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야만의 녹취록, 마루이 비디오 [영화]

호러무비의 탈을 쓴 낯익은 고발 모큐멘터리를 만나다
글 입력 2023.03.06 10:5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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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훌쩍 넘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스포츠만화 <슬램덩크>는 의외로 학교 폭력물로 시작한다. 지금에서야 처음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양키 문화가 너무 과장되어있다, 이런 식의 폭력과 피가 고등학교에서 나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너무 만화적인 것 아니냐?”고. 그러나 그때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은 말한다. 이땐 정말 그랬어. 선생도 애들을 패고, 애들도 애들을 패고. 야만적이기 그지없던 세상이었거든. 이라고.

 

그렇다. 상업물이 오로지 재미만 주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는 시대상 그리고 한 문화에서 공유되는 정서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작품 외적 요소는 결국 명작에서 졸작까지, 모든 작품에 일정한 함의가 담겨있음을 전제로 감상하게끔 만든다.


마루이 비디오는 ‘수위가 높아 외부로 유출되면 안 되는 사건의 영상기록물’을 일컫는 것으로, 한 PD가 과거의 살인사건 영상에 찍힌 심령사진에 대해 파헤치면서 시작되는 공포영화다. 그와 제작진은 1992년, 1987년 두 번의 살인사건을 파헤친다.

 

8090, 추억의 야만의 시대다.

 

 

 

시대를 비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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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에서는 한 서린 여자 귀신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마루이 비디오>는 이것을 과감히 뺐다. 물론 빙의된 여자가 등장하긴 하지만, 특이하게도 교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쓴 남자아이의 영혼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는다. 우리 같이 봤던 영화 제목이 뭐였더라. 보고 싶어서 매일 마당에서 기다렸어요. 아버지, 아버지. 하고.


80년대의 아이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유에 대해 합당한 몇 가지 큰 사건을 그려볼 수 있다. <마루이 비디오>는 개중 가장 사연이 많고 상상의 여지를 주는, 공포영화에서 흔한 소재를 채용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군인으로, 이후 복지원 생활 중 행방불명이 된 것으로 그려진다. 복지원장의 비리로 문을 닫은, 온갖 고통스러운 사건들이 감추어져 있던 곳이다. 이 가상의 복지원은 고발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단번에 연상시킨다.


베트남에서 복지원으로 이어지는 두 차례의 폭력에 노출된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리가 없다. 마침 가족의 거처는 6.25 전쟁 당시 일본인 공동묘지에 세워졌던 피난민들의 동네다. 전쟁의 광기부터 폐쇄 공간 내 위력을 경험한 아버지가 뼈아픈 역사를 가진 마을로 돌아와 가족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상상할 수 있다.

 

뻔하지 않은 남자아이 귀신과 뻔한 사건들이 맞물리는 것을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그려내는 <마루이 비디오>. 전쟁과 폭력의 상흔이 아물지 않았던 야만의 시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계보를 두고 당대 사회의 당연한 분위기로 자리 잡았던 군사문화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작품으로도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무섭다? 안쓰럽다!


 

아이가 왜 비디오에 찍혔으며, 누구이고, 무슨 일이 있어서 원혼이 되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다니는가? 영화는 친절하다. 다큐멘터리 형식인 만큼 현재에서 과거, 그보다 더 먼 과거를 차례로 짚어가며 진실을 밝혀낸다.


이러한 형식의 탓일까, <마루이 비디오>는 공포영화가 응당 가져야 할 장르적 필수요소인 ‘공포감’이 크게 조성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좌석이 차 있는 극장에서 비명이나 욕설은 두어 번을 제외하곤 들리지 않았다. 그 흔한 점프스케어도 거의 등장하지 않고, 그마저도 뻔한 곳에 삽입되어 “스케어”하지는 않다. 사람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공포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남자아이 귀신을 절절히 이해할 수 있으니, 안쓰러울 뿐이다. 게다가 귀신에게 된통 당하는 제작진의 모습은 너무 익숙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용한 무속인이 남자아이 귀신을 제작진으로부터 떼어내려 굿을 벌일 때도 그 색색의 의복과 춤, 날카로운 호통, 어지럽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으레 국내 공포영화라면 갖고 있어야 할 의례적인 장면이었을 뿐, 공포에 질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가장 신비롭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영화적 고점이어야 할 부분이 말이다.


다만 강력한 미지의 존재와 기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닌, 아이를 달래고 진실을 밝히려고 애쓰는 무당의 역할을 조금 특별하게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 속 무속인은 소위 사기꾼의 냄새가 난다거나, 대결에서 져 죽고 마는 공포를 배가시키는 감초가 아니다. 그는 통찰력 있는 미래의 인간이자 과거의 그릇됨을 바로잡으려는, 치유의 기능을 수행하는 신앙적 존재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해 남들에게 알리는 역할은 영화 속 제작진들이요,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관객이다.

 

 

 

시작은 다큐, 끝은 흔한 호러


 

‘또다시 시작될 빙의와 살인’을 암시하는 작품의 마무리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우리는 이 남자아이의 영혼이 원혼이 된 계기를 알고, 어떻게 그 한을 풀었는지도 알고 있다. 그 이상의 사건이 전개되는 것이 딱히 기대되지 않는다. 게다가 처절한 비명과 피가 난무해 후속 시리즈를 암시하는 작품이었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조금 쓸쓸히 넘길 수 있는 시대에 휩쓸린 개인의 비극사를 풀 수 없는 끝없는 저주처럼 잇는 것은 아쉬운 선택이다. 공포영화가 어느 정도 그 기승전결의 문법이 정해져 있다고 할지라도 <링>으로 대표되는 일본 호러작품의 마무리 방식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작품만의 시대성을 되짚어보는 나름의 탄탄한 내러티브가 아쉬움을 메꿔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로서의 장르적 재미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쉽다. 그러나 의도된 것이든 그저 스토리를 위한 시대적 배경이든, 한국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과거의 아픔을 조명하고 그 시대사를 달래는 기능을 일정 부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망스럽진 않다.


여타 동북아시아 국가에 비해 드라마틱한 근현대사를 겪었던 만큼, 로컬의 특징을 잘 살리는 국내 공포영화가 많이 등장하길 소망한다.

 

 

[유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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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조경호
    • 영화를 보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셔서 다시한번 곱씹게 되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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