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뭘까? - 태양 [공연]

글 입력 2023.02.26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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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인구가 급감하고, 감염자 중 바이러스 항체가 생긴 사람들이 우월한 신체를 가진 신인류 '녹스'로 부상한다.

 

그들은 자외선에 치명적으로 약해 밤에만 활동 가능하지만, 젊고 건강한 신체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초월적 변이를 기반으로 정치 경제를 이끌어가는 존재가 된다.

 

어느 날, 구인류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서 신인류 녹스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마을은 고립되고 사람들은 하나 둘 떠나 마을에는 스무 명 남짓 남아있다. 10년 넘게 이어진 봉쇄가 드디어 풀리고 다시 녹스와의 왕래가 시작된다.

 

마치 뱀파이어 같은 '녹스'라는 신인류. 인류는 한때 진화론에 열광했다. 더 나은 인종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인종차별이 생겼고 인종들 간의 계층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던 이유는 우리 모두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신인류와 구인류의 차이 속에서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 녹스와 큐리오(구인류)의 충돌과 이해가 나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지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관람했다.

 

 

 

태양과 밤의 만남 - 후지타와 데츠히코


 

[국립정동극장] 연극 태양_포스터(2.3-26).jpg

 

마을에 사는 20대 청년 오쿠데라 데츠히코는 해맑고 천진난만하다. 무대 끝에서 끝까지 힘찬 동작으로 돌아다니며 마치 짱구처럼 단순하고 장난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10년의 봉쇄 동안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음에도 굉장히 큰 규모의 차밭을 운영하는 반전이 있는 인물이다.

 

녹스로 태어나 녹스 외의 삶은 경험해 본 적 없는 모리시게 후지타는 10년 만에 해방된 마을의 경비를 맡게 되면서 그 마을에 살던 데츠히코를 만나게 된다. 녹스에게 악의가 없는 데츠히코에게 후지타는 자연스레 녹아들며 둘은 곧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후지타는 데츠히코와 점점 친해질수록 큐리오만이 가진 아름다움에 반하고 녹스가 되고 싶어 하는 데츠히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낮에는 네가 운전을 하고 밤에는 내가 운전을 하는 거야. 그렇게 끝까지 함께 가보는 거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거라고 말하는 후지타의 생각과 달리 데츠히코는 녹스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 

 

밤의 세계 일원으로써 제대로 된 교육과 각종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녹스는 큐리오라면 누구나 되고 싶어 할 수밖에 없었다. 단편적으로 후지타가 데츠히코에게 가져다주는 성인 잡지는 밤의 세계에 대한 환상을 더 자극하는 요소였다. 

 

둘은 결국 갈등을 피하지 못하는데 그때 나눴던 대화가 인상 깊어 기억을 더듬어 적어봤다.

 

 

후지타 "학교에 가도 별 게 없어. 너가 가진 차밭이 더 대단한거야." 

데츠히코 "그건 너가 경험해봤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야!"

 

 

학교에 가는 게 정말 필요 없는 일일지라도, 과연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렇데 단정 지어서 말할 수 있을까? 그건 경험해 본 자의 기만이 아닐까? 그래서 처음엔 데츠히코에게 이입하게 되었다. 나부터 내가 경험하고 나서야 답을 내리는 사람이었으니까. 데츠히코도 그런 부류의 인물로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후지타가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째서 모든 걸 가진 녹스가 큐리오에게 대단하다고 할까? 후지타는 데츠히코가 녹스가 되면 무엇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녹스가 되면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그건 너무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

 

 
과하게 이성적인 것은 어떻게 단점이 될까?
 

 

자고로 인간은 이성적인 것을 선망한다. 감성에 휘둘리지 않고 실과 득을 따져 최소의 실, 최대의 득을 얻는다면 그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감성에 휘둘리고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보다 더 훌륭할 때도 존재한다. 

 

바로 그런 점이 너무 이성적인 것의 단점이다. 

한 치의 오차가 없게 행동하고 싶기 때문에 감성을 절제하고, 본인의 욕망을 죽여야만 한다. 이는 결국 진정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고 자아를 잃게 만든다. 

 

큐리오에서 녹스가 된 사람들은 이미 이성적인 것을 너무 원했고 본인이 결정했기 때문에 녹스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지타는 녹스로 태어났기에 데츠히코를 선망하게 된다. 모든 걸 가졌대도 태양이 주는 뜨거운 영혼과 감성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데츠히코는 단지 가지지 못했기에 가지고 싶었고 후지타는 많은 걸 알았기에 삶의 본질을 더 중요시했다. 우리는 데츠히코의 무지에서 오는 욕망을  탓할 수 없고 선각자인 후지타의 기만 또한 탓할 수 없다.

 

이런 둘의 대화는 데츠히코와 후지타의 동상이몽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녹스라는 굉장히 이성적인 인류가 과연 인간이 꿈꾸던 이상향이 맞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했다.

 

 

 

'인간다움'의 붕괴 - 유, 소이치, 레이코


 

결국 연극 <태양>에서 말하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면 '낭만'이 아닐까 싶다. 

 

마을에서 제일 낭만적이었던 인물은 큐리오로 살다 늙은 소이치와 녹스가 된  레이코의 딸 였다. 마을에 살던 또 다른 청년인 는 특히 현실에 매이지 않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인물이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녹스가 되지 않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낭만이 있었다.

 

항상 비현실적인 꿈을 이야기했던 유. 그런 유를 나무랐던 아버지 소이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는 삶은 유도 버티기 힘들었던 걸까. 유는 결국 녹스가 되기로 결정한다. 유가 녹스가 되고 소이치를 만났을 때 유는 소이치의 손길을 피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그저 현실적으로 소이치가 더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유는 현실적으로 이야기했다. 왜 이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현실적으로 더 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오겠다고.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감성적이고 함께 꿈을 꾸게 만드는 캐릭터였던 유가 녹스가 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고 충격적이었다.

 

유라는 인간이 거대한 구조를 이기지 못하고 차가운 세계에 편입 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그래 저렇게 우리의 꿈이 깨졌었지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낭만이 사라진 곳에는 더 이상 꽃이 피지 않았다. 

 

 

 

다시 인간으로 - 카네다 요지


 

녹스를 꿈꾸던 데츠히코, 녹스가 된 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녹스가 된 것을 후회하는 카네다 요지가 있다.

 

소이치의 친구이자 레이코를 짝사랑하던 요지는 녹스가 되기 마땅했기에 녹스가 되었고 그렇게 잘 살아왔다.  그러나 유가 녹스가 되는 걸 막지 못하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녹스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너무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것에 대한 피로감. 태양과 낭만이 없는 삶. 요지는  태양 밑에서 살 수 있었던 진정한 인간이었을 때로의 회귀를 원하며 햇빛을 맞으며 죽어가기로 결정한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인간 다웠다. 

 

*

 

<태양>은 인류가 녹스와 큐리오로 갈리던 혼란스러운 시기를 두 세대에 걸쳐 이야기하면서 진정한 '인간다움'을 정의 내리고 인물들이 다양하게 각자의 이상을 추구하는 방식을 보여주었다.

 

요지의 죽음을 통해 신인류 녹스는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진화와 인간다움은 개별적인 것이었으며 낭만을 잃은 인류는 아름답지 않았다. 녹스에게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그런 것일 테다.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낭만이 없는 녹스이기에 우리는 녹스에 이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이 대단하고 잘난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녹스를 꿈꾸게 된다. 

 

지금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였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태양을 잃어가면서까지 녹스가 되고 싶어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태양을 잃는 지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태양을 잃은 밤을 통해 우리는 태양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인간다움과 낭만 또한 극강의 현실 속에서 더 아름답게 피어나는 법임을 알게 해준 연극 <태양>이었다.

 

 

태양1.jpg

 

 

[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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