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염원이 깃든 도자기 [미술/전시]

고미술: 그 시대의 아름다움과 독창성
글 입력 2023.07.0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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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도자기들은 어떻게 관람해야 해?”


“음…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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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 미술관 상설전[고미술]을 관람하며 친구와 나눴던 대화이다. 동시 전시 중인 이 시대 가장 논쟁적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를 뒤로하고 고미술을 관람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고귀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고미술을 보고 이해하면 고상한 예술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허상 때문이랄까. 하지만 관람을 시작하며 예상치 못했던 당황스러운 미학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어떻게 이 도자기를 예술적으로 이해해야 하지?”

 

 

 

 

전시를 볼 당시 스탠포드 대학교 Tina Seelig 교수님이 언급한 창의성의 3단계 접근 방식에 한창 매료되어 있었다. 창의성의 3단계 중 첫 번째는 '상상'이다. 그리고 상상은 '참여'와 '구상'으로 세분된다.

 

'참여' 즉 '작품과 관계' 맺는 일은 창의성을 깨우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적절한 예시로 하버드 대학교 예술사 건축사 교수님의 수업 방식이 제시된다. 교수는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에게 한 예술 작품을 3시간 동안 응시하라고 한다. 그러자 학생들은 불평하며 지루해하다가 점차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고, 작품에 숨겨진 의미와 그 안에서 생겨난 자신만의 메시지를 찾는다. 

 

그리고 예술 작품과 '완전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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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접근 방식을 토대로 곱게 빚어진 도자기 고미술에 나도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은 가득했으나, 어떻게 이 도자기를 3시간 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가! 참여는 진작에 포기한 채 답답한 마음으로 애꿎은 디지털 가이드만 만지작거리며 수많은 도자기를 지나쳐 가던 중이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신기하게도 우린 도자기 각각이 지닌 독창성과 의미를 생각하며 서서히 예술적인 일상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 세월의 흔적인 도자기 표면 위 갈라진 금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와, 이 청자에 고려인의 이상향을 담고 싶었나 봐”

“예나 지금이나 생각하는 건 비슷했구나. 이렇게 보니 마냥 먼 옛날 사람으로 느껴지진 않네”


와 같은 대화를 나누며 미의식의 혼란스러움을 뒤로 한 채 어느샌가 다채로운 도자기에 푹 빠져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신의 염원이 깃든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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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보며 가장 인상 깊어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 18세기에 만들어진 백자청화 화조문 호이다. 이 호는 넓게 펼쳐진 몸체 면을 화폭 삼아 꽃나무와 그 위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새를 그려 넣었다. 조선 후기 백자는 꽃과 새를 주제로 한 장식이 많았으며, 특히 꽃나무와 그 위에 앉은 새 한 쌍의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고 한다.

 

투박한 듯 섬세히 그려진 새와 꽃을 보고 있으면, 꾹 다문 입술로 숨을 참아가며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화목한 가정의 염원이 깃든 꽃나무와 새를 그리고 있는 도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정한 부부의 이상향을 담은 것일까?’

‘자녀의 탄생과 그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일까?’

'자연을 벗삼아 근심 없이 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것일까?' 

 

하는 도공을 향한 다양한 물음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는 도자기를 들여다보는 이들 각자의 염원을 다채로이 담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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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 몸체 면 오른쪽을 보면 한 번 덧칠한 듯 강하고 두꺼운 선으로 표현된 새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도공의 실수인지 혹은 왼쪽 새와 조금 다르게 표현한 건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조심스레 섬세히 그려진 그림 가운데 한 마리의 투박한 새의 모습이 따뜻한 인간미로 느껴져 더욱 정감이 간다.

 

 

 

선조들의 지혜와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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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19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백자음각 거북이형 계영배 받침이다. 등딱지 위에 받침이 올려진 거북이의 모습을 정교하게 빚은 작품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본래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잔은 특수하게 고안된 잔까지 함께 있는 것이 한 세트이다. 계영배는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으로 잔에 술을 일정 이상 지나치게 따르게 되면 잔 내부의 관을 통해 술이 전부 빠져나가게 되어있다. 이렇게 빠져나온 술은 받침 구멍을 통해 거북이 몸체에 저장된다. 

 

본래 계영배는 중국 도자기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기 시작했으나 조선 수요층의 기호가 반영된 기술적이고도 재미난 백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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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에 술을 가득 채우면 오히려 술이 다 빠져나가는 과학 원리가 감춰진 특수한 잔에는 '모든 불행은 탐욕의 집착과 지나침으로 만들어진다'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이처럼 계영배와 같은 과학적 원리를 이용한 잔은 우리나라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고대 중국 등 다양한 문화권에 존재하고 있다. 선조들의 가르침은 여러 문화권을 상통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 방대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당신은 이 도자기에 어떤 염원을 담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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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사진첩 속 도자기를 보니 더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지 못한 작은 아쉬움이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하지만 이 아쉬움이 다음 볼 전시를 기다리게 만드는 설렘을 안겨주기도 한다. 


도자기를 관찰하며 그 안에 담긴 그들의 내면과 고찰을 발견하고 더불어 나의 이상향과 희망을 투영한 것이, 곧 앞서 말한 ‘참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선조들의 가르침과 염원이 깃든 도자기를 보며 그동안의 세월이 얼마나 아름답고 중요한지, 옛 공예품이 우리에게 어떠한 울림을 제공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는 고미술, 우리 것에 대한 전통 미학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바탕이 되었다.


당신은 이 도자기에 어떤 염원을 담고 싶은가?

 

 

[홍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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