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 판소리와 프랑스 문학이 만나 새로운 결합 방향성을 제시하다 - 판소리 숏쓰토리

글 입력 2023.02.0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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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쑛스토리 – 모파상 편>은 프랑스 대표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ant)의 1880년대 단편 소설 <보석>, <콧수염>, <비곗덩어리>를 각기 다른 개성의 판소리 1인극으로 한 재창작한 작품이다. 배우는 이 세 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관객에게 모파상이 던졌던 인간의 단면성과 어리석음에 있어 날카로웠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지 의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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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책을 찢어놓은 한 페이지로 구성되었다. 마치 공연 제목 그대로 짧은 이야기 몇 편을 들려준다는 것을 말하듯 말이다. 어두운 공간 속에 유일하게 빛을 띠고 있는 그 작은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치 비밀리에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의자와 책상이라는 간단한 소도구가 사용되었으며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무대 배경에 자막이 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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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피리의 구슬프고도 애잔한 소리로 시작되었으며, 일반적인 공연과 다르게 배우가 어떤 하나의 역할로서 무대에 처음 등장하지 않고, 배우 자체로 등장하여 극 전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 배우로서 인사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막이 올랐다. 무대 위 한 명의 배우는 사회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을 연기하는 소리꾼이 되었다.

 

하지만, 전통적인 판소리와 다르게 대사가 훨씬 많았으며 중간중간 소리와 샹송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가 배치되었다. 문어체인 텍스트를 구어체로 바꾸는 과정에서 현대적인 말투로 다소 변형되고, 장(chapter)이 마무리될 때 원전이 불어로 낭독되었으며, 판소리가 삽입되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특히, 프랑스 문학을 한국의 전통예술인 판소리로 바꾸면 이질감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였는데 이질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으며 자연스럽게 극이 전개되었다.

 

최근 전통 판소리 작품 외에도 국립창극단을 필두로 하여 다양한 창작 판소리 작품들이 제작되고 개발되고 있다. 특히 1인 창작 판소리 작품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중 최근 정동극장 세실에서 올렸던 음악극 <괴물>은 ‘음악극’이라고 장르를 규정하였으나, 이때 음악은 판소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모티프로 하며 동시에 서양에서 동양(한국)으로 배경을 바꾸었으며, 메리 셸리의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승무’를 추며, 무극적인 측면을 띠고 있다. 즉, 서양 텍스트와 한국의 판소리가 만나는 과정에서 이름과 줄거리만을 가져오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적인 것으로 변용했다.

 

하지만, <판소리 쑛스토리>는 앞에서 간단히 말했듯이 서양의 것을 동양의 것으로 바꾸지 않고, 원전 그 자체를 이용하면서 ‘판소리’라는 장르로 표현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와 연주자 모두 서양 옷의 특성과 동양 옷의 특성이 섞인 옷을 입음으로써 이 공연이 서양과 동양의 이야기와 형식이 합쳐져 있음을 표면적으로 암시한다.

 

‘쑛스토리’라는 제목처럼 세 작품은 각색을 거쳐 매우 짧은 형태의 이야기로 각색된다. 하지만 이렇게 짧게 각색된 이야기가 매끄럽게 전개되면서도 작품당 정확하게 하나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점이 인상 깊다. <보석>은 아내와 남편 사이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를 담으며 일확천금을 얻은 남자의 모습이 어리바리하게 그려진 다소 희극스러운 작품이었다. 하지만, <콧수염>은 전쟁 시기 프랑스의 시대상을 보여주면서, 콧수염은 곧 프랑스(인)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한 어린 프랑스 소녀가 창문을 통해 우연히 사람들이 죽은 병사들을 목만 남긴 채 나무 밑에 급하게 묻는 광경을 보며, 콧수염으로 프랑스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했으며, 그 광경 속에서 생긴 상처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비곗덩어리>에서 ‘비곗덩어리’는 매춘부를 의미하며 구분 짓기 속에서 다수가 소수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그 후에는 다시 자신들의 잇속과 안전만을 챙기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피리, 거문고, 장구, 징, 생황 등 다양한 국악기가 사용되었으며, 네 명의 연주자가 연주했지만 한 명이 여러 개의 악기를 사용함으로써 전통적으로 판소리 공연에서 장단을 맞추고 추임새를 넣는 고수의 형태가 아닌, 극음악으로서의 국악기를 연주함으로써 극의 분위기와 감정적 고조를 더욱 풍부하게 드러냈다. 이로써 본 공연의 이야기가 더욱 아름다우면서 비극적이게, 더욱 감각적으로 관객에게 수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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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이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출/각색/음악감독/작창/배우를 맡은 박인혜는 텍스트와 극의 흐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악기의 질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고기를 질겅질겅 씹는 것을 어떤 악기를 사용해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말이다. 또한 이야기와 음악 간의 조화를 이루면서도, 이야기에 좀 더 중점이 가게끔 유도했다고 한다.

 

왜 ‘모피상’ 작가의 작품을 선택했냐는 질문에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작가이자 작품이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이야기했다. 더불어 그는 하나의 키워드에서 확장시켜 나가는 것을 좋아하며 이런 과정에서 수많은 리서치와 상상이 개입된다고 밝혔는데 이를 들으면서 본 공연에 얼마나 많은 그의 노력이 깃들었는지가 다시금 느껴진다.

 

본 공연은 판소리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여백(빈 공간)’과 사실주의 작가인 모피상의 작품의 조화는 꽉 차지만, 그렇다고 다 차지는 않는 신비로운 조화를 이루며 동서양의 예술형식이 이렇게도 결합할 수 있다는 새로운 방향성을 성공적으로 제시한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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