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00년간 아무도 읽지 못하는 책 [미술]

케이티 패터슨 <미래 도서관>, 미래를 위해 책을 쓰고 나무를 심는 일
글 입력 2023.04.2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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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보물찾기를 좋아한다.

 

‘자, 이제 찾아보세요~!’라는 말이 떨어지면, 운동장 수돗가 선반 위나, 나무 쪽으로 달려가 비밀 쪽지 같은 것들이 어디 숨었는지, 속속히 찾아본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발견해 내고 나면, 이내 환해진 얼굴이 된다. 이런 보물찾기 경험은 어렸을 적 한 번쯤 느껴봤을 기쁨일 것이다.


사실 보물찾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세계에도 여전히 재미있는 일이다. 여기서 보물은 극히 주관적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서랍 속 손때묻은 소중한 사물들이라든가, 진심이 담긴 편지 등등이 그러하다. 몇 년 뒤 다시 꺼내 봤을 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것들이라면 역시 그만의 보물이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몇몇 정 많은 어른은 보물 같은 것들을 한 곳에 꼭 담아, ‘타임캡슐’의 형태로 남겼다. 최초의 타임캡슐은 1939년, 중요한 기술적 메시지를 담은 채 150m의 지하에 묻힌 것이라 한다.

 

이렇게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보물을 보관한다. 동시에 비록 사소한 것이어도 미래의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이 무렵의 사랑들을 전해주려고 한다.

 

*

 

스코틀랜드의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도 거대한 타임캡슐 같은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프로젝트 “Future Library”는 2014년에 시작해 무려 100년 뒤 2114년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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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Future Library 공식 홈페이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알게 된 건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였다.

 

미술관의 유명한 작품들 사이로 작은 종이 한 장에 괜스레 눈이 갔는데, 종이엔 ‘2014’ 숫자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선이 둥그렇게 나이테처럼 그어져 있었다. 마치 보물찾기 쪽지같이 작은 이 드로잉과 텍스트를 그저 지나쳤다면, 여기에 함축된 크나큰 프로젝트의 존재는 아마 지금도 모를 것이다.

 

대체 무슨 작품인가 싶어, 설명문을 들여다보았을 땐, 눈을 비비고 분명히 다시 봐야 했다. 문득 ‘2114년’이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시된 종이 작품은 하나의 완성체가 아닌 시작점의 기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자세히 설명문을 읽기 시작했다.


케이티 패터슨의 노르웨이의 공공예술 프로젝트 ‘미래 도서관’은 말 그대로 미래의 도서관을 위한 작업이다. 2014년부터 2114년까지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하고, 선정된 작가의 작품들이 오슬로의 공공도서관에 ‘미공개’로 보관된다. 그리고 2114년이 되는 해에, 지난 100년간 심어둔 나무 1,000그루를 활용해 만든 ‘종이로 출판’하게 된다.

 

즉 기부된 책들은 2114년이 되기까지 아무도 읽지 못하는 책이 된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의 미공개 소설 <사랑하는 아들에게>도 이 프로젝트에 속하게 되었다. 한강 작가는 아래와 같이 소감을 밝혔다.


 

“마침내 첫 문장을 쓰는 순간, 나는 백 년 뒤의 세계를 믿어야 한다. 거기 아직 내가 쓴 것을 읽을 인간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인간의 역사는 아직 사라져버린 환영이 되지 않았고 이 지구는 아직 거대한 무덤이나 폐허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근거가 불충분한 희망을 믿어야만 한다.”

 

- 미래 도서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을 때 발표한 ‘한강’ 작가의 소감문

 


2014년, 원고를 기부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참여 작가, ‘마가렛 애트우드’ 역시 ‘근거 불충분한 희망’을 믿고 있었다. 작가는 첫 번째 작가가 되었을 때의 어려운 점을 상기하면서도, 이 프로젝트의 가치적 측면에 더 중점을 둔다.

 

마가렛은 묻는다. ‘과연 사람들이 이 원고들을 기다릴까?’ ‘이곳이 노르웨이로 존재하긴 할까?’ 등등. 100년 뒤 도서관이나 숲의 존재가 여전히 존재할 거냐는 의문엔 우리는 여전히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다. 기후변화, 코로나와 같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들을 마주했으니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작가를 비롯한 향후의 작가들은 이 보편적인 사랑의 언어와 희망의 힘을 믿고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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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측면은 예술의 속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예술은 결코 수입만을 목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창기 작가들은 즉각적으로 읽히지 못하고, 보지도 못할 미래의 독자들을 향해 글을 썼다. 바로바로 결과가 진행되는 현대 사회의 논리가 아니라, 아주 오래오래 기다려야 하는 자연의 논리에 따라, 현재의 돈이라는 물질보다 미래의 가치에 기꺼이 희망을 건 것이다.


감히 예상하지만, 그들의 희망과 기여가 헛되지 않을 듯하다. 2114년의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물을 발견할 때 느끼는 기쁨처럼, 서랍 속에 남겨둔 어머니의 메시지를 읽을 때 생기는 뭉클함처럼, 우리가 그랬듯이 진심이 오래오래 담긴 활자들을 기쁘게 마주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 역시 반겨줄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 우리가 여기 있었다고, 이 글을 읽게 될 당신들을 아주 희망하며 기다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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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네이버 지식백과] 미래 도서관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네이버 지식백과] 타임캡슐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 이주현, “한강 작가 ‘100년 뒤 읽을 수 있는 소설’ 전달”, 한겨레, 2019.05.26.

- Katie Paterson - 작가 홈페이지

- Future Library - 공식 홈페이지

- Margaret Atwood, 2014, booklet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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