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저 광막한 폐허 속에서 - 세상 끝 등대

돌더미에 이마를 맞대는 마음
글 입력 2023.04.0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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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도 모를 곳을 향해 자발적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계가 있다.

 

그런 곳은 대개 여행자를 삼키고 이야기를 남긴다. 우주를 향한 일방향의 탐구는 보이저가 그 어느 곳보다 멀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항해하게 했고 오퍼튜니티를 붉은 행성에서 잠들게 했다.

 

바닷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만큼이나 많은 보물이 묻혀져 있으며 운이 좋다면 비운의 도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득한 곳에는 늘 여행의 인도자가 있기 마련이다.

 

불을 밝혀 주고 방향을 찾게 해 주는 인간의 북극성이.

 


[표1] 세상 끝 등대.jpg

 

 

쥘 베른의 <세상 끝의 등대>와 함께 레이 브래드버리의 <안개 고동>,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스페인의 작가 곤살레스 마시아스의 작품이다.

 

독특하게도 등대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삽화와 지표, 정보를 붙인 지도첩 형식으로 만들어져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한 상상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좋은 책이기도 하다.

 

자신에게 한 페이지의 이야기, 그 옆에는 삽화, 뒷장에는 데이터와 해도라는 형식적 제약을 부여한 작가 덕분에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 34개의 등대에 대한 가장 아름답고 충실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집을 읽으며 우주를 상상하는 사람들을 상상했고, 생텍쥐페리의 글을 읽으며 하늘을 활공하는 사람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 책을 읽고 돌 벽 안에서 자신을 고립시킨 사람들을 상상한다.

 

영화 <해피 투게더>의 대사처럼 슬픔을 벗어 놓고 오려고 했던 걸까. 낮에는 해를 보고 밤에는 별을 보는 생활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인물이 자신인 기분을 어떻게 버텼을까. 두려움만큼이나 벅찬 가슴을 안고 바다를 보고 있었을까. 마지막 등대지기들은 차가운 돌 벽에 이마를 대고 인사를 했을까.

 

사람들은 체온이 없는 것들조차 너무 쉽게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 테지만.

 

저자의 소개에는 ‘책에 다뤄진 34개의 등대 중 그가 실제로 방문한 곳은 아직까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사실 한계까지 치닫는 외로움, 인간의 극한을 몸소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우리가 검은 파도와 폭풍우 치는 밤을 상상하며 눈을 감는 이유는 언젠가 닥칠 거대한 외로움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 비해 너무 작고 약해서 등대에 몸을 묶어두지 않으면 쓸려가고 만다.

 

서서히 죽어가는 존재의 안에서 우리만의 불빛을 찾아야 하는 것이 스스로가 만든 고립을 견디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명함.jpg

 

 

[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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