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울 너머의 내면과 나누는 대화 - 소녀,N [음반]

글 입력 2023.04.1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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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i (나리)


‘작은 나(i)를 이야기하다(Narration)’라는 의미를 지닌 아티스트의 이름과 꼭 어울리는 앨범 [소녀, N]을 만났다.


눈으로만 보면 ‘소녀, Narr.i’를 뜻하는 것 같지만 발음해보면 ‘소년’이기도 앨범 이름처럼 Narr.i는 음악 안에서 스스로 소녀인 동시에 소년이 되어 대화를 나눈다.


거친 말투로 윽박지르는 소년과 부드럽고 여린 소녀의 목소리는 아티스트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한다. 소년은 솔직함으로 인해 상처를 감수해야 했던 과거의 자아이며, 소녀는 솔직함을 희생하고 현실과 타협하고자 하는 현재의 자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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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



소년과 소녀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이 곡의 마지막 단락들의 첫 글자를 세로로 읽으면 ‘거울 속의 나, 거울 속의 너’라는 글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거울을 맞대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얼굴이 사실은 ‘나’이기도 하면서 ‘너’이기도 한, 같은 인물의 것임을 시사한다.


시간이 지나 흐릿해진 과거의 기억이 때때로 불쑥 고개를 내밀 듯이, 거울 너머에 머물던 소년이 소녀에게 말을 건넨다.


“너의 눈부심이 나를 무위로 만들었네”


현실의 빛에 가려져 어두움 속에 잊히게 된 소년은 기억 저편에 자신을 묻어둔 소녀에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것 같다.


소녀가 세상에 보이는 솔직하지 못한 모습들을 비난하며, 소년은 마치 거울 밖으로 나올 것처럼 공격적으로 말을 걸어오다가 결국 거울을 깨버린다.

 

 


2. 밀어



현재의 시간에 비집고 들어온 과거의 기억처럼 거울을 깨고 나온 소년은 자신을 피하려 하는 소녀에게 말한다.


 

네가 나를 외면하면

갈 데가 어디있어 야

도망가지 말고 여기 서

버린 널

찾아가야지

 


이 가사를 들을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연상됐다.


‘여기 서. (네가) 버린 널 찾아가야지.’ 혹은 ‘여기 (멈춰) 서버린 널 찾아가야지.’


어느 쪽이든 소녀에게 과거의 모습인 자신을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바라봐 달라 말하는 원망 섞인 목소리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밀어내며 도망치려 하고, 둘의 갈등은 극에 달한다. 누군가 자신을 꺼내주길 바라는 소녀의 모습은 과거의 목소리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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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ISBN 9781406309140 (skit)


 

격렬한 갈등에 지쳐 힘이 빠져버린 소년과 소녀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노래가 아닌 실제 말소리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더욱 꾸밈없이 솔직한 느낌이다.


사람, 행복,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나누며 그들은 서로에게 공감하게 된다.


이들의 대화는 내가 과거에 쓴 글을 읽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의 상황과 감정에 흠뻑 잠긴 채 썼던 글을 보면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결국 과거의 그 아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두 이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 아이가 바로 나 자신이었으니까.


소년과 소녀 역시 타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들에 대해 서로만큼은 온전히 공감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Mirror’라는 그림책의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트랙명으로 삼은 이 곡은 앨범의 모티브인 거울을 상징한다.




4. 蜜語



앨범 내에서 거울의 역할을 하는 3번 트랙을 기점으로 곡명들은 발음상 대칭을 이루는데, 의미상으로는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2번 트랙 ‘밀어’가 ‘밀어내다’의 의미였다면, 이 노래의 제목인 蜜語(밀어)는 ‘연인 사이의 달콤한 말’을 뜻한다.


 

너는 언제나

시린 듯한 맘에

어두운 밤을 매일 데려와 난 익숙해

아름다운 너와 나, then it's okay

 


거울을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를 통해 소년은 소녀를, 그리고 소녀는 소년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점점 거리를 좁혀가며 서로가 행복하길 바라게 되는 모습을 연인 간에 오가는 말에 빗댄 점이 돋보인다.




5. I (Feat. 김호랑)



기억 너머에서 홀로 상처 입은 채 울던 아이와 먼발치서 그를 외면하던 소녀는 마침내 서로의 존재를 끌어안고 비로소 ‘I’가 된다.


아픔과 고민을 훌훌 털어내고 새로이 출발하는 소녀, N의 모습을 표현한 듯한 산뜻한 분위기의 5번 트랙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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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한 편의 소설 같은 소년과 소녀의 서사는 아티스트 Narr.i가 스스로의 내면을 통해 그려 낸 자화상이다.


다섯 곡을 다 합쳐도 13분 남짓인 짧은 시간에 이토록 정교하고 짜임새 있는 서사를 보여주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기획의 완성도는 아티스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고뇌를 이어왔을지 짐작해보게 한다. 


내면의 주제를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이야기에 녹여냄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표현한 방식,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모습 모두를 인정하며 나아감을 이야기하는 성숙함이 깊은 인상을 주는 앨범이다.

 

 

 

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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