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카고 : 반짝 스타의 탄생과 끝

'살인을 저질렀대!' 나뉘어지는 반응. "오! 정말로?!", "그래서 뭐?"
글 입력 2023.02.1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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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미녀살인자한 발의 총성헤어진 남자친구목숨과 아이를 지키기 위한 선택기사 하나만 있어도 눈길을 끌만한 키워드가 무려 한번에 뭉쳤다이를 마다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중은 언제나 이슈를 원한다. 자극적인 대본이 그려낸 흥미진진한 연극 무대의 관객이 되길 원한다영화 '시카고'의 주인공, '록시 하트'는 대중들이 순식간에 차려낸 무대의 장에 기꺼이 올라 스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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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외모에 비해 타고난 재능은 없던 록시. 그러나 정상을 향한 야망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스타가 되길 원했다.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도. 아니, 이건 오히려 그에게 있어서 절호의 기회였다. 살인이 일상이고 조금 특이한살인은 눈길을 끌고, ‘매력적이고 기구한 사연의 여인이 끝내 저지르고 만살인사건은 핫이슈가 되는 도시, 1920년대의 시카고에서는 말이다. 록시와 그의 변호를 맡게 된 스타 변호사 빌리 플린은 시카고에서 펼쳐지는 세기의 무대를 꾸밀 준비를 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대로의 파격적인 스토리를 써내는 작가는 록시와 빌리, 도구는 날조, 선동, 거짓, 과장이라는 훌륭한 펜, 홍보하는 건 기삿거리만 쫓는 멍청한 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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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왜 낯설지 않은 걸까?” 영화 속의 옛날 시대 소품들과 옷차림은 틀림없는 구시대의 것이건만, 어째서인지 익숙하다. 블랙 코미디 특유의 과장적인 면모가 있음에도 차가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있을 법하다. 그렇다. 우린 이미 이 분위기를 익히 알고 있다. 정보의 홍수가 터진 현대 사회 속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라면 충분히 느껴본 분위기다. 지루함 속에서 자극만을 쫓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손 털어버리는 냉담함. 저 먼 미국 지역의, 그것도 50년도 넘은 세월의 간극이 있건만 이리도 같을 수가 없는 도시의 분위기다. 단지 기자들의 펜과 사진기가 노트북과 휴대전화로 바뀌었을 뿐, 그 외의 모든 건 현대판으로 리메이크하더라도 이질감이 거의 들지 않을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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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이미 별 거 아닌 사건이 된 지 오래다. 세상 모든 일들을 마음만 먹으면 찾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조금 특이하고 기구한 사연까지 더해지면 대중들에게 엄청난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록시와 켈리, 수많은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수많은 1920년대 시카고의 여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그 관심은 반짝하고 순간 지나가는 별똥별처럼 사라진다. 거짓 임신 소동까지 일으키면서까지 대중들의 인기를 받던 록시가 시카고 어디선가 터진 살인 사건(얄궂게도 살인범도 록시처럼 금발 미인이다.)으로 인해 잊혀져 버린 것처럼. 그 욕망 넘치던 록시도 모든 게 끝난 뒤, 결국 대중들의 인기가 얼마나 허깨비 같은 지 깨닫고 만다.

 

시카고와 현대 사회의 대중들은 갈대와 같다. 소위 말하는 대세가 부는 바람대로 고개 바꿔 귀를 깊숙하게 갖다 대다가 어느 순간 휙 하고 반대편으로 옮겨간다. 자극에 질렸으면서도 또 다른 자극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해당 사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고찰은 요즘 들어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무분별한 애도와 관심, 비난과 찬양이 최근 이슈화가 되는 인터넷 기사 댓글 창을 점령한다. 그리고 그렇게 써낸 댓글들의 내용도 나중에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뮤지컬 시카고를 만든 프레드 에브와 밥 포시는 미래에도 결국 뮤지컬 속 시카고와 현대 사회가 이리도 같을 것이라는 걸 예측했을까? 그랬든 아니었든, 여러모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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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카고는 이미 잘 알려진 뮤지컬 시카고가 원작으로, 현재까지 손에 꼽힐 수준으로 성공적인 영화화를 이루었다. 연기력은 이루 말할 데가 없고 영화이기에 가능한 연출이 조금은 부족할 수 있는 배우들의 노래 실력을 훌륭히 커버했다. 특히 빌리의 기자 앞 복화술 쇼는 개인적으로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그 장면을 보고 나서 뮤지컬에서는 과연 어떻게 표현되었던 걸까 하는 궁금증이 저절로 나왔을 정도로. 원작 뮤지컬을 보지 않은 사람도, 이미 보고 온 사람들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벨마 켈리 역의 캐서린 제타 존스가 뿜는 카리스마는 뮤지컬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영화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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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함과 건조함, 자극과 블랙 코미디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면 한번쯤은 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작품, ‘시카고였다. 영상에 깔린 끈적한 재즈 풍의 노래들을 감상하면서도 가사 속에 담긴 위트 있는 풍자를 읽으며 너무 익숙해져 버린 시카고와 현대 사회의 분위기를 다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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