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벨탑을 다시 쌓는 사람들 [도서]

도서 <번역하는 마음>
글 입력 2023.02.1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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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재밌는 설화가 생각보다 많은데 그중 하나가 바벨탑 이야기다.


원래는 모든 사람이 한 가지 언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나라마다, 민족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신에게 도전하려다가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높디높은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하자, 이들의 오만함에 분노한 신이 언어를 여러 개로 바꾸어 사람들의 협동을 막고 불화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하늘에 닿고 싶어 하는 게 왜 그렇게 큰 잘못인가 하는 궁금증은 차치하고서라도, 신은 벌을 줘도 꼭 그렇게 줘야 했나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인간들은 같은 언어를 써도 수시로 싸우니 별 조치 없이도 금세 분열할 게 뻔한데 왜 잠깐을 참지 못하고 언어를 나눠버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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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피테르 브뢰헬의 <바벨탑>(1563)


 

심지어 그 벌로 고통받는 것은 오만한 당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화가 진행된 시대를 사느라 외국어를 필수로 배워야 하는 현대의 사람들이다.


언어가 달라져서 인간들이 소통을 멈추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각자의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분야 곳곳에서 크고 작은 바벨탑이 쌓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번역가가 있다.

 

 

 

도서 <번역하는 마음>



인터뷰집 <번역하는 마음>에는 열 명의 인터뷰이와 한 명의 인터뷰어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번역, 혹은 통역을 업으로 삼는다. 


인터뷰집이라는 형식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인터뷰이들의 사적인 경험이 많이 들어 있는 게 신기했다. 흥미로운 내용이긴 해도 책의 주제인 ‘번역’과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판 번역가 김효근이 말하는 번역의 정의를 들어보니 내가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편집자로 일할 때는 번역을 전달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언어의 장벽 너머에 있는 걸 가지고 와서 이쪽에 가져다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최근에는 장벽이나 계곡을 건널 수 있게끔 다리라든지 사다리 같은 걸 놔줘서 사람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번역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달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결과물 위주로 생각하게 되는데, 풍경을 안내한다고 생각하면 조금 더 원래 있던 색을 존중하게 돼요.

 

p.150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것이 번역이라니, 이렇게 추상적이고도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번역가는 말하자면 여행 가이드다. 수어 통역사는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미얀마어 통번역사는 미얀마라는 세계를, 영화 통역사는 영화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하나의 세계를 안내하는 사람은, 그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 언어를 향한 애정,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와 사람들을 향한 애정, 그리고 언어가 담고 있는, 형언 이전 단계인 어떠한 소재를 향한 애정. 이 모든 것이 번역을 만든다. 그렇기에 얼핏 보기에는 번역과 상관없는 듯한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까지도 실은 번역의 일부다. 그 애정과 번역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니. 


바로 이 점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질 만큼 즐거웠다. 무언가를 향한 애정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인 데다가, 이 책은 특히 번역가, 그러니까 존재감은 최대한 죽이는 것이 미덕이고 중요성은 폄하 받는 것이 일상인 번역가들의 자부심과 열정을 만날 기회여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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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란 대체 무엇인가: 힘, 울타리, 도구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나에게 완벽한 타이밍에 이 책이 나타나서이다. 가끔은 어떤 고민을 하며 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옜다”하고 길잡이가 되어줄 책을 눈앞에 던져준다는 기분이 드는데, 이 책도 그랬다. 예전에 사두었던 책이 어쩐지 끌린다 싶어 펼쳤더니, 요즘들어 내 머리를 아프게 하던 아리송한 생각 덩어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줬다. 


중국어 통번역사 최하영은 ‘두 개의 언어를 안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갖는 일(p.177)’이라는 말에 동의하며 마치 ‘여권 없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프리패스(p.178)’ 같다고 말한다. 


나도 다양한 언어를 할 줄 아는 것이 대단히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에 도움이 된다거나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 좋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생각의 지평이 말도 안 되게 넓어진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취미로 영어 가사를 번역할 때마다 한국어와는 다른 문장 구조나 언어 습관, 속담 등을 만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언어가 오히려 울타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는 것이 언어라면, 깎여나간 자투리 생각들은 다 버려져야 하는 것일까?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애써 표현하다가 훼손하느니, 그저 침묵 속에 남겨두는 건 어떨까? 이런 고민 속에서 (어차피 모국어와 제1외국어만 간신히 하는 주제에) 갑자기 외국어를 배우는 것에 관한 회의에 빠졌다.


영화 통역사 샤론 최도 ‘어떤 말로 하든 언어 안에 갇힌 기분이 늘 든다(p.110)’며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다만 나와 달리 그는 두 언어에 모두 능통한 덕에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는 혼자서 글을 쓸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섞어 쓰며 언어의 구속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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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 최의 말대로, 우리가 언어에 갇혀있음은 사실일 테다. 언어는 완벽한 도구가 아니니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도구가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 도구를 내팽개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에게 주어진 도구를 최대한 잘 활용하고 더 다양한 도구를 쓸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더 다양한 도구’에는 외국어도 포함되지만, 그보다는 언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당장 떠오르지 않는 수단에 주목해야 한다. 그 예시로, 음악이 있다.


책의 가장 마지막에 실린 인터뷰는 ‘음악 점역사’라는 생소한 직업을 소개한다. 음악 점역이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악보를 점자로 옮기는 일로, 음표는 물론이거니와 그 외 작곡자의 의도가 들어간 모든 악상 기호와 지시어를 전달해야 한다. 


나라마다 말도, 수어도, 점자도 다른데 음악 점자는 세계 공통이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악보가 공통이니 그럴 수밖에. 악보와 음악 점자를 하나의 문자로 생각하자니, 음악 또한 다른 형태의 언어라는 게 새삼 느껴졌다. 말로 미처 표현하지 못한 생각의 자투리들은 음악과 같은 예술이라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

 

 

 

바벨탑은 왜 무너졌나



비장애인인 서라미 인터뷰어는 혹시 실례를 범할까 하는 두려움에 시각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음악 점역사 양민정과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리고 책을 마치며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어떤 실례도 범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으로는 관계가 시작될 수 없으니까. 타인에 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하고 그러므로 서로의 기호를 오해하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기호를 맞춰나가다 보면 어느새 같이 가는 관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서로의 기호를 공유할 정성만 있다면.

 

p.302

 

 

여기서 인터뷰어가 말하는 ‘기호’가 부호를 뜻하는지, 애호를 뜻하는지 헷갈린다. 아마 부호를 의도한 것 같은데, 애호로 해석해도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부러 중의성을 담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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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기호를 공유할 정성만 있다면 어느새 같이 가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상호작용일 리 없다. 모든 관계가 그렇고, 모든 번역이 그렇다.


수어 통역사 윤남은 인터뷰를 끝내며 ‘관계’를 수어로 말했고(p.45) 배구 통번역사 이지언은 ‘공유’라는 단어를 반복했다(p.97). 영화 통역사 샤론 최는 통역이나 번역에서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으며(p.119) 영화 번역가 달시 파켓은 ‘리액션’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p.226). 조금씩 다른 표현이지만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어지고자 하는 마음. 


그렇다면 바벨탑이 하늘에 닿지 못한 진짜 이유는 언어가 달라져서가 아니라 마음이 달라져서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지금 바벨탑이 다시 쌓아지는 이유는 이어지고자 하는 마음을 되찾았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바벨탑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을 위해서는 그 마음의 중요성을 잊지 않아야 한다.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그 세계를 안내해줄 번역가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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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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