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뒤피 : 행복의 멜로디 [전시]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 뒤피 : 행복의 멜로디
글 입력 2023.06.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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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색채란 

본연의 색채가 아니라 물감의 색 

즉, 화가의 언어를 이루는 단어와도 같은 팔레트 위의 색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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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 서울과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이 만났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프랑스 출신, 20세기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인 라울 뒤피의 작품전이다. 라울 뒤피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다. 그의 작품을 보면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독창적인 화풍으로 행복과 기쁨을 한껏 누릴 수 있다. 


라울 뒤피 사후, 그의 부인 에밀리엔 뒤피가 작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은 라울 뒤피 작품의 세계 최대 소장처가 되었다. 기증된 그의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아틀리에에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던 작품들이다. 작가 스스로가 크나큰 애착을 가졌던 작품들을 한국에서 직접 보게 되다니 영광이다.

 

#1 자화상 - 뒤피의 세 점의 자화상이 서막을 연다. 시기가 저마다 다른 작품으로, 매우 다른 스타일로 완성되었다. 자화상만으로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라는 거대한 미술사 흐름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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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portrait, 1898

 

 

이는 특정 사조에만 국한되지 않고 본인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개척하기 위해 끝없이 예술적인 탐구를 이어 나간 뒤피의 여정을 상징한다. 전시를 보면서 느낀 것은 장르적으로도 회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조각, 패션, 음악 등 자신만의 예술적인 재능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나갔다는 것이다. 


뒤피는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도 손꼽힌다. 다양한 인물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뒤피의 아내인 에밀리엔 브리송이다. 야수파, 입체파의 화풍으로 다양하게 나타낸 작품으로 그녀를 향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같은 인물임에도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 신기해 한참 바라보았던 섹션이다. 

 

#2.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 - 작품을 본 순간 “고흐 작품 아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실제로 라울 뒤피는 당시 인상주의 기법을 탐구하고 있었는데, 현실에서 탈피하는 듯한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는 야수파에 동참하면서도 여전히 정제된 색채로 작품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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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dy in pink

 

 

그림 속 인물은 뒤피의 아내 에밀리엔 브리송이다. 작품을 보면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영향이 동시에 느껴진다. 특히 검은 윤곽선으로 형태를 두르는 법을 고갱의 작품에서 차용했음을 알 수 있는데, 오렌지색이 감도는 살색의 표현 역시 고갱의 ‘타히티 여인들’과 유사하다. 노란색과 빨간색, 검은색 선을 그어 마치 빛이 퍼지는 듯한 효과는 반 고흐 작품을 참고했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사랑했던 여인에게서 일종의 후광이 만들어지는 느낌을 가득 준다. 

 

#3. 암피트리테 - 라울 뒤피는 프랑스의 해안 지역에서 태어나 바다의 풍경에서 끊임없는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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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hitrite

 

 

암피트리테는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내이자, 바다의 물거품에서 태어난 바다의 여신이다. 뒤피는 전통적인 원근법에서 벗어난 가공의 지형을 중시하며 작품 속에 헤엄치는 여인과 조개껍데기, 화물선 등을 묘사함으로써 새로운 해안 공간을 만들어냈다. 바다라는 주제로 그는 작품 속에 물놀이하는 여인을 자주 표현하였고, 이때 바다의 여신 암피트리테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뒤피는 신이 아닌 인간으로 암피트리테를 묘사했는데, 귓가에 조개껍데기를 가져다 대는 모습으로 주로 나타난다. 직선으로 바다 결을 표현한 것 또한 거대하고 웅장한 바다를 보여준다.

 

#4. 전기 요정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전시 주제인 ‘행복의 멜로디’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라울 뒤피는 1937년에 개최된 파리 만국 박람회 당시 ‘전기관’을 꾸미기 위한 대형 벽화 제작을 의뢰받았다. 어두운 분위기 속 환하게 빛나는 거대한 벽화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부터 당대 전기가 발명되기까지 기나긴 시간 동안 이어진 전기의 발명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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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Fée Electricité (partie gauche), 1937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상하게 되어 있는 벽화 작품은 노르망디 햇살이 내리쬐는 고대에서 시작하여 화려한 광고와 파리의 야경이 펼쳐지는 현대까지 이어진다. 고대와 현대의 시간 사이에 여러 산업 시설과 기차역, 조선소가 묘사되어 있고,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와 아르키메데스, 갈릴레오 갈릴레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 토마스 에디슨, 마리 퀴리에 이르기까지 11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기다란 그림을 따라 고대에서 현대로 가는 시선을 함께 하니 옛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밝고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독창적인 화풍이 근심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한동안 머물렀던 것 같다.

 

#5. 검은 화물선 - 라울 뒤피는 뛰어난 색채의 화가로 일컬어지지만, 밝은 색채를 역으로 강조해 주는 어두운 검정색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애착을 가졌다. 태양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볼 때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상태를 어둡고 넓은 색면으로 표현하고자 검정색을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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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ack Freighter

 

 

검은 화물선 연작은 화가 생전에 단 한 번도 전시되지 않은 작품들로, 화가가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렸던 ‘검은 화물선’을 보면, 검은빛이 공간 전체를 뒤덮고 있다. 이는 뒤피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해안이 변화무쌍한 날씨로 인해 별안간 어두워지곤 했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간혹 물감이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프 끝으로 긁어서 배의 형태를 표현하기도 했다.  


화물선의 뒷모습과 이를 감싸는 검은색은 마치 다채로운 여정을 끝마친 뒤피가 담담하게 이별을 고하는 것 같았다. 작품은 슬프면서도 고요한 적막의 분위기를 가져다주어 더 기억에 남는다. 어두운 것이 있다면 밝은 것이 있듯이,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행복만으로 인생을 살아가진 않는다. 불행이 오더라도 극복하고 행복을 찾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검정색 단일 색조를 사용해도 햇빛의 방향에 따라 찬란하게 빛나는 뒤피의 작품처럼 말이다.


 

제일 고점에서의 태양은 검은색이다. 그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 검은색은 지배적인 색이다. 검은색으로부터 출발해서 색채들의 대비를 통해 빛을 발견하는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 라울 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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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는 라울 뒤피가 아닐까. 


인상주의, 야수파, 입체파의 다양한 미술사조를 회화에 담고, 더 나아가 패션, 장식, 벽화, 음악이라는 다른 장르와 협업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마치 엑스포에서 전 세계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지만, 12개의 섹션 전부 라울 뒤피의 작품이라니 대단했다. 


[프랑스국립현대미술관전 – 뒤피, 행복의 멜로디]를 보면서 따듯한 위안과 행복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해 보이지만 작가 또한 굴곡진 인생사를 거치고 극복하는 모습에 많은 공감이 되어 더욱 그랬다. 실제로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해 배에 작품을 가득 실었지만 침몰되었다는 일화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좌절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텐데 오히려 예술혼을 잃지 않고 새로운 장르에 다가가려는 뒤피의 시도가 열정적인 인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라울 뒤피는 말한다. 예술은 작품을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논리 정연함에 대한 열망과 모든 예술가들에게 잠재하는 무질서와 혼란에 대한 이끌림 사이의 투쟁으로부터 탄생한다고. 이렇듯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예술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찬란하게 빛냈던 라울 뒤피를 통해 행복의 멜로디를 가득 머금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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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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