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랑과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 이끼숲 [도서]

글 입력 2023.06.0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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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이름, 천선란


 

소설을 한 권 읽고 싶어질 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소설가를 떠올려본다. 최근 몇 년 간 뜨거운 사랑을 받은 장르는 아무래도 SF다. 한창 SF를 좋아하던 학창 시절엔 대중적 인기보다 ‘장르문학’이라는 이름 하에 마니아층의 지지를 받던 장르. 이러한 공상과학 소설이 어느 순간부터 베스트셀러 목록에, 서점의 중앙 매대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눈에 띄는 이 과학 소설들은 SF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랐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물리학, 수학과 같은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정교하게 설계한 하드 SF와 다른 인상이었다. 그 반대편에 있는 소프트 SF 소설들이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소프트 SF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문화, 사회, 감정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있다. 과학에 토대를 둔 논리가 완전히 결여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상상 속 세계를 살아가는 생명과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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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프트 SF 작품들은 따뜻한 감동과 위안, 삶에 대한 질문을 전한다. 그중에도 천선란은 주목받는 이름이다. 그만의 고유한 세계를 선보인 <천 개의 파랑>, <어떤 물질의 사랑>, <노랜드> 등의 작품은 연이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자꾸 다시 곱씹게 되는 아름다운 문장이 있어 좋다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신작 <이끼숲>을 골라 들었다. 어떠한 숲으로 향하게 될지 궁금한 마음으로 그의 세계에 들어섰다.

 

 

 

우리를 구하는 이야기


 


“구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는 끝내 구하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더 뚜렷하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끼숲>은 세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된 책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딛고 선 이 지상세계가 멸망한 이후다. 인류는 지하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고 살아간다.

 

그곳에서도 자본과 노동은 인류가 살아가는 기본이 된다. 그렇지만 사방이 막힌 지하, 자유가 제한된 그 공간에서 오늘날 우리가 겪는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는 더욱 극대화된다. 그 속에서 여섯 친구들은 서로를 아끼고 지지하며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그 안에서 겪는 다양한 감정, 모험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생명과 세계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땅밑으로 세계는 뒤바뀌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상처와 사랑은 여전히 존재한다. 주인공들은 지금의 우리가 그러하듯, 혼자만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함께 겪고 맞서며 살아간다. 지상과는 전혀 다를 것 같은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친숙한 감정들은 이상하고도 특별하게 느껴진다.

 

 

 

바다의 눈을 닮은 사람


 

세 편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와닿은 것은 <바다눈> 이었다. 지하세계에서 연구소의 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한 마르코. 그는 일터에서 우연히 벽 너머 은희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게 되고, 아름답고도 탁한 목소리, 그에겐 없는 밝은 기운에 사랑에 빠진다.

 

마르코는 낯선 감각으로 다가온 첫사랑과 함께 선배 커커스의 파업을 보며 노동환경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환경에 맞서 커커스와 동료들은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며 파업을 시작한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마르코는 추가 근무를 하게 되고, 더 많은 보수를 받게 되면서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동시에 한 번도 던져보지 않았던 노동과 인간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사랑과 노동, 따로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 두 주제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 속에서 사랑의 감정과 순간을 떠올리게 되고, 이상적인 노동과 삶의 모습을 고민해 보게 된다. 가장 좋았던 점은 이러한 사랑과 노동 모두 단편적인 면만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코를 비롯해 다른 친구들이 바라보는 사랑의 이면을 같이 알 수 있는 게 좋았다. 파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교차하며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또한 좋았다. 그 덕에 읽는 사람마다 저마다의 생각과 감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 아래에서 펼쳐지는 서늘하고도 따뜻한 이야기 <이끼숲>이었다. 떼어내고 싶어도 떼어낼 수 없는 이 세계를 떠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보고 싶을 때 <이끼숲>을 추천한다.

 

사랑과 모험을 마다않는 친구들의 이야기. 그 안에서 다시 이 세계를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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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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