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보이는 것만 그리지 않는다 -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展

글 입력 2023.05.0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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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전시회로 향하는 이름 붙지 않은 날을 상상해 본다. 그 모습은 어떠한가. 어떤 모습의 공간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쉽게 그리기 어려운 법이기에 익숙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간 다녀온 전시회의 모습들을 되새겨 본다. 다양한 감각을 일깨우는, 커다란 자극을 주는 전시가 많았다. 독특하게 조성한 공간, 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 작품, 전시장을 감싸는 음악, 이전엔 생각치 못했던 새로운 결합이 많았다.

 

특히나 동시대 예술은 ‘압도감’을 선사한다는 점이 공통적이었다. 사람 키의 몇 배에 다다르는 대규모 설치, 복잡한 이야기와 시각적 요소가 혼합된 영상, 무엇을 표현했는지 단번에 알기 어려운 회화.

 

작품이 주는 혼란과 불안, 무게감이 있었고 그것이 싫지 않아서, 오히려 더 궁금해서 전시를 찾곤 했다.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포스터.jpg

 

 

휘몰아치는 동시대 미술에 휩쓸리던 어느 날, 리얼리즘 회화 전시 소식이 들려왔다.

 

도시의 중심을 상징하는 광화문 한가운데, 그 자리에 위치한다는 것이 어쩐지 안심이 되어 좋아했던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 전시였다. 오래된 과거의 명화가 아닌 현대의 리얼리즘 회화, 이러한 주제의 전시를 언제 보았나 아득해졌다.

 

오늘날 리얼리즘 회화는 어디에 있고,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할까? 궁금한 마음을 품고 전시장의 문을 열었다.

 

 

 

리얼리즘은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위험한 괴물이다


 

리얼리즘에 헌신했던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말.

 

전시를 소개하는 이 문장에서 13명의 작가가 전시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어쩐지 오래된 것, 과거의 것만 같이 느껴지는 리얼리즘 회화가 무엇을 담을 수 있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히스테리아_전경02(sRGB).jpg

 

 

전시는 리얼리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최진욱의 작품들로 시작된다. 작가는 화실처럼 직접 머무르고 경험한 공간을 그린다.

 

나아가 도로변과 하굣길과 같은 일상적 동네 풍경과 전쟁, 정상회담과 같은 역사적 순간을 한 폭의 회화에 혼합해 담아 내기도 한다. 실제 두 눈으로 바라본 현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재현하는 것을 넘어 이미지를 ‘현상’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최진욱은 추상회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스스로의 작업을 ‘감성적 리얼리즘’이라고 말했다.

 

 

추상회화는 거의 한 세기 동안 미술계를 지배해 왔다. 그것은 작가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 이상을, 미적 특질 이상의 것을 보고 싶어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작가 역시 그 스스로가 진정한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한다.

 

- 최진욱, “화가와 사물” 中

 

 

최진욱의 작품을 감상하는 가운데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배치였다.

 

최진욱의 작품 중간중간, 함성주의 작품이 있었다. 함성주의 작품은 미디어 콘텐츠 속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영화나 게임의 장면을 수집하고, 그 속의 다양한 분위기와 감각을 회화로 표현한다. 이 작업 과정에서 리얼리즘 회화가 그리는 대상이 확장된다.

 

눈에 보이는 순간, 과거의 경험에서 나아가 전자기기 속, 액정 너머의 세계를 묘사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선보이는 젊은 작가와 리얼리즘에 있어 대가인 작가가 교차하며, 서로 상응하며 한 공간을 채운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 도처에 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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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전시에서 정수진의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다. 작가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괴물은 세계 곳곳에서, 특히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경계의 혼선에서” 태어난다.

 

 

작가는 도처에 괴물이 있다고 말했다. 무언가 어긋나고, 균열이 생기는 틈에서 괴물이 나타났다. “뇌해” 작품에서도 그러했다.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때, 멀리 떨어져 볼 때 보이는 모습이 달라졌다.

 

처음엔 세밀한 표현의 파도가 치는 바다, 기괴한 모습의 인물, 식물들이 보였다. 좀 더 물러나 가만히 바라보자 수면 아래를 지나는 사람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형체들이 보였다.

 

리얼리즘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인식을 벗어나 감각한 대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표현으로 담아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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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호 작가의 작품도 눈에 띄었다. 작가는 강박적으로 일상의 이미지를 모으는 사람이다. 그의 작업에는 무엇이든 빠른 속도로, 짧은 주기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

 

범람하는 이미지를 시작으로 회화를 만들고, 이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시킨다. 흐릿한 이미지의 작품, 온기가 느껴질 것 같은 눈사람 그림인데 어쩐지 냉소적인 느낌이 드는 건 이 때문일까.

 

새로운 자극, 새로운 감각이 필요할 때 추천하는 전시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였다.

 

동시대 작가의 풍부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 특히 자주 다뤄지지 않았던 리얼리즘 회화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전시장 안의 회화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어떤 이야기를 되돌려주고 싶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PRESS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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