쓰럽고, 아름답지 않고, 예쁘지 않아보여도 행복이란 나와 친구들이 행복이라고 느끼면 행복인 것이다.

 

굳게 믿어오던 꿈을 부끄럽게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은 때때로 가시가 되어 상대방에 날아가 꽂다. 그 시선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지켜야 한다. 나만의 행복을 지키는 힘을 길러야 한다. 


작가는 말한다. 행복은 색이 변색되도 행복이라고. 우리는 자주 행복을 의심하고, 비교하고, 확인한다. 행복은 비교될 수 없는 것인데도 백화점에서 산 옷을 비교하듯이 맵시를 확인하고, 품질을 의심하며, 옆사람의 것과 비교한다.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맞는 행복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틸틸은 밤의 궁전에서 문을 열고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래를 보게된다. 아프고 가난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의 두려움은 의심에서 기인했다. 나의 현재와 행복을 믿지 못하는 일이 그를 어린시절처럼 웃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파랑새를 찾는 일은 자신을 찾는 일이다.

 

자신을 또렷이 볼 수 있는 사람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행복이란 부끄러운 마음을 소중히 안아주는 것.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속에 있는 것. 어떤 시선에도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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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작가와 연출을 맡은 두 분과 틸틸과 미틸을 맡은 두 배우님에게 파랑새를 어떻게 느꼈냐고 물었다. 안제홍 연출은 가족을 떠올렸고, 윤채영 작가는 삶을 긍정하는 힘이라고 짚었다. 틸틸을 연기한 한성현 배우는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미틸을 맡은 박세은 배우는 어린시절의 행복을 각각 떠올렸다고.


어린 시절에는 파랑새는 파랑새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파랑새다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 파랑새의 모습을 상상했다. 사실 그 생각은 때때로 어린시절의 행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어른이 될 수록 나를 힘들게 했다. 정해져있는 파랑새의 모습에서 멀어질수록 나의 행복도 멀리 날아갔다.


시간이 지나 느낀 점은, 난 나의 파랑새를 그릴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채색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붉은 파랑새>는 앞으로의 삶의 색을 다시 생각해보게했다. 그리고 행복을 지킬 힘이 부족한 어른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러니 행복을 의심하지 말자. 우리의 행복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니까.


좋은 공연을 선물해주신 극단 뭉쳐와 작가, 연출님, 그리고 의상, 조명, 안무, 운영 스탭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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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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