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살아있는 시체들의 아름다움 [미술/전시]

아쉬운 점도, 만족스러운 점도 확실한 전시
글 입력 2023.03.0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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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이집트 미라전>을 보고 왔다. 나는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이 전시를 볼 때 주목할 만한 점이 무엇인지와 어떻게 가는 게 효율적인지 미리 찾아보고 가는 편이다. 블로그와 기사 등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몇몇 전시는 보러 가지 않기로 정하는 경우도 많다. <이집트 미라전>도 마찬가지로 전시장을 가기 전에 인터넷을 도중, 나를 사로잡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한 블로그 게시글에 첨부된 “오, 이 무덤 옆을 지나가는 살아있는 자들이여!”라는 상형문자와 해석이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이 전시는 내 눈으로 꼭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나는 죽은 자들이 보낸 예술적인 초대장을 받아 전시장으로 향했다.

 

<이집트 미라전: 부활을 위한 여정>의 전시 기간은 2022년 12월 15일부터 2023년 3월 26일까지이다. 전시는 10시부터 19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18시에 입장이 마감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인간과 동물 미라, 미라 관, 사자의 서, 파피루스 등의 이집트 유물 2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미라의 실물을 CT 스캔과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다. KBS한국방송, 동아일보, 네덜란드 국립 고고학 박물관이 함께 주최하는 전시이기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아 전시의 끝물인 3월에도 긴 대기 시간을 자랑할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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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가며


  

<이집트 미라전>의 부제는 “부활을 위한 여정”이다. 여정으로의 첫발을 내딛기 전, 네덜란드 국립 고고학 박물관의 동영상이 우리를 죽은 자들의 세계로 초대했다. 동영상 속엔 국립 고고학 박물관 로비에 설치된 타페 신전이 재현되어 있었는데, 전시장의 소책자를 통해 이 신전이 로마 시절 657개의 블록으로 해체된 뒤 나무상자에 옮겨져 재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 시작부터 기분이 참 묘해졌다. “빼앗긴 역사에 영광은 없다.”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을 빼앗은 것도, 그 유물들을 복원하여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역사에 영광을 비춘 것도 전부 ‘침략자들’이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내 씁쓸함과 별개로 동영상을 보고 나니 전시에 대한 기대가 솟아올랐다. 이집트 역사에 관한 별다른 사전 조사 없이 전시로 향한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운 시작이었다. 우울한 기분은 1전시실에서 첫 번째로 마주친 목관을 향한 가벼운 묵념으로 털어 넘기고, 전시가 끝난 후 다시 곱씹어보기로 했다.

 

 

 

이집트인이 믿었던 내세


 

전시는 낯선 이름들과 환상적인 유물들, 그리고 굳건한 믿음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내 이집트사 지식의 부족을 체감한 멋진 전시였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히에로글리프의 해석부터 이집트 관련 고고학의 발전 과정, 고대 이집트인들의 소망을 담은 온갖 부적 및 공물들과 미라의 민낯을 연구하는 현대인들까지, 그 어느 하나도 시시하거나 평범하지 않았다.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다웠다. 현대보다 절대적으로 자원과 기술이 부족했을 시기, ‘신’을 위해 온 힘을 다했을 고대 이집트인들이 너무나도 존경스러웠다.

 

우리나라의 조상들은 시체를 무덤에 묻었다. 시체를 치장하거나 껴묻거리를 같이 묻긴 했지만, 사자를 위한 책을 적어 함께 묻지는 않았다. 그들이 혼을 다해 미라를 만들고, 관을 꾸미고, 글자와 그림을 그려 넣었을 관들을 보며 그 정성과 맹목이, 이 아름다움의 기원이 궁금해졌다. 무엇이 이집트인들을 이토록 내세에 집착하게 했을까? 전시 속 썩어 문드러진 시체의 얼굴을 덮은 선명한 색의 껍데기들은 그 속엣것들을 대신하여 살아 숨 쉬며 내게 무언갈 속삭이려고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미 저 멀리 사라진 고대 이집트인들 대신 남은 관들이 내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을까?

 

 

 

신이 이끌어주는 다음 세상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신은 저승의 신, 오시리스였다고 한다. ‘사자의 서’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책 속의 아름다운 글자들은 죽은 이가 내세로 향하기 위한 수많은 절차와 그 모든 과정에서 신이 사자(死者)와 함께함을 노래하고 있었다. 복잡하고 섬세하게 그려진 히에로글리프 문자들에서 내세를 향한 그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느껴졌다. 죽은 이의 영혼, ‘바’를 일으키고 그를 심장 저울 앞으로 인도하여 영혼의 죄를 심판하는 것 모두가 신의 일이며, 신이 그를 내세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신의 자리를 창조의 신 또는 아버지 신이 아닌 저승의 신이 차지한 이유가 ‘내세를 향한 강한 믿음’이었다는 것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유물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내세를 굳게 믿고 이를 중요시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고대 이집트사에 무지한 관람객들을 배려한 이집트 신들의 계보 그림이 특히 좋았다. 신들의 대략적인 생김새를 파악하고 나니 유물 대부분에 신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을 상징하는 히에로글리프 문자들을 따로 표시해 둔 점 또한 관람객의 흥미를 끌어내기 무척 유리했다고 생각한다. 신들을 그림과 유물로 접하고 나니 전시를 관람한 이후 이름만 대강 알고 있던 이집트 신화의 신들이 궁금해졌다. 유물 속의 신들은 웅장함을 자아내기도, 누군가를 지켜주고 있는 듯 듬직하기도, 또 늘 곁에 있을 것처럼 친근하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가장 오랜 친구였을 그들은 어떤 신화를 가지고 있을까? 지금 읽는 책을 다 읽고 나면 도서관에서 이집트 신화를 찾아 읽기로 했다.

    

 

 

아쉬웠던 전시 내외부 환경


 

매우 만족스러웠던 전시와는 별개로 전시 내외부의 환경은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다. 지나치게 몰린 인파 때문이었다. 처음 갔을 때의 대기 시간은 무려 3시간이었다. 주말 낮이었고, 인기 있는 전시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폐장 시간 30분 전에 입장하는 것 대신 다시 돌아오자는 약속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두 번째 방문에선 전시장에 30분 안에 입장할 수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1시간의 대기를 알렸던 대기 알림이 약 20분 후에 성급히 울렸다. 5분 안에 입장하라는 알림에 우리는 근처 카페에서 시켰던 음료를 벌컥벌컥 마셔 없앤 후 전시장으로 달려야 했다.

 

입장 이후에도 환경적 아쉬움은 계속됐다. 북적거리는 인파에 밀려 전시를 제대로 관람할 수 없었다. 약 2시간 30분을 관람하였는데, 사람이 적었다면 관람 시간이 많이 줄었을 것이다. 적어도 다리는 덜 아팠을 것 같다. 내가 느낀 이 전시의 최대 단점은 제대로 된 대기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아 전시실 내 관람인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전시가 궁금해 참을 수 없는 분들께 부디 시간을 잘 골라 가시라고 조언하고 싶다.

  

 

 

더 많은 이에게 이집트의 초대를


  

영어 설명이 부족했던 것 또한 아쉬웠다. 내가 전시를 같이 보러 다니는 친구들은 주로 외국인으로,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관람객들이다. 다른 전시보다 영어 번역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해설이 꼼꼼한 전시이기에 번역의 양이 충분하지 못했다. 4장으로 이루어진 전시 파트 속 각 장의 시작 부분만 주로 번역해둔 탓에 세세한 한국어 설명을 읽을 수 있는 나와 읽지 못하는 친구들의 전시 이해도가 크게 차이가 났다. 친구들이 이 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엔 이집트 문화에 관한 흥미뿐만이 아니라 네덜란드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서 온 전시라는 홍보도 있었다. 더 자세한 번역을 기대했던 것만큼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다시 보고 싶은 전시지만, 만약 다시 보게 된다면 이집트 역사를 공부한 뒤에 이 전시를 ‘오픈런’하고 싶다.

 

 


감상을 마무리하며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었지만, 전시 내용은 확실히 만족스러웠다. 세계사 시간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넘어가며, 그마저도 고등학교 수업 시간엔 (세계사를 선택과목으로 고르지 않는 이상) 들을 수 없는 고대 이집트의 이야기를 <이집트 미라전>이 흥미롭고 유익한 방식으로 나에게 들려주었다. 역사 공부를 멈춘 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옛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기쁨을 다시 깨닫게 해준 고마운 전시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부활을 위한 여정’으로 초대받고 싶다.

 

 

[박주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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