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한국적 소재로 한국 뮤지컬의 정수를 보여주다 -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

글 입력 2023.04.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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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함 포스터(사이즈).jpg

 

 

내 이름은 김자홍. 39세.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독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죽었다.

 

객석에 들어가는 순간 망자를 위한 향이 피워져 있고, 객석 내부는 마치 장례식장에 온 듯 향 냄새가 진동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고, 그의 사후 여정을 보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였다.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편>은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으로 기반으로 2015년 초연된 뮤지컬이다. 2017년, 2018년에 이어 이번에 네 번째 시즌이며 서울예술단 제작으로 이번 시즌에는 객원 단원 없이 서울예술단 단원만으로 캐스팅했다. 제목 앞에 ‘뮤지컬’이라는 단어가 아닌 ‘창작 가무극’을 쓰고 있는데 서울예술단에서 제작한 <잃어버린 얼굴 1895>, <윤동주, 달을 쏘다>, <나빌레라> 등의 작품에서도 ‘창작 가무극’이라고 명명한 것을 보아 서양의 공연 장르인 ‘뮤지컬’ 대신 한국의 공연 장르인 ‘가무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뮤지컬보다 ‘춤’을 더욱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본 극은 영화 <신과 함께_저승편>과 달리 원작이 매우 충실한 면모를 보여주는 한편, 원작의 내용을 165분에 담아내기 위해 김자홍-진기한의 이야기와 저승차사-원귀 유성연의 여정이 동시에 진행된다. 즉, 죽은 김자홍과 그를 변호하는 저승 국선 변호사 진기한이 49일 동안 7개의 지옥 관문을 통과하는 여정이 한 축이고, 세 명의 저승차사(강림, 혜원맥, 덕춘)가 저승행 열차에서 뛰어나간 원귀 유성연을 뒤쫓으며 펼쳐지는 이유기가 또 다른 한 축이다. 두 이야기는 번갈아 가면서, 또는 동시에 이뤄지는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전자는 주황색, 후자는 파란색 조명을 대개 사용하여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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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이야기가 한국의 전통 신과 한국인이 생각하는 사후세계를 보여주는 만큼, 무대 전체와 영상과 조명은 모두 한국적인 특색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단, 무대 중앙에 지금 17m의 환형 무대장치를 경사지게 배치했다. 이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의미하면서도, 동양의 세계관인 양과 음의 양의 순환 관계를 나타내는 듯하다. 그리고 이 원형 안에서 무대는 끊임없이 변한다.

 

7개의 지옥은 모두 다른 조명과 영상으로 표현되는 동시에 각 지옥의 문이 열릴 때 각기 다른 안무를 배치하여 구별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무대 바닥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깔아 더욱 입체적으로 지옥뿐 아니라 이야기의 전반적인 배경, 그리고 강림의 힘 등을 표현했다. 특히, 유성연이 엄마의 꿈에서 저승으로 갈 때와 김자홍이 7개의 지옥문을 통과한 후 인간문으로 나가는 장면에서 조명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점이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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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더불어 무대 전체에 저승 노잣돈인 지전을 늘어뜨려 수직 스크린으로 활용했다. 이렇게 전반적인 무대를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영화에서는 CG로 처리되던 것들이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이 가위 광경이다. 검수지옥에서는 저울을, 거해지옥에서는 톱날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다른 지옥에서보다 더욱 긴장감을 선사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옥의 판결 과정에서 재판관과 김자홍, 진기한의 구조는 수직적으로, 김자홍-진기한과 저승차사-유성연의 이야기는 대개 수평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수평과 수직구조를 동시에 사용하여 세계 만물의 조화를 강조했던 동양 사상을 보여준다.

 

다만, 상도천을 건너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뱀과 화탕지옥의 경우 다른 지옥에 비해 많은 연극적 허용을 필요로 한다. 이에 두 장면의 경우 한빙지옥처럼 앞쪽 스크린을 내려 영상을 사용하거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면 더욱 입체적인 표현을 하면서,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장면을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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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해금, 국악 사물과 컨트이 음악에 쓰이는 반조, 만돌린 등의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여 풍성하면서도 다채롭고, 동서양의 선율이 융합된 음악을 선보인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김자홍, 진기한, 강림이다. 김자홍은 사무치면서도 애절하고, 진기한은 재판관에게 감정을 호소하는 서정적인 음악을 주로 이룬다. 이렇게 비슷한 멜로디를 사용함으로써 이 두 사람이 함께 여정을 떠나고 있음을 드러내며, 진기한이 저승의 변호사이지만, 이성적인 부분보다 김자홍과의 감정적 유대, 진정으로 그를 위하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변호사임을 강조한다.

 

이와 달리 강림의 음악은 강한 멜로디가 주를 이뤄 그의 강한 성격과 차사로서 임무를 수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애환을 쏟아내는 넘버가 많았고, 지옥이 열릴 때는 섬뜩한 음악이 펼쳐지다 염라가 다스리는 발설지옥에서는 신나는 음악으로 포문을 열어 관객의 음악적 피로도를 풀어주었으며, 코믹 릴리프(comic relief)로서 기능하여 분위기를 전환한다. 또한, 여러 신 중 유일하게 인간을 사랑하며 육도의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는 지장보살의 면모를 잘 드러내기 위해 여자 배우가 이 배역을 맡았으며, 소프라노의 음역으로 소리를 낸다.

 

원작과 다르게 현재 시점인 2023년으로 일시를 바꾸어 관객으로 하여금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진기한에 대한 연민을 더욱 이끌어 내며, 극을 보는 동안 섬찟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한국적 소재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만큼 효 사상, 권선징악과 같은 한국적 정서와 사상을 담고 있다. 또한, 지옥의 모습을 한국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상점을 저승식으로 바꾸어 익숙하면서도 이색적인 배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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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예술단

 

 

사는 동안 억울했던 날들이 이곳에서는 억울하지 않도록

절대 나는 이대로 멈추지 않아 내게 온 영혼이 새로운 꿈 꿀 수 있다면

- 진기한 넘버 中 -

 

극은 강림과 진기한이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해 모든 배우가 나오면서 끝이 난다. 이 측면에서 본 작품은 김자홍이 아닌, 진기한과 강림에 무게를 더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차사 강림, 억울한 영혼이 생기지 않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망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저승 국선 변호사 진기한. 역할은 다르지만, 모두 ‘인간을 위함’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살벌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동양의 사후세계이지만, 그 기반에는 인간을 사랑하고, 위하는 신의 마음이 들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고 있는 대형 뮤지컬 시장에서, 서울예술단의 이번 시즌 <신과 함께_저승편>은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면 스타 캐스팅 없이도 작품의 가치로 관객을 유치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무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무대 전환 없이도 다양한 배경을 무리 없이 표현한 것, 조명과 LED를 사용함으로써 판타지적인 요소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웹툰의 내용을 최대한 지키면서 캐릭터를 맡은 배역의 높은 싱크로율 등이 무대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극이 시작하기 전 포토존에서 ‘출연배우와 함께하는 포토타임’ 이벤트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공연에서 보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프로그램 북에는 각 지옥의 순서와 간단한 설명, 배우와 창작진 인터뷰, 악보 및 가사 등으로 내용을 꾸며 알찬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극이 진행되는 동안 무대 옆 양쪽에 영어 자막을 제공함으로써 한국 관객뿐만 아니라 외국 관객까지 배려하는 마음을 보였다. 영어 자막을 제공하는 일은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대개의 작품에서 잘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고스럽더라도 이렇게 영어 자막을 함께 제공한다면 더 다양한 관객들이 공연장으로 발걸음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대형 창작 뮤지컬 중에서는 뮤지컬 <명성황후>와 <영웅>을 제외하고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떠올려 보면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레드북>, <마타하리>, <엑스칼리버> 등 해외 소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2014년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흥행 이후 한국 창작뮤지컬은 ‘한국적 소재’가 아닌 ‘외국적 소재’로 그 무게가 기울었다. 이는 물론 세계 무대로의 수출을 염두에 둬서 놓고 제작하기 때문도 있지만, 서양권 뮤지컬 시장에서 한국 뮤지컬이 보여줄 수 있는 한국적인 소재 또한 분명히 있다. 그렇기에 한국적인 소재로 2015년 초연 후 지속적으로 극을 수정, 보완하면서 더 높은 완성도를 구축하며 지속적으로 재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본 작품처럼 이런 작품들이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

 

 

 

프레스 김소정 명함.jpg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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