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CM이 만든 휴식의 시간 - East Meets East

글 입력 2023.03.0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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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공연이 클래식 공연 같다면 어떨까. 흥겨운 분위기의 스윙 재즈와 달리 ECM 레이블의 재즈 음악은 차분하며 유려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서정성과 자유로운 연주는 ECM만의 특징이다.

 

ECM은 독일의 재즈·클래식 음악 레이블이다. 이들의 모토 ‘The Most Beautiful Sound Next Silence’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는 ECM 음악의 방향성을 잘 나타낸다.

 

지난 2월 26일 JCC 아트센터에서 열린 EAST MEETS EAST는 ECM 아티스트의 만남을 기반으로 결성된 한-일 재즈 교류 프로젝트다. 드러머 신야 후쿠모리, 색소포니스트 손성제를 필두로 베이시스트 토루 니시지마, 피아니스트 송영주가 함께 했다. 눈을 감고 마음 깊이 감상하게 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통합 포스터_ East Meets East.png

 

 

재즈 공연이라기엔 사뭇 다른 정숙한 분위기가 공연장에 감돌았다. 설레는 마음보다는 휴식하는 마음으로, 음미하는 마음으로 첫 연주를 기다렸다.

 

피아노, 색소폰, 베이스, 드럼. 재즈의 기본 악기는 같아도 음악의 분위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각 세션이 하나 둘 쌓아올린 음악이 처음에는 불협화음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색했다. 어딘가 묘하게 어긋난 것만 같은 음악이 어색하고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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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인 재즈, 서정적 재즈라는 타이틀은 색소폰의 멜로디와 연주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진다. 스윙 재즈에서 짧고 풍부하게 가져가는 리듬과는 달리 ECM 재즈의 색소폰은 피리나 단소 같은 동양의 관악기를 떠올리게 한다. 드럼 또한 화려하지 않다. 힘을 빼고 차분히 가져가는 드럼의 강약조절은 연주에 공간감을 더한다. 피아노의 선율은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색소폰과 함께 공간의 서사를 그려낸다.

 

재즈 공연장에서는 메인 멜로디를 담당하는 피아노나 색소폰을 제외한 악기의 소리가 크게 들린다는 점이 좋다. 그리고 나는 공연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야 후쿠모리의 드럼 연주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드럼 연주는 파도가 몰아치듯 한번에 공연장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마치 새순이 돋아나던 대나무가 순식간에 자라나 숲을 채우는 모습이 연상됐다. 신야 후쿠모리는 브러쉬로 스네어 드럼을 쓰다듬다가도 심벌을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그 소리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높게 자란 푸른 대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드럼소리는 순식간에 하나의 큰 자연 풍경을 연상시켰고, 나는 그 관념 속 공간에서 꿈을 꾸듯 감상을 이어나갔다.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내쉬었다. 드럼이 몰아칠 때마다 피아노와 색소폰이 뒤따라왔다.


몇 개의 특정 음을 왔다 갔다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는 물이 금방이라도 넘쳐 흐를 것 같은 표면장력 상태의 물을 떠올리게 했다. 숲에 놓여있는 흰 자기 그릇이 눈에 보였다. 결점 없이 둥근 그릇에는 물이 가득 차있다. 지난 날 내린 빗물인지, 며칠 전 사람이 와서 직접 따른 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보리 색으로 반짝이는 자기 그릇은 누군가 두고간 것이 틀림없다. 그 위에 떨어진 이파리 하나와 물 밑으로 가라앉은 흙 한줌이 투명하게 보인다.

 

피아노 선율은 일렁이는 물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 소리가 아련해 그리운 감정이 떠올랐다. 흰 도자기 그릇 앞으로 무언가를 기다리고 염원하는 사람의 모습이 지나갔다. 맨발로 스미는 흙의 촉감은 차갑지만 보드랍다. 고개를 내려 바닥을 바라보니 발가락 사이로 마른 갈대가 흘끔 흘끔 삐져나와있다. 수분을 머금은 척척한 상태의 흙의 촉감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좋다.

 

일정하게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는 내가 느끼는 세상을 슬로우 모션으로 만든다. 하늘 위로 일렁이는 대나무 이파리도, 바람이 시원하게 들어오는 여유로운 너비의 흰 색 셔츠도. 귓 볼을 스치는 나의 머리칼도. 아주 천천히 아름답게 일렁인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평화로운 자연 속 공간, 특히 대나무 숲과 호수를 떠올렸다. 그곳에서 천천히 거닐다가 몰아치는 바람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모르겠다. EAST MEETS EAST에서 연주한 곡들은 거의 다 처음 듣는 곡이었지만, 첫곡부터 위안을 받는 듯 했다. 특히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 네 번째 곡에서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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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아티스트의 자작곡을 중간 중간 연주한 것도 좋았다. 맥락없이 이어져나가는 구성은 얽매이는 느낌이 없어서 공연에 자유로움을 주었다. 그 자유분방함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나도 음악을 들으며 꼭 많이 느끼고, 많은 것을 기대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편히 휴식하다 와야겠다는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ECM 음악 모두가 내 취향이었던 것은 아니다. 디지털 음원으로 감상하다보면 잠이 오는 음악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신야 후쿠모리 트리오의 For 2 Akis, 피아니스트 송영주의 Atmosphere가 기억에 남는다. 나머지는 제목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적지 못했다. 신야 후쿠모리의 압도적인 연주가 가장 인상깊었다. 다시 한 번 더 듣고 싶을 정도다. 자작곡을 만드는 좋은 연주자를 한 번에 네명이나 알게된 공연이다. 발매가 되지 않은 자작곡을 듣는 영광도 누렸다.

 

ECM 음악은 앞으로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어딘가에 갈 수 없을 때 들으면 좋을 것 같다. 그 마음으로 와닿는 곡을 하나 둘 저장한다.

 


[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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