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좋아서 하는 외국어 공부의 맛, 도서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

글 입력 2023.06.2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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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자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을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언어를 선택할 것이다. 어떻게 인류는 말이라는 것조차 없었을 원시 시대에서부터 점차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언어라는 표현수단을 익혀나간 것일까? 모든 것이 이론으로 정립되어 있는 현 시점에서 바라보는 언어야 체계적일 것이지만, 언어의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소통에 불편함이 컸을 것이다. 무엇보다 일정 권역 내의 사람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소통하도록 언어를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가늠이 되는가. 이런 면을 생각한다면, 새삼 고대 사회에서 중앙집권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위대한 일이었는지를 절감하게 되곤 한다.


이렇게 언어는 나에게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또 놀라운 것이기에, 항상 언어를 배우는 것이 좋았다. 우리말을 배우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라지만,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우는 것은 매우 생경한 경험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제1외국어로 영어를 배우고, 추가적으로 제2외국어를 배운다. 공교육을 통해 배우는 외국어를 기준으로 한다면, 제2외국어로 주로 배우는 언어는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일 것이다. 이렇게 학교에서 다양한 언어들을 배우고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각 언어가 가진 특징과 그 언어권의 사고방식이 조금씩 느껴진다. 특히 그 외국어가 우리말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살펴보다보면, 그 언어가 어떻게 발전해왔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한 사람의 세계관을 넓히는 행위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외국어를 배운다.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그것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은, 회사로 인한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넘기고 때로는 잊게 할 정도다. 그리고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도서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그 즉시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는 강렬한 직감에 사로잡혔다. 마치 내 상황을 말하는 것만 같은 이 제목에 끌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겠는가. 저자 곽미성은 과연 어떤 언어를 어떤 연유로 배우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는 과정이, 지금 다시 외국어를 배우며 스스로 활력을 되찾고자 하는 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책 소개 >


20년 넘게 프랑스에서 살며 프랑스어 실력에 따라 삶이 크게 요동치는 시간을 보낸 곽미성 저자는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지금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한국 사람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란, 신화 속 형벌 같다”고 말하는 저자가 왜 또다시 산꼭대기로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가 되기로 한 것일까.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의 저자 곽미성은 현재 프랑스에서 체류하며 작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저자에 대해 이렇게만 쓴다면, 그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저자 곽미성이 배우는 언어가 프랑스어라고 착각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그가 배우는 외국어는 프랑스어가 아니다. 이미 10년도 넘은 프랑스 체류기간 동안, 곽미성의 프랑스어는 충분히 일취월장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배우는 외국어는, 놀랍게도 이탈리아였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어를?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나에게 자연스럽게 들었던 생각은, 평범한 선택은 아니긴 해도 프랑스어처럼 로망스어 계열인 이탈리아어니까 이를 배우기 좀 더 수월할 것이라고 저자가 판단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저자에게 나와 같은 반응을 한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던 듯하다. 이탈리아어는 보통 성악을 배우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습득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성악 전공자도 아닌 곽미성이 이를 배운다고 하면 주변에서 의아함을 감추지 않고 물어보곤 했던 것이다. 심지어 저자의 한국 지인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프랑스 지인들조차도 왜 굳이 이탈리아어를 배우려고 하냐고 물었다고 하니, 이는 정말 보통의 평범한 선택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기도 하니,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것이 작가인 자신에게는 또 하나의 소재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면서 한국과 프랑스 지인 양측의 수긍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저자가 왜 이탈리아어를 배우려고 하는지 이 책을 조금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냥 어떤 언어에 이끌리는 것은 마치 떨어지는 벼락과도 같이 운명적인 것이어서, 오랫동안 배움을 미루더라도 긴 시간을 돌아서라도 기어코 그 언어를 배우는 기회를 마주하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어떤 일일까. 그것은 데미안에서 그토록 말하는, 마치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오는 행위와도 같다. 모국어가 존재하는 한, 우리는 원하는 모든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강한 어조로 혹은 부드러운 어조로, 때로는 격렬하게 혹은 조심스럽게, 우리는 얼마든지 개인의 의사를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외국어를 배우기로 한 순간, 우리는 다시금 갓난아기와도 같은 상태가 된다. 내 모든 인지와 지각, 판단과 표현을 모국어로는 그대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언어로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순간 마치 어린아이처럼 의사표현이 극히 제한되어 버리고 만다. 모국어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만큼 외국어로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날 것의 상태로 돌아가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소 비슷한 계열의 언어를 배운다고 한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반드시 새로운 언어를 처음부터 배우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저자가 이탈리아어를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가 같은 계열의 언어라는 점을 상기했다. 그래서 이미 프랑스어를 배운 그에게 상대적으로 수월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소요되는 기본 시간은 그대로 필요하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어도 주격에 따라 모두 동사변화가 일어나고, 시제에 따라서도 또 변화하기 때문에 이 모든 변화를 하나하나 외우고 체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로망스어 계열에 이런 동사변화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해서, 이탈리아어의 동사변화를 외우는 절대시간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요컨대 원리에 대한 이해가 다소 쉬울 뿐, 뿌리가 같은 외국어를 배운다 한들 절대적으로 새로운 장벽을 뚫고 진입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 곽미성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어를 배우면서 새로운 좌절을 경험한다. 새로이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쌓아나가야 하기 때문에, 모국어나 이미 아는 외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평범한 문장조차 새로운 외국어로는 바로 작문이 되질 않아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그 좌절의 시간을 지나야만 한다. 표현할 수 있는 게 너무 적다는 좌절감, 말하고 싶은 건 많지만 문장으로 만들기가 어려워 느끼는 답답함, 완벽할 수 없어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실수들로 인한 부끄러움은 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반드시 감내해야만 하는 감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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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해서 그 언어를 내가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우리의 세계는 확실히 넓어진다. 예전에는 번역본으로 접하던 것들을 이제는 원문으로 읽어볼 여유가 생기고, 영상 매체를 볼 때에도 자막에 집중해서 보던 것을 원어의 억양과 뉘앙스를 생생히 느끼면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저자 곽미성은 이탈리아 소설을 좋아했는데, 이 소설을 원작으로 미국에서 드라마를 제작했다. 그런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원작에 못미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저자는 다소 우려하는 마음을 안은 채로 그 드라마를 보았다. 그런데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한 저자에게, 그 드라마는 번역된 소설에서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이탈리아 원어의 풍부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원어를 아는 그에게, 드라마는 번역본에서 놓쳤던 그 느낌들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번역을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을 요한다. 물론 원어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면서 너무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도록 역자가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하는 사람도 인간이기에 자신의 판단을 바탕으로 번역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 모든 번역본들은 원문에 비해 마치 옅은 포장지가 한 겹 둘러져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이를 짚어주는 대목이 참 좋았다. 언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을, 번역본이 아니라 원문으로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살아있는 정보와 생생한 어조를 모두가 알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 언어는 그 언어의 사용자들이 취하는 사고방식을 드러낸다는 점에 있어서도,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경험이 된다. 원문의 뉘앙스를 파악하는 것도 좋은 자극이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생활하는지를 살펴보고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예컨대 유럽어에는 접속법이라는 문법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개념이 우리말에는 없다. 접속법이란 쉽게 말해 진짜 사실과 가상의 사실을 구분하여 표기하는 방법이다. 가상의 사실, 즉 일어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기 위해 접속법을 사용하여 구분표기하는 것이다. 이는 동양철학은 인간, 개인보다는 자연과 우주, 이치라는 보다 거시적인 개념으로부터 출발한 데에 비해 서양철학은 인간, 개인 그리고 실존의 문제에 대해 보다 집중했기 때문에 나타난 차이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동양에서는 보다 집단적인 사고가 보편적인 반면에 서양에서는 보다 개인적인 사고가 일반적이지 않은가. 당장 언어에서부터 바로 이런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는 문화적 차이와 사고방식의 차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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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나는 지금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말하면, 저자가 그랬듯 주로 받는 질문이 있다. 첫 번째로는 프랑스계 회사에서 근무하거나 업무적으로 프랑스어가 필요한 환경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고, 두 번째로는 왜 굳이 프랑스어를 배우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것은 아니기에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선 빠르게 정리가 된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상황이 전개가 되곤 한다. 일본어, 중국어를 배워봤는데 아무래도 프랑스어가 더 매력적인 것 같다고 말할 때도 있고, 회사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프랑스어로 잊으려고 한다는 답을 할 때도 있다. 그런데 가장 본질적인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내가 프랑스어에 끌리기 때문이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한 언어는 그 자체로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언어 중에서도 유독 내 흥미를 자극하고, 자연스레 나를 끌어당기는 외국어를 만나게 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영어가 그랬고 또 프랑스어가 그랬다. 마치 만유인력마냥 나를 끌어당기는 이 외국어에 대해 내가 무엇을 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그야말로 운명같은 것이다. 그 운명에 순응하여, 나는 지금 프랑스어를 배우고 알아가고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었어도 당장 내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미뤘던 과거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래서 저자 곽미성이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해 이리저리 부딪치고 이것저것 도전하며 시도하는 모든 모습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 프랑스에 살면서 이탈리아로 어학연수를 짧게나마 다녀오는 그가 부럽기도 했다. 교환학생 생활은 해봤어도 어학연수 경험은 없기에, 언어만 배우기 위해 연수를 가는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막막한 면은 있겠지만 언어에 집중할 수 있는 그 기간은 분명 즐거울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외국어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넓어졌을 그의 인식의 지평이 부럽기도 했다. 부디 나도 저자 곽미성처럼, 내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중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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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배운다고 하면 영어를 배운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하지만 외국어에 영어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영어 외의 다른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활력이 된다. 다른 언어를 배우는 행위 자체로 얻는 새로운 시야가 분명히 있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도 크다. 또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면서 토대를 쌓아나가는 그 과정이 지난하긴 하지만, 마치 새롭게 나를 키우는 느낌이 들어서 나를 단련시키고 확장시키는 기분이 든다. 저자 곽미성은 외국어를 배우는 그 즐거움을 자신의 경험을 빌어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에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영어가 아닌, 제2외국어나 제3외국어 혹은 또 다른 제n외국어를 배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책, '외국어를 배워요, 영어는 아니고요'는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외국어 학습의 가치, 외국어 학습의 강점을 넘어 외국어 학습의 즐거움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활기차게 만들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 모든 토대를 새롭게 쌓아나가며 인식의 세계를 넓히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으로 전하는, 저자 곽미성의 반갑고도 뜻깊은 인사였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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