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산이 있는데 비를 맞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어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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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손예진과 조인성이 자켓을 들고 캠퍼스를 주파하는 장면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때 흘러나오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까지도 말이다. <클래식>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오마주했다. 도시 소녀와 시골 소년의 연애담이라는 스토리는 소설과 완전히 일치한다.
여기서 ’클래식‘은 순수한 사랑을 의미한다. 이는 자본주의 시대 이전에 사랑의 모범으로 제시되곤 했던, 성적 욕망이 표면화되지 않은 낭만적인 ‘기사도적 사랑’과 유사하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열병과도 같은 순수한 사랑을 묘사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자식을 통한 사랑의 대물림, 지나치게 비극적으로 귀착되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같은 모티프는 신파적으로도 느껴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클래식’이라는 제목과 어울린다. 동시에 감독은 뻔한 사랑이야기를 저릿하고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지루함을 상쇄한다.
영화 속에는 ‘비’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비오는 날 정자에 나란히 앉아 수박을 먹는 준하와 주희의 모습은 정겹다. 비가 세차게 내려 피신한 수숫단 볏집은 둘의 사랑이 진척되는 계기가 되고, 주희와 준하가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인 지혜와 상민은 비내리는 날 사랑을 확인한다.
지혜는 우연히 상민의 우산을 학교 매점에서 발견하고, 함께 비를 맞던 그날, 상민이 우연히 지혜를 만난것이 아니라 우산을 매점에 버려두고 비를 피해있던 지혜에게 달려 온 사실을 알게된다. 상민이 매점에서 우연히 비를 피하고 있는 지혜를 보고서, 자신의 우산을 버려두고 그녀에게 달려간 것이다.
이윽고 지혜는 상민의 우산을 들고 상민에게 달려간다.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지만, 그녀는 상민의 우산을 펼쳐들고 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본 매점언니는 묻는다. “왜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니?“ 이에 지혜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산이 있는데 비를 맞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어요?"
이후 우산을 쓰지 않고 비를 맞아가며 교정을 달리는 지혜의 모습은 사랑의 환희를 효과적으로 현시한다. 그녀는 학군단 무리가 맞은편의 상급자를 향해 경례하는 것을 보고 맞경례를 한다. 사랑의 비이성적이고도 낭만적인 충동은 장교로 표상되는 강고한 체계를 흐물흐물하게 만든다. 이처럼 때때로 사랑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벽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충만한 감정을 유발한다. 작중에서 비는 사랑의 감정을 환기하는 일종의 객관적 상관물로 기능한다.
개인적으로, 영화와 학연이 있다. 원작 ‘소나기’를 쓴 황순원은 내가 다니는 학교-학과의 교수였다. 소설을 영화로 오마주한 곽재용 역시 모교 출신이다. 작중에서 지혜와 상민이 내달리는 캠퍼스 역시 우리학교였다.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학교의 도서관 건물과 헐떡고개를 영화에서 보니 익숙하면서도 신기했다.
덕분에 반가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썸 타던' 사람과 비 내리는 날 학교를 거닐었던 일이 있는데, 영화를 보니 문득 그런 기억도 떠오르며 흐뭇해졌다.
[최정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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