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의 저주

[장애학의 도전] 서평
글 입력 2023.02.19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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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분법의 저주 /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저자/ 서평 >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 ‘자립’하기를 가장 바랬다. 정신적, 신체적, 물질적을 넘어 부모로부터, 예전의 지긋한 인간관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고 이전의 세계와 동떨어져 나만의 독립적인 세계를 재창조하리라.. 굳게 다짐하며 자립하기 위해애썼다. 나는 혼자로서 완벽하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누구에게도 피해 끼치지 않고, 피해받을 일도 없으며, 도움받을필요도 없는 완전한 개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나는 성인이 되자마자 열심히 돈을 벌고.. 자취방을 얻어 월세를 내고.. 혼자 장을 보고.. 혼자 밥을 만들어 먹고.. 다시 일을 하러 갔다. 그렇게 나는 경제적 자립을 해냈다. 어느 날 밥반찬을 만들다 텅 빈 자취방에 홀로 남겨진 나를 의식했다. 동그랑땡을 부치고 있던 중이었다. 얼굴에 기름이 튀었는데도 나는 한창 하나의 생각에 빠져있느라 그것을 감촉하지도 못했다. 미성년 때의 나는 왜 그렇게 자립과 독립에 집착했을까?


나는 사회적 인간의 가장 효율적인 최신형 모델은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능력치가높을수록 오래오래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다 보니 청각장애인에 관한 글을 시작했을 때 맨 처음계획했던 결말 역시 장애인의 자립할 권리, 방치될 권리, 노동할 권리를 추구하는 방향성과 가까웠다. 그럴게 그들 또한그런 결말을 바랄 것이라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방치될 권리를 고등학생 시절 수도 없이 외쳤던 것처럼.


그들도 이와 같은 자립 능력을 지녀야 독립적인 정체성과 권리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믿었다. 나는 이 주장이 ‘장애인은 의존적인 존재다’라는 무의식의 전제가 깔려있음을 인지조차 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것은 너무 당연한것이고, 그들이 의존이라는 부정에서 재빨리 벗어나기만을 바랬을 뿐이었다. 그럼 나는 왜 의존을 그토록 불경하게 여겼을까? 


나는 지금껏 성인이 되기까지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자랄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의존에 부정적 경험을 몸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경험과 더불어 사회적 자립이라는 (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에 항상 갈증을 느꼈다. 성인=자립, 미성년=의존이라는 이분법적 생각 속에 갇혀있었기에, 그걸 응용이라도 하려는 듯,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입장 또한 각자 대변될 것이라 구분 지었고, 그러자 나에게 미성년과 장애인은 영원히 의존적인 상태이자 존재가 되었다. 


그대로 노선을 타다 보니 장애인은 자립할 수 있는 존재, 노동할 수 있는 몸이라는 것을 확실시하는 것이 그들과 나를 위한 이상적인 결말일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나는 한 번도 자립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립은 연립과 의존의 존재를 부정한 채, 애 겨우 주장하고 있던 빈약한 나르시시즘이었다. 또한 그 자립은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 나를 타인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있었다. 


의존은 자립의 반대말이 아니다. 의존이 있기에 자립이 있는 것이고 의존과 자립이 함께 존재할 때야 말로 연립이 있다고생각한다. 


사실 아직도 내가 왜 의존이라는 단어를 기피하고 불경해하는지 완전히 알기 어렵다. 그 이유는 내가 살아온 전반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모순에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이해하려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가벼운 지식으로라도 얘기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의존’이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침, 불온하거나 불안한 존재에게붙는 형용사가 아닌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필요한 건강한 공동체 속의 한 특징이자, 요소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숙제는 이분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나와 같은 그들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 더 애쓰고 공부하는 일이다. 그들의 장애인권 향상을 위해 제삼자로서 도와주고, 보필하는 존재가 아닌, 사이 존재로서 나와 너의 권리를 위해 각자의 환경에서부터 함께 고민하고 나아가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연립이자, 추구해야 할 공존 서사라고 생각된다. 

 

 

[김성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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