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사람의 일생을 안다는 것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맺기
글 입력 2023.04.1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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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아픔을 안다는 건, 과연 좋은 일일까.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이 힘들고 서러운 건 어쩌면 누군가의 상처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늘이 있고 어둠이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힘들 때 주변에 말하기를 망설인다. 나만 힘든 게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간에게 그늘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나의 고통을 말하기 어려운데, 누군가의 상처까지 다 알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같은 지하철 안에서 나를 치고 사과도 없이 지나간 사람을 쉽게 미워할 수 있다. 그러나 고대하던 시험에서 떨어진 친구가 나를 만나 말 한마디도 없이 한숨만 쉬며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친구를 미워하지 않는다. 친구의 인생과 친구가 받았을 상처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있다. 그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바로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마냥 어렸을 때는, 사람을 만난다는 걸 이렇게 표현한 시인의 시선이 색달라 놀라웠고, 누군가의 일생이 온다는 건 마냥 벅차고 기쁜 일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 사람의 일생을 오롯이 아는 게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생각한다. 내 인생 하나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남의 인생까지 감당하기는 더 어렵다는 말 따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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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사람의 일생을 알면서 가장 괴로웠던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람의 일생을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상처와 마음을 안다는 것이고, 그래서 감히 어떤 말도 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은 아는 것은 괜히 내 알량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까 봐 위로 한마디 건네기 어려운 일을 견디는 것이었고, 그 사람이 간직하는 상처를 내가 치유해줄 수 없다는 그 사실이 다시 나에게 상처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가 좀 더 밝은 사람이었다면, 좀 더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좀 더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다고.


평생을 곁에서 나아지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참 무겁고 무서운 일이다. 매 순간, 자신의 부족함을 무력함을 확인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누군가와 인생을 함께하기로 하는 사람들이 참 대단하고 멋지다.


결혼을 해서 함께 일생을 살기로 하는 것, 친구와 아픔을 나누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하는 것.


이렇게 무겁고 서러운 일을 해내고자 하는 것. 그게 인생을 살면서 인간이 관계를 맺는 일인 것 같다.

 

 

[이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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