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 맞다, '일러스트레이션'! -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V.15

수많은 물건들 속 그것의 이름은 원래
글 입력 2023.07.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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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IFV.15_포스터.png

 

 

날이 따듯해진다는 것은 바로 박람회의 계절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날이 따뜻하다 못해 뜨뜻해진 요즈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코엑스를 자주 방문하고 있다. 주류 박람회, 서울국제도서전. 서울에 오기 전까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아, 언젠가 가봐야지!' 했던 행사를 점검표에서 죽죽 그어나가듯 방문해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이하 서일페)였다.

 

 

 

익숙한 낯들 뒤의 낯선 얼굴들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매우 큰 행사에 대비하고자 입장 전에 가보고 싶은 부스를 미리 몇 곳 골라두었다. 알던 캐릭터, 알던 작가님인 곳도 있었고, 부스 홍보 게시글 중 마음에 드는 그림을 걸어둔 곳이기도 했다.

 

신기했던 건, 생각보다 익숙한 낯들이 많았다. 카카오톡 채팅창 속에서 친구들이 보냈던 이모티콘의 캐릭터가 그곳에 있었고, 길거리를 지나치다 슬쩍 들러 구경했던 소품 가게에서 보았던 캐릭터가 그곳에 있었다. 나는 '이 분야'와 완전히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생각에 무언가를 먼발치에서나마 구경하고자 간 박람회였는데, 오. 생각보다 내가 좀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단 한 가지만큼은 나에게 아주 낯설었는데, 그게 바로 'ARTIST' 배지를 걸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분들이었다. 아무리 아는 작가님이라고 해도 내가 그분의 작품을 알지, 그분의 얼굴을 알았겠는가? 작품이 인쇄된 엽서를, 우표 스티커를, 손지갑을 구매할 때마다 감사하다고 환하게 웃어주시는 '작가님'의 얼굴을 본 건 서일페가 처음이었다. 새삼 '그래, 이 아름답고 귀한 것들이 인터넷에서 자연 발생한 게 아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는 살면서 가장 다양한 그림을 마주친 곳인 동시에, 살면서 가장 많은 작가를 만난 곳이기도 했다.

 

 

전시회 풍경.jpg

위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P16 노낫네버, L01 주제관, R09 웅크린선인장.

 

 

 

예상치 못했던 짧은 추억과의 만남


 

특히 오래 기억할 것 같은 낯이 있다. N29 번 부스의 OUNCE studio의 그림들이다. 멀리서 보였던 대만 지도를 보자마자 "어, 대만이다!" 외치고 곧바로 향했다.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인데, 왜 대만을 볼 때마다 이렇게 반갑고 그리운지 모르겠다.

 

밝은 갈색, 종이 질감의 배경에 색연필로 그려진 듯한 작품들은 내가 보고 왔던 대만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추억과 내 감정들이 너무 좋았다. 그 감상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에 우표 스티커를 샀다. 여러 소품을 구매했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을 일러스트레이션을 꼽자면 꼭 이 스티커를 꼽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 작가님이 영어로 '계절별 대만의 식재료들'이라고 설명해주신 걸 생각하며 스티커 안의 한자들을 더듬더듬 읽어봤다. 입춘, 청명, 백로. 인제 보니, 말해주신 '계절'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있는 '24절기'였다! 어쩌면 당연히 공유할 만한 절기 문화를 생각지도 못했었던 게 신기했다. 좋아하는 나라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하나 더 찾은 기분이다. 절기마다 다이어리에 하나씩 붙이며, 오래도록 그 부스와 작가님의 얼굴을 생각할 것 같다.

 

 

OUNCE.jpg

   

 

 

작가의 세계로 어서 와


 

주류 박람회를 방문했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박람회란 나처럼 구경하러 가는 단순 소비자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이니만큼, 일러스트레이터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진행하는 여러 출판, 인쇄, 제작, 문구 업계의 기업들의 부스가 은근히 많았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이름도 있었고, 익히 들어 낯설지 않은 이름들도 있었다. 어릴 적 자주 가지고 놀았던 색연필의 제작사 (주)지구화학, 정말 많이 들어본 태블릿 회사 한국와콤 등 익숙한 이름들이 반갑기도 했다.

 

부스를 낸 기업들이 진행하는 이벤트는 대부분 구경하러 온 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이벤트였다. 펜 몇 개를 사면 하나를 덤으로 증정하거나, 공식 사이트에 가입하면 스티커를 제공하는 식의 간단한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 기업들의 목적이 뚜렷이 보였던 건 부스에 붙어 있는 기업 홍보 자료들이었다. 창작자 플랫폼 기업에서는 해당 플랫폼에서 창작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인쇄 기업에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프린터의 기술력을 강조했다. 박람회란 공간의 일차적 대상자가 일러스트레이션 업계에 속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부스 기업들.png.jpg

왼쪽 상단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V29 체리픽, U29 신한화구, S28 (주)지구화학

 

 

 

아 맞다, '일러스트레이션!‘


 

회장 안에는 사람이 아주, 정말, 매우 많았고, 밖으로 나설 때쯤에의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분명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잔뜩 보았는데, 나에게 남은 건 비루한 몸뿐이라니. 어딘가 잘못되었다며 투덜거리곤 다리를 두들겼다. 그래도 온 김에 인증사진을 찍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어기적어기적 돌아서 출입구를 다시 쳐다본 순간,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V.15”라고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문득 깨달은 바가 있다.

 

서일페는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줄임말이다. 대부분 사람은 그 본명을 크게 의식하지 않은 채 "서일페 가시나요?" "이번 서일페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나오시는데…." 같이 사용한다.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아, 나도 내 마음속 버킷리스트에 이 박람회를 '서일페'라고만 적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V.15를 나서며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다리가 아프다‘를 제외하고) "아, 맞다. 이게 다 '일러스트레이션'이었지?"였다. 늘 짧은 감탄 끝에 휑하니 지나가기만 했던 소품 가게 속 소품들의 원본도, 인스타그램에서 마주쳐 '좋아요'를 눌렀던 그림들도 다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것이었지! 두루뭉술했던 개념 하나가 명확해진 기분이다.


 

 

[컬쳐리스트] 박주은.jpg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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