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같은 하늘 아래서 [영화]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한국경쟁작 <같은 하늘 아래서> 오조희 감독 인터뷰
글 입력 2023.04.2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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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영화제의 부활이다. 극장의 위기라는 말을 누구보다 실감하는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 영화제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다양한 영화를 원하는 만큼 감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로 남았다. 영화제의 매력은 단연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자발적으로-가끔은 비자발적으로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단편의 경우 장편 영화의 그것에 비교해 감독의 색채가 다소 짙은 영화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는데, 스크린을 통해 전달된 그런 마음들은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았다면 애정은 더하다. 무한한 애정과 응원을 담아, 제 40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한국경쟁에 선정된 디아스포라 영화 <같은 하늘 아래서>를 연출한 오조희 감독을 서면으로 만났다.


*


안녕하세요, 감독님. 반갑습니다. 먼저 <아트인사이트>의 독자 분들께 감독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오조희입니다. 현재 독일의 자르 조형예술대학에서 영화과 학사 졸업 후 석사 과정,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고고학 학사 과정을 병행 중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잦은 이사와 이주 그리고 이민 경험이 있다 보니 디아스포라와 사회 통합, 그리고 정체성 확립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와 관련된 주제들로 작품 활동 중이에요. 올해 초 제작을 마친 단편 영화 <같은 하늘 아래서>의 연출을 맡았고, 4월 말에 열리는 40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에 한국 경쟁 부분으로 초청받았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서>는 어떤 영화인가요?

 

<같은 하늘 아래서(Die barmherzige Samariterin)>는 독일 생활 중 제가 실제로 겪었던 경험 기반의 단편 영화입니다. 독일 사회 내에서의 이민자의 삶, 시리아 난민 이슈, 이주 문화 그리고 성장이라는 주제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자전적 이야기라 그런지 제작 중 욕심도 생기고, 촬영 규모도 커지는 바람에 단편영화치고는 긴 29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가지게 되었네요. 제 첫 번째 연출작이자 졸업 영화라서 많은 애정과 노력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카진 역의 배우는 제 절친이에요. 같은 하늘 아래서의 모티브가 된 사건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뜻깊은 작품이에요. 영화 줄거리 정보는 하단의 시놉시스와 연출 의도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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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한 공립 학교에 다니는 민주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집에서 쫓겨난다. 언어도 문화도 모든 것이 낯선 이 나라에서 민주를 도와주는 건 다름 아닌 쿠르드계 시리아 난민 카진. 독일에서 자신을 투명인간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던 민주는 카진을 통해 조금씩 세상을 알아간다. 문화 차이와 인종적 편견,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벽을 뛰어넘기 위해 둘은 자그만한 어드벤처를 떠나는데… (시놉시스)
 

 

"시리아 난민 이슈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2014년. 열일곱 살의 나는 부모님을 떠나 독일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내가 다닐 공립 고등학교에는 외국인 특별반이 새로 개설되었다. 반 친구들 대부분은 난민이었다. 그때까지 내게 난민은 딱 이 정도였다: 불쌍하거나 짠하거나. 그리고 나와는 관련 없는 사람들.


외국인 특별반에서 지낸 2년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타 문화권에서 태어나 제각각의 이유로 독일에 오게 된 우리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투기도 많이 다퉜다. 그런데 또 마냥 웃었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도 않으면서 수업 시간 내내 떠들었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먼저 이해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제야 우린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영화 <같은 하늘 아래서>는 이유도 모르는 채 집에서 쫓겨난 자전적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단순히 그때의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 사건이 독일 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었기에, 나는 이 궤적을 쫓는 여정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디아스포라의 연대. 비자발적/자발적 이민. 미성년자 유학생과 난민. 한국, 쿠르디스탄, 시리아 그리고 독일. 마지막으로 소녀들의 우정.


개인적 경험조차 내가 속한 사회의 한 조각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비로소 인터그레이션은 시작된다.” (연출의도)

 

 

나의 이야기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전적인 소재, 특히 디아스포라라는 소재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한국과 베트남, 그리고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 주변에는 저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어요. ‘나는 한국인일까, 한국인이 아닐까’부터 시작해서 ‘내 고향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인가, 아니면 부모님이 나고 자란 곳인가’, 결국 ‘나는 누굴까’, 라는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주 문학과 다양성 영화, 특히 디아스포라 영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제 이야기를 하기보단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런 성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람은 변하더라고요. 독일에서 예술 대학에 다니며 '영웅의 여정'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 수업의 과제는 단 하나, “내 인생 중 특별한 사건을 영웅의 여정 형식대로 단편 소설을 써라” 였습니다. 그때부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이때 쓴 단편 소설은 <같은 하늘 아래서>의 초안이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제 교수님은 늘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Erzähl eine Geschichte, die du Ahnung hast.” 한국어로 의역해 보자면, ‘네가 아는 이야기를 해라’가 되겠네요. 이 말은 제 대학 시절을 관통하는 문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정체성과 삶을 드러낼 수 있게 용기 내는 법을 결국 배워냈거든요. 그 용기를 가지고 <같은 하늘 아래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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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독어 원제와 영제는 <선한 사마리아인>인 반면, 한국어 제목은 <같은 하늘 아래서>입니다. 한국어 제목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모티프가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요?

와! 이 질문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 해봤어요! 말씀하신 대로 원제 “Die barmherzige Samariterin”와 영제 “The Good Samaritan Girl”는 같은 맥락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인용되기도 하는데요. 기독교 세계관이 뚜렷한 영미권과 독어권 나라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이 영화가 어떤 주제를 가졌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독일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래서 이 영화 속 사마리아인은 이 사람인 거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선한 사마리아인’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속담이나 숙어 같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사고 과정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영화에 참여한 한국인 친구들 역시 독일어 제목을 듣고선 감을 못 잡겠다고 하더라고요. 또 영화가 종교적 색채를 가졌다는 오해도 받을 수 있었고, 쿠르드인이라는 특정 민족이 나오는데 그와는 관련 없는 민족이(사마리아인) 제목에서 언급되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국어로는 영화 주제를 좀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제목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제목 외에도 여러 후보가 굉장히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어 제목을 정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던 것 같아요. 그때 후보 중에 생각나는 건 <해바라기씨>, <현재의 사마리아인> 그리고 <민주와 카진> 정도입니다. 역시 같은 하늘 아래서가 가장 베스트였던 것 같아요!

 


오랜 기간 한 가지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여러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그런 일들로 인해 그 전의 자신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이번 영화를 제작하기 전과 후의 스스로가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화 촬영 후에 내가 달라졌기보다는 성장을 했다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모든 단편 영화 제작기가 그렇겠지만 저 역시도 <같은 하늘 아래서>를 제작하는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처음 메가폰을 잡았다보니 어리숙한 대처가 많았어요. 촬영 중간에 코로나가 터져 촬영을 접고 한 달 정도 미루기도 했고… 또 내향적인 성격도 한 몫 했고요. 저보다 경험이 많았던 촬영감독과 조연출이 많이 도와줬는데, 저한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주저 말고 다가가라고. 조희 네가 확신이 있으면 다들 네 결정을 따를 거라고요.

 

촬영 도중 모르는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같이 있기만 해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내 잘못이 아닌데도 책임을 지고, 순간의 판단을 100퍼센트 믿고, 그리고 내 선택을 의심하지 않는 것.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시간도 분명히 있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힘들었지만,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이 비단 촬영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말할 수 있는 열흘 동안 많이 성장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제게 인터뷰 요청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렇게 제 생각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기도 하고, 덕분에 <같은 하늘 아래서>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촬영한 지 이제 막 일 년이 지났는데 인터뷰하다 보니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게 신기했어요, 하하. 더 좋은 작품으로 다음에 또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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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확하지 않은 것들은 두려움을 부른다. 지금 발 딛은 곳을 사랑하기에는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예전 같지 않은 곳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건 떠나온 곳마다 마음을 두고 왔기 때문일까.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나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작정 외로워진다.

 

그러나 어느 경계에 있더라도 하늘은 하나다. 외로운 사람 둘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면 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일이 그다지 중요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 영화 상영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제 40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4.25 - 5.1) 공식 사이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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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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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윤선령
    • 이 영화 꼭 보고싶네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9년의 외국생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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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선령
    • 9년의 조금 길었던 외국생활을 회상하며 얼마전 발견한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더욱 단단해져가는 나의 삶에
      잠시 휴식이 될 수 잏을거같은 공감100배 영화일거같아요
      꼭 보고싶네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은 건 떠나온 곳마다 마음을 두고 왔기 때문일까>>이 문구가 제 맘을 보고싶다는 맘을 먹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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