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렇게 들려주는 진심이라면 언제나 통할지어다 :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글 입력 2023.06.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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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그에이지_공연사진 2.jpg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대중 서사에서 진심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진심을 어떻게 들려주느냐인 것 같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천차만별이 되는 것처럼 내용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방식인 것이다.

 

대중 서사에서 이 '어떻게'는 관습의 합으로 쌓아 올린 장르의 세계와 밀접한데, 때때로 말하려는 내용이 관습 속에서 옅어지기도 하고, 잘 어울리지 않는 내용과 관습이 만나 이도 저도 아니게 된 작품도 부지기수다. 그저 그런 평작이나 혹평받았던 졸작도 사실 뜯어 보면 지고지순한 진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이 돋보이는 창작 뮤지컬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7년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의 학사 작품으로 출발한 작품은 2019년 PL엔터테인먼트의 첫 제작 뮤지컬로 당시 신인 배우였던 양희준, 김수하 등을 필두로 초연을 치렀고, 2020년 앙코르 공연을 거쳐 올해 새 시즌으로 돌아왔다.

 

창작 뮤지컬이 처한 고질적으로 척박한 환경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뮤지컬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은 굳건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다시 돌아온 것이다.

 

 

스웨그에이지_공연사진 3_양희준.jpg

 

 

먼저 이 작품이 말하려는 것부터 살펴보자면, 솔직한 말로 다 알 법한 진심이다.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주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때는 가상의 조선 시대, 시조대판서 '홍국'에 의해 백성들의 시조 활동이 금지되면서 시조가 양반의 전유물이 되었는데, 이때 역적 '자모'의 아들인 '단'과 홍국의 딸인 '진'이 계급 사회의 차별을 철폐하려는 비밀 집단 '골빈당'에서 힘을 합쳐 홍국을 몰아내고 백성들에게 시조를 돌려준다는 내용이다. 흔한 영웅 서사 구조라고 할 수도, 빤한 권선징악 스토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에는 이 빤한 진심을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들려주는 미덕이 있다. 시조의 나라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힙합, K팝을 통해 시조의 무대화를 꾀한다. 전통 국악 사운드가 가미된 음악에 아이돌처럼 군무를 추며 시조를 읊는 골빈당의 모습이나, '후레자식 내가 바로 망할 자식/후레자식 매일같이 무위도식/내가 바로 조선에서 제일 씩씩?' 등 라임을 맞춘 가사는 이 작품이 전통과 현대를 섞은 퓨전 뮤지컬임을 드러낸다.

 

그러니 '조선 시대인데 저게 가능해?'라는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애초에 제목부터 조선 에이지(시대)가 아닌, '스웨그 에이지'다]. 과거를 배경으로 삼되, 가상임을 분명히 한 작품은 엄밀한 계급 사회이자 전근대인 조선과 지금의 대한민국을 천연덕스럽게 섞어 낸다. 백성들이 몰래 시조를 하기 위해 찾는 가게의 이름이 '국봉관'인 것 하며, 골빈당의 부캐(?) 그룹 이름이 목숨을 걸고 시조 사랑을 외친다는 뜻의 '수애구'인 것도 그렇고, 최종 안타고니스트의 관직명이 '시조대판서'인 것 모두 이 무대 위에서는 말이 된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면 빤한 스토리 위에는 모든 게 들어올 수 있는 놀이판이 만들어져 있다.

 

 

스웨그에이지_공연사진 7_이아진.jpg

 

 

훌륭한 점은 이 형식의 재기발랄함이 주제와 긴밀하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백성의 자유로운 발언을 막는 시조대판서의 독단과 이를 타개하기 위해 백성들의 목소리를 시조로, 무대로 보여 주는 골빈당의 노력은 힙합 태생의 저항성과 계급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정형화된 양반들의 시조에 맞서는 골빈당의 시조에는 백성의 애환이 담겨 있고, 이는 계급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많은 요소가 섞이는 와중에도 주제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이 덕분이다.

 

이를 통해 작품이 공들여 빚어내는 것은 그 한가운데 선 개인의 선택과 성장이다. 개인적 차원의 자유만을 추구하던 단은 백성의 자유로울 수 없음이 계급적 한계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에서 '우리'의 차원으로 나아가 변화를 꿈꾼다. 한편, 양반가의 여식이자 홍국의 딸인 진은 자신의 선택이 아버지를,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몰락시킬지라도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결국 그 책임을 무겁게 짊어진다.

 

 

스웨그에이지_공연사진 8_김서형.jpg

 

 

그런 의미에서 작중 조선은 '시조대판서’가 있고 ‘조선시조자랑’이 있는 말도 안 되는 나라이지만(심지어 사회를 보는 '국민 엄 씨'도 있다!), 관객들은 점점 이 허무맹랑한 설정 속 허무맹랑하지 않은 상황과 인물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전쟁', '망국' 등의 기표, 고통받는 피지배 계급의 모습, 언로(言路)가 막혀 가진 자의 입장만을 재생산하는 언어와 그 가운데서 길을 잃은 개인들의 형상화는 마치 우화 같은 느낌도 준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그곳에서 벌어지는 고통과 갈등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 말이 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나 혼자만의 자유만을 부르짖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유를 가로막는 게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계급 사회의 분노를 아래가 아닌 위로 향하도록 터트리고, 나와 같은 필부들의 애환을 가사로, 노래로, 예술로 소리치고 가시화하는 것.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는-그것도 2021년도에 나온 노래의- 가사가 여태껏 화제가 되는 시대에 뮤지컬 <스웨그에이지:외쳐, 조선!>은 '멋진 힙합'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상찬일까?

 

적확한 방법으로 들려주는 작품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다면, "오!에!오!"에 어깨가 들썩이고 엔딩에 이르러 가슴께가 뜨거워졌다면 감히 이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스웨그에이지_공연사진 1_커튼콜.jpg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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