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오차’라는 ‘유령’에 계속해서 손을 내밀 수 있다면 – 양지예 장편소설 ‘1미터는 없어’

“존재는 그 흔들림에 의하여 유일하다”
글 입력 2023.05.01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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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계속되어온 ‘미지(未知)’에 대한 도전은, 인간이 가진 지식과 사회의 수준을 조금씩 또는 획기적으로 높여왔다. 이와 함께 우리는 ‘불확실’의 영역에 있던 많은 것들을 나름의 이론과 근거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사용하고 있는 것들-예컨대 ‘m(미터)’와 같은 단위-도 사실은 오랜 시간 이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끝에 익숙한 이름으로 불리고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자세히 살펴본다면 사실은 완전하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것들은 여전히 확정할 수도, 측정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는 것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이는 때로 커다란 두려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양지예 작가의 장편소설 『1미터는 없어』는 이러한 두려움 뒤에 있는 ‘오차’를 통제하고 줄이기 위해 모든 재능과 노력을 측정에 쏟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뒤늦게 ‘그녀’의 삶과 실종의 진실을 다시 추적해가는 ‘나’의 시점에서 풀어간다.

 

책 안에서 ‘그녀’와 ‘그녀’의 주변인물들을 통해 변화해 가는 ‘나’의 모습은 어쩌면 덧없이 보이는 ‘정확성’에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우리의 모든 삶과 사회 안에서 ‘오차’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그녀’와, 그녀’와 같은 곳을 향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오차’에 계속해서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을까? 그러한 용기와 끈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 책이 측정의 주체이자 대상이고 또 변수인 우리 개개인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나마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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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라는 ‘유령’에 계속해서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소설 『1미터는 없어』 에서 ‘나’는 아무리 측정의 정밀도와 정확도를 높여도 여전히 잴 수 없는 오차를 ‘유령’에 비유한다. 이 ‘유령’은 어떻게 해도 메워지지 않는 점과 점 사이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어떻게 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진리와 인간 사이의 거리,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모든 ‘불확실’과 ‘미지’의 영역 등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미지의 공간에 도전하는 산악인이었다가 한쪽 다리를 잃은 ‘나’는 ‘그녀’처럼 ‘불확실’의 영역에 과감하고 끈기 있게 도전해 온 사람이면서, 동시에 불확실성이라는 ‘유령’이 주는 두려움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와 ‘그녀’는 분명 맞닿아 있었지만, 오차가 주는 두려움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달랐다.

 

‘나’는 ‘그녀’의 업적을 기리는 박물관의 관장으로 일하면서 우연한 계기로 ‘그녀’의 실종에 얽힌 진실을 다시 찾아가게 되고, 자신이 이 ‘오차’라는 유령을 계속해서 피해 왔음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러한 태도 뒤에는 불확실하고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무엇이 더 완벽하고 좋은 것인지에 대한 편견이 자리했다.

 

이는 ‘나’가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금요숲’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났다. ‘금요숲’은 미얀마 출신의 ‘보트피플’로 한국에서 통역사로 일하며, 기후변화에 목소리를 내는 환경운동가다. 그런 금요숲에게 ‘나’는 ‘한국이 더 살기 좋은데’ 왜 한국의 국적을 얻을 생각이 없는지 ‘궁금증만 앞선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그녀의 위치가 만든 프레임에 너무 쉽게 금요숲을 ‘그녀’의 실종과 관련된 의심 대상에서 빼놓기도 한다. 

 

반면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오차에 대한 두려움을 누구보다 민감하고 생생하게 맞닥뜨리며 정확하고 완벽한 측정을 위한 삶으로 뛰어들었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오차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그 ‘유령’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유령들에 손 내밀고자 했다. 

 

 

"계속 측정해야 한다.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또 오차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마치 서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서로의 언어를 배우듯이"

-p.154 '그녀'의 일기장 내용 中

 

"왜 안벽한 측정을 믿지 않으세요?"

"그런 건 없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면 자도 변하고 수준원점도 달라지고

기껏 잰 산의 높이도 변하잖아요.

아니, 그냥 내가 존재하는 그 자체로 중력장이 바뀌고 온도도 달라지죠.

길이도 무게도 부피도 모두 존재하는 그 자체로 계속 바뀌어요.

완벽한 측정이라는 것만큼 공허한 개념이 또 있을까요?"

"그럼 왜 재는 겁니까."

"무서우니까요. 잘 모르는 채 그냥 두는 것은 버리는 것과 같으니까.

'너를 알고 싶어.' 손을 내미는 방법을 전 그것밖에 몰라요."

-pp.183-184 '나'와 '그녀'의 대화 中

 


그녀의 말처럼 아무리 더 많은 불확실한 것들이 친숙한 이름을 갖게 되고, 더 명확한 언어로 그것들을 설명할 수 있게 되더라도, ‘나’와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유령’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유령’들을 제대로 마주하고 이름 붙여가려는 모든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 곁의 불확실함을 포착하고 그것을 무언가로 명명해 가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더 풍부하게 인지하고, 그동안 눈에 띄지 못했던 존재에 의미를 더한다. ‘그녀’는 스승이었던 ‘팽교수’에게 이러한 과정 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움’을 배웠고, ‘나’와 ‘금요숲’에게도 이 ‘아름다움’을 전한다.

 

이러한 과정의 ‘아름다움’은 단지 측정을 포함한 기술이나 과학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책 속에 언급되었던 기후변화, 난민 등의 사회문제나 삶의 방향을 정하는 인생의 문제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다시 살펴보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 전혀 상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처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비록 ‘완벽한 답’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분명 우리 삶과 사회에 가치를 더한다.

 

 

"존재는 그 흔들림에 의하여 유일하다.

우리는 불완전한 순간을 포착하여 더없이 완전하게 만드는

완벽한 사례로서 이 훌륭한 발명품을 제시한다."

-p.103

 


책 속에서 ‘그녀’가 개발을 주도했던 열두자리까지 측정이 가능한 체중계를 전시해 놓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설명에는 위와 같은 문구가 써있었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는 많은 경우 ‘유령’에 손을 뻗고 이름을 붙이려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그저 그것을 외면하거나 피해가는, 어쩌면 더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려 한다. 그러나 오차를 포함해 미지와 불확실의 영역에 있는 ‘유령’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것이 있어서 우리는 계속 정확하고 확실한 것, 또는 완벽한 것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함’이나 ‘확실함’이라는 그 결과보다 그것을 향하는 과정에 목적을 둔다. 즉 단지 ‘유령’을 모두 없애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는 아름다움과 다양한 가치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는 ‘그녀’가 ‘유령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긴 것, ‘그녀’와 ‘나’가 ‘표준 단위’라고 일컬어지는 도량형과는 다른 현지의 역사와 문화가 반영된 측정 단위만이 표현하고 담을 수 있는 의미와 아름다움이 있음을 발견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니 꼭 대단한 성과를 내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낯설고 불확실한 것들에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오차’라는 유령에, 두려움을 뛰어넘어야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설 수 있다. 측정에 있어서 우리 개개인의 존재 자체만으로 시공간을 왜곡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책 속의 설명처럼 말이다.

 

 

"세상 온갖 사물이 나를 끌어당긴다.

한편으로 우주공간은 점점 팽창하면서 세상과 나의 거리를 멀리 떼어놓는다.

시공간이 내 손끝에서 뻗어나간 중력장이라는 실에 매달려 있다.

나는 손가락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공간과 중력장이 서로 힘겨루기를 할 때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느껴보려고 한다. 계속 지켜보다보면 실의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지는 듯 여겨진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팽창하는 힘과

끌어당기는 힘이 하나처럼 느껴진다. 그저 모두 하나의 춤이 된다.

나조차도 춤의 일부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추는 동안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렇게 완전함을 깨닫는 순간 나는 다시 불확실한 존재가 되고

중력과 우주의 팽창은 분리된다."

-pp. 99-100 '그녀'의 일기장 내용 中

 

 

소설 『1미터는 없어』 역시 ‘천재’의 일대기를 따라가며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불확실성에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던 그 시도를 단지 특별한 인물의 거창한 무언가, 예컨대 괴짜 같은 천재의 집착이나 광기, 맹목적인 열정과 의지만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이를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지닐 수 있는 ‘불안’으로, 그것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다정함’으로 읽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어쩌면 역사책이나 위인전 속 너무나 익숙한 영웅담일 수 있었던 이야기가, 특별한 에너지를 가진 소설로 우리 앞에 놓일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에너지가 책을 읽는 이들에게도 가 닿아 막연하게 ‘불확실’과 ‘무관심’의 영역에 넣어 두었던 것들을 다시 꼼꼼히 마주하고 살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도 정확한 점을 찍지 못하는 공포에 울음을 터뜨렸던 어린 날부터 ‘유령’에 다가가 손 내밀면서 삶과 세상 속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까지, ‘그녀’가 가졌던 다정함과 용기가 여전히 수많은 ‘유령’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에게도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효중 PRESS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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