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옜다. 덤이다!

글 입력 2023.04.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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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상 속 작은 여행을 자주 한다. 근교나 먼 곳으로 일정을 미리 잡고 가거나 갑자기 떠나는 여행도 한다. 주로 해외보다는 국내 위주로 여행했는데,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낯선 장소에 가는 걸 재밌어하지만, 외국으로 가는 건 두려웠다. 나는 외국인이 되는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탈이 잘 나는 편이라 타국에서 아플까봐 걱정됐다. 그러다 연인의 오랜 설득 끝에 여권을 만들었고,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으로 떠났다.


다행히 외국인 신분에 잘 적응했고, 아프지 않았다. 덕분에 해외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서 연인에게 또 해외여행 하자고 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치면서 첫 해외여행이 처음이자 잠정적 마지막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4년이 흘렀고, 최근 다시 일본에 다녀왔다. 원래 동남아로 가려고 했지만, 유독 더위를 힘들어하는 나한테 동남아의 3월 날씨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마침 하늘, 바다, 꽃 이 세 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일본의 노코노시마 섬을 알게 됐고, 첫 해외여행지라는 의미도 있어서 일본을 골랐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커플 해외여행지는 일본의 후쿠오카(규슈)가 되었다.


같은 나라지만, 가보지 않은 지역으로 가서 새로웠다. 예쁘고 멋있는 광경을 눈에 열심히 담고, 맛있는 식사와 군것질, 야식까지 야무지게 먹으며 특별한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뜻밖의 깨달음까지 얻었다.


아무 생각하지 않고, 여행에만 집중하기로 약속해서 정말 신나게 놀기만 했기에 깨달음을 얻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저 버스를 탔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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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에서는 지하철, 시내버스와 투어버스, 렌터카 그리고 배(페리)까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이동했다. 정확히는 여행 중 대부분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의 버스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저 버스를 탔을 뿐인데,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차이도 느끼고, 몰랐던 내 습관도 알게 됐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렸다. 교통카드가 없는 사람은 현금을 내는 점은 같았지만, 지불하는 방식이 달랐다. 일본은 뒷문에서 탈 때, 번호가 찍힌 정리권을 뽑아야 한다. 정리권에 찍힌 번호는 탄 곳(출발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 운전석 쪽에는 전광판이 있는데, 정류장을 안내해주는 전광판과 정리권 번호별로 요금이 안내하는 전광판이 있었다. 여기서 정리권에 찍힌 번호를 전광판에서 찾아 요금을 확인하고, 내릴 때 정리권과 돈을 내면 된다. 기사가 거스름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운전석 쪽에 있는 동전교환기에서 교환하여 딱 맞게 내야 한다. 나는 산큐패스를 구입해서 내릴 때 산큐패스와 정리권을 기사님께 보여드리고 내렸다. 


일본의 버스 기사들은 하나같이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운행하면서 틈틈이 안전에 관련된 멘트를 하거나 정거장을 안내하고, 승객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갑자기 출발하거나 급정차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자리에 앉거나 버스 손잡이를 잡은 후 천천히 출발했다. 그리고 정차하기 전에 미리 일어나 내릴 준비를 하는 승객들이 없었다. 모두 완전히 정차한 다음에 일어나 천천히 내렸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정류장 근처까지 버스가 와 있는데도 지정된 곳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탔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큰소리로 대화하거나 통화하지 않았다. 이는 지하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화나 긴 통화는 자제하는 분위기였고, 필요시에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과도하게 빵빵대며 클랙슨을 울리지 않았는데, 이 부분은 버스뿐만 아니라 자차를 이용하는 운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사람이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있었다. 


대중교통의 문화 차이는 첫 여행 때보다 이번 여행에서 더 많이 느꼈다. 그 덕에 평소 대중교통 이용할 때의 내 습관도 알게 됐다. 사실 해외여행을 할 때는 숙지해야 할 예절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간다. 그래서 일본의 대중교통 문화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나름 그 나라의 문화에 맞게 잘 행동했다. 그런데도 습관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가 몇 번 있었다. 


먼저 버스가 정류장에 다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저만치에서 버스가 보이자마자 자꾸 발이 움찔거렸다. 한국에서처럼 버스를 따라다니며 타던 내 습관이 튀어나오려 했던 거다. 한번은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두어 걸음 옮긴 순간, 정류장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현지인의 모습을 봤다. 그때 재빨리 태연한 척하며 얌전히 있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는 엉덩이가 자꾸 들썩거리고 초조했다. 정차한 다음에 일어나서 내리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차벨만 제때 잘 누르고 정차했을 때 일어나면 되는데, 미리 일어나 있지 않으면 내려주지 않을까 봐 불안했다. 그래서 내릴 때만 되면 들썩거리는 엉덩이를 남몰래 자제하느라 혼났다. 


그동안 나름 안전 수칙을 잘 지키며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아니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버선발로 나가는 습관과 목적지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내릴 준비를 하고,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무리하게 일어나는 습관을 마주했다. 한국의 버스 이용문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꽤 위험하게 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본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알게 됐다.


 

 

그저 식당에 갔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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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첫 여행 때보다 음식점을 많이 이용하면서 문화차이를 더 많이 느꼈다. 한국도 직원이 안내를 해줘야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방식이 대중화되어 있지만, 그냥 들어가 빈자리에 앉는 방식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한국은 직원이 안내하기 전에 자리에 앉아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일본은 직원이 안내하기 전에 마음대로 자리에 앉으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한다. 이 부분을 미리 알고 갔기에 식당에 갈 때마다 매번 조심했다.

 

그러다 딱 한 번, 실수했다. 후쿠오카타워에 갔다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겸 카페를 발견했다. 우리는 반가운 나머지 곧장 들어가 빈자리에 앉으려는데, 직원이 헐레벌떡 와서 마감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직원의 당황스러운 얼굴과 주변 손님들의 불쾌한 표정을 보고 아차 했다.


한국에서 스스럼없이 했던 행동이 일본에서는 예의 없는 행동이 되는 걸 경험하면서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말이 누군가에게는 무례함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어디서든 매너 없는 손님은 아니라고 자신했었는데, 비매너 손님이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그 밖에도 문화차이를 느낀 순간들이 많았다. 평소에는 별거 아닌 부분들이 일본에서는 별 게 되는걸 경험하면서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나의 습관들은 한국의 문화나 분위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 있지만, 일이 척척 진행되기 위한 의도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습관 또는 성향이라 하더라도 장소나 사람에 따라 변질된다.


문화 또한 마찬가지다. 본받아야 할 문화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문화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었다. 당연하게 여기고, 익숙하게 하는 행동들 또한 어떤 곳에서는 놀랄만한 행동 또는 비매너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여행지의 문화에 맞춰 행동하다가도 실수를 저지르면서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됐다.

 

 

 

온전한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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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여행 전 했던 약속은 신나게 놀기만 하기였다. 그런 약속을 하고 여행을 갔던 이유는 온전히 휴식하는 시간이 매우 필요해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받고 있었던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매우 안 좋아진 상태였다. 나는 내 몸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임에도 놓치는 것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기념일 여행을 떠나는 김에 제대로 휴식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기로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았다. 생각이 많은 내가 싫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런 나를 좋아한다. 생각이 많은 덕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고, 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모여서 나의 글과 내면에 좋은 영향까지 준다. 문제는 생각하기에 목메고 있었다는 거다. 놀러 갈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어느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생각했다. 글감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하고, 어쩔 수 없이 나이 들어가는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틈날 때마다 깊은 생각을 하느라 결국 머리를 비우고 온전히 휴식하는 시간이 없었다. 3~4시간을 제외하고는 나의 하루는 온통 생각투성이였다. 스트레스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하고,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듣고서야 생각에 목메고 있었던 나 자신을 인지했다.


약속과 나를 지키기 위해 여행 내내 평소 하던 생각들을 멈췄다. 가족들 생각까지 잠시 멈췄다. 집안의 첫째라는 위치에서도 잠시 물러났다. 오로지 여행에만 집중했고,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아무 걱정 없는 해맑은 아이처럼 오로지 놀기만 했다. 4일 동안 온전한 쉼을 한 후, 일상으로 돌아왔다. 


여행 내내 깊은 생각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많았다. 일상 복귀하면 생각 근육이 굳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여행 전보다 글감이 더 잘 떠올랐고, 글도 잘 써졌다. 하루하루 효율성이 상승한 느낌이 들었다.


깊고, 많이 생각하는 건 내면을 다지고, 성장하고,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비우는 휴식 시간도 꼭 필요하다. 그래야 나의 내면과 글이 더 성장하고, 탄탄해질 수 있다. 이 모든 사실을 이번 여행 후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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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게 해서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들을 눈에 담기만 해도 뇌가 자극되고, 가슴이 말랑해진다. 새로운 시각을 얻고, 시야도 넓어진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한다.


이번에 여행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를 발견했다. 지난 여행부터 최근 여행까지 쭉 살펴보니 여행지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늘 만났다. 그 깨달음은 상처받고, 지친 마음을 달래줬다. 때로는 다시 일어날 힘을 줬고, 살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줬다. 나 또는 일행의 몰랐던 면을 발견하게 했다. 여행 자체만으로도 얻어가는 것들이 많은데, 뜻밖의 깨달음까지 얻으니 여행할 때마다 덤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게 매우 감사하다. 


앞으로 여행 갈 때마다 ‘이번에도 덤을 받을 수 있을까? 받게 된다면 어떤 덤을 받을까?’라는 생각에 더 설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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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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