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부끄럽지 않은 실패들 [미술/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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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우리에게 닿고,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나에게는 그런 문장이 있다. 한 전시회 벽면에 쓰인 글이었다. 작년 가을, 국립현대미술관 <문신: 우주를 향하여> 전시에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작가의 말을 보았다.
“한 조각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수많은 데생을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작업을 하는 동안에 이 형태들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며 궁극적으로 생명의 의미성을 가지게 되길 바랄 뿐이다.”
자리에서 글이 가진 의미를 몇 번이나 곱씹었다. 아마 당시 내가 처한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취업준비생이었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직업, 회사, 자기소개 작성법 등을 따라가기 급했다. 불합격은 실패의 또 다른 말이었다. 그때마다 이전보다 더 큰 불안을 머금었다. 부끄러웠다. 내가 바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앞으로의 미래가 제발 명확하길 바랐다.
전시회를 나오고 겨울이 될 때까지 그 문장들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봄이 되었을 때 불현듯 무언가 깨달았다.
‘천재 작가라고 불리는 이도 수많은 데생을 했다. 그렇다면 보통의 나는 더 많은 데생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지금 실패가 아니라 데생을 그리고 있다. 데생은 부끄럽지 않다. 비싸게 팔릴 것이라 믿고 남을 따라 한 작품은 아무 의미가 없다. 유일무이할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습게도 그 깨달음 하나로 오랜 불안을 뱉었다. 나의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인생의 스케치를 낭비로 여기며 한 획을 긋는 데 너무 많은 힘과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많이 그려봐야 잘 그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한 번에 반듯한 선을 그리지 못해 자책했고, 잘 긋는 법을 이리저리 묻고 다녔다. 각자에게 주어진 도구와 물감이 모두 다른데 같은 것을 그리려고 애썼다.
인생을 전시한다는 말은 이상하지만, 내 인생의 전시회가 열린다면 작품을 비싸게 팔고 우쭐대고 싶지 않다. 대신 단 한 명이라도 내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울림을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의 인생에 좋은 울림을 주길 바란다. 전시가 나에게 준 문장들이 나를 울린 것처럼.
언젠가 걸릴 내 작품과 누군가의 울림을 생각하면 더 이상 실패가 아닌 데생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부끄럽지 않다.
[박가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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