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붉은 파랑새를 믿어야만 하니까 – 붉은 파랑새 [공연]

산울림 고전 극장에서, 연극 <붉은 파랑새>를 관람하고
글 입력 2023.08.03 20: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그렇게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에 읽은 대부분의 동화 속 결말은 이 짧은 문장에 담겨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다. 끝내 물거품으로 변하고만 인어공주나, 추운 겨울 쓸쓸한 죽음을 맞은 성냥팔이 소녀, 잘린 두 발목으로 영원히 춤을 추게 된 빨간 구두처럼. 아주 충격적이거나 가슴 아픈 비극이 아니고서야 뻔하디 뻔한 해피엔딩은 동화 속 주인공들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리란 동심과 함께 몸이 자라면서 나날이 작아졌다.

 

‘파랑새’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결말은커녕 줄거리조차 잊어버린, 파랑새가 행복을 의미한다는 깊은 뜻마저 이제야 이해한, 이십 대 중반의 내게 동화 ‘파랑새’란 다른 해피엔딩 동화들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겠거니 짐작하는 오랜 소꿉친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20년 후의 이야기로 진행된다는 본 연극의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 막연한 행복을 그리던 주인공의 미래가 지극히 평범한 나의 현재와 다를 바 없어 보여 조금은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어떤 결말은 굳이 현실의 색을 입힐 필요 없이 동화 그대로 아름답게 남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동화와는 달리 현실은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보단 지치고 두려워 뒤로 숨어버리고 싶을 때가 더 많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의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유년 시절을 함께한 동화 속 주인공들 역시 어른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공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저앉고 싶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안고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고.

 

 

IMG_0332.JPG

 

 

꿈과 모험을 좋아하던 ‘틸틸’은 자라 현실의 무게에 치이는 어른이 되었다.

 

과거는 아득하고 현재는 버거우며 미래는 막막한 틸틸 앞에 털이 빠져 붉은 살이 드러난 늙고 병든 새 한 마리가 나타난다. 각박한 현실 속에 행복을 잊고 사는 틸틸에게 자신이 파랑새라 주장하는 붉은 새는 다시 한번 어린 시절 환상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자고 권유한다. 단 한 가지, 자신이 파랑새라는 사실을 믿어 달라는 당부와 함께.

 

동화 파랑새와 마찬가지로 연극 <붉은 파랑새>는 행복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더불어 어린 틸틸과 함께 꿈을 꾸던 어른이 된 지금의 우리에게 지치는 현실과 불안한 미래에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안고 나아가라는 위로를 전한다.

 

미래를 향한 두려움 때문에 안락한 환상에 빠져 끝내 진정한 행복을 놓쳐버린 틸틸의 모습에서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지금의 행복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 비쳤다. 어린 틸틸에게는 새장 속 산비둘기가 파랑새로 보였던 것과는 달리, 아무리 열심히 외쳐도 틸틸은 붉은 파랑새가 진정한 파랑새라고 믿지 않는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을 미덕으로 삼고 사는 흔한 현대인이지만, 가끔은 많이 아는 것이 오히려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산비둘기가 파랑새가 될 수도 있던 어린 틸틸이 알던 행복은 풍족한 음식과 따뜻한 보금자리 같은 것이었겠지만, 어른이 된 틸틸을 두렵게 하는 것은 비단 가난뿐만이 아닌 실패와 좌절 같은 책임을 동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관념을 모르던 때에 우리는 굳이 그 단어를 몰라도 사소한 일상에도 쉽게 행복해질 수 있었고, 자유라는 이름을 모르던 때엔 온 세상을 내 것 같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좀 더 많은 이름과 넓은 세상을 알게 되면서 행복에 더 많은 조건이 붙게 되었고, 어른이라는 수식에 붙는 책임을 이해하게 되며 당장의 현실보다 오지 않은 미래가 더 중요해졌다.

 

미래는 거창해야 할 것 같고 행복은 대단해야 할 것 같아서, 늙고 추레한 붉은 새가 나의 파랑새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두려운 상상에 갇혀 미래로 나아가기를 주저하곤 한다. 고단한 현실에 치이는 어른이 된 지금 우리의 행복은 어린 시절 그리던 작고 아름다운 파랑새보다는 늙고 병들어 붉은 살이 드러난 모습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중요한 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다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 현실이 동화 속에 그리던 미래처럼 마냥 밝고 신나는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좌절하고 실망하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매 순간 행복했으면 좋겠다.

 

 

IMG_0333.JPG

 

 

실패와 좌절로 누더기 진 지금 이 순간이 곧 다가올 미래를 위한 성장 과정임을, 마침내 파란 깃털을 모두 벗어낼 파랑새가 아름다운 붉은빛으로 환히 타오를 것임을, 우리는 붉은 파랑새를 믿어야만 한다.


 

[김소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